존재만으로도 주위에 힘을 주는 '태산'

박규헌 사장과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흘렀지만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박 사장과는 대학(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에서 처음 만났고 얼마 후에는 학생운동조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 서클에서 같이 지냈다. 그의 첫인상은 '촌놈'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곧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386세대라면 누구나 느꼈겠지만 그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운동권에 적극적이었든 아니든 심리적 정서는 비슷했을 것이다.

당시는 군사정권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고 학교내에도 소위 '백골단'이라는 합법적 폭력배들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을 감시하던 때였다. 시위 한번씩 할 때마다 왜 그리 떨리고 무섭던지.

그런 상황에서도 박 사장은 항상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리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부러웠다.

그리고 폭력 앞에 움추려드는 자신이 항상 부끄러웠다. 몇번의 그런 경험이 있고 나서부터 그에 대한 이미지가 '촌놈'에서 '태산'으로 바뀌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에 힘을 주는 그런 이미지다.

단지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는 차원에만 머물렀다면 그 친구가 그렇게 존경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는 항상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사고가 체질화되어 있다. 주위에 대한 배려는 그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83년 5월에 우리는 시위현장에서 연행되어 관악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강제입영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처음 적응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입대 8개월만에 첫 휴가를 나왔는데, 박 사장도 휴가를 받아 나를 면회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고 감동했다.

자신의 귀중한 휴가시간을 친구의 면회로 까먹더니.. 부천의 노동 현장에 있을 때, 그리고 데이콤에 취직했을 때, 그의 월급봉투는 어려운 처지에서 활동하던 친구들의 몫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대담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 전략적 사고 능력까지 갖췄으니 그는 타고난 벤처기업의 CEO라 생각한다. 그래서 조만간에 우리 나라에서도 전세계를 지배하는 벤처기업가가 되리라 믿는다. /정훈 마이벤처경영컨설팅 대표이사

입력시간 2001/02/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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