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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46)] 간지(漢字)

[재미있는 일본(46)] 간지(漢字)

외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간지(漢字)'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자를 쓰지 않던 서양인은 물론, 상당한 한자 실력을 가진 한국인조차도 일본어 한자를 제대로 읽기란 어렵다.

한자의 음이 우리와 다른 것도 한 이유지만 그보다는 한자를 읽을 때 소리로만 읽는 우리와 달리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뜻으로 읽고 더러는 2음절 이상의 한자를 뜻과 소리를 번갈아가며 읽기 때문이다.

소리로 읽는 '온요미'는 우리의 한자음과의 차이만 알면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다. 물론 우리의 '도량'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소리로 읽는 불교 용어등에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자를 뜻으로 읽는 '군요미'는 하늘 천(千)자를 써놓고 '천'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읽는 식이어서 일일이 외지 않을 수 없다.

앞글자를 소리로, 뒷글자를 뜻으로 읽는 '주바코'식이나 거꾸로 앞글자를 뜻으로 뒷글자를 소리로 읽는 '유토'식의 한자 조어에 이르면 어려움은 더하다. 기껏 '총탄'이라고 써놓고 '총알'이라고 읽거나 '신분'이라고 써놓고 '몸분'이라고 읽는 식이다.

이두·향찰을 쓰던 때는 우리의 한자 용도도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중국에서 수입된 새로운 개념을 한자로 쓰고 중국어 발음과 비슷하게 읽는 것은 물론이고 고유어를 한자의 소리나 뜻을 빌려 표기하기도 했다.

처용가의 '동경'을 '셔불'로 읽는 것이 군요미에해당한다. 소리를 빌려 적을 '서라벌'과 함께 도읍, 즉 서울을 가리킨 말이다.

그러나 주자학의 본격적 도입과 함께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층의 동경이 고조된 고려말에 이르면서 한자표기는 거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어에 한정됐다.

반면 바다 건너 일본은 중국의 새로운 문물이나 그와 병행하는 외래어 수입에 한계가 있었다. 한바도를 거쳐전래된 한자는 7세기 이후 활발하게 쓰였지만 고유어 표기에 보다 널리 이용됐다.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언어 습관은 오랜 세월 깊이 뿌리를 내렸고 가타가나와 히라가나가 정착되고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한자는 일본어 표기에서 뺄 수 없는 요소가 됐고 가타가나, 히라가나와 함께 일본의 3대 문자로 여겨지고 있다. 한자에 의한 고유어 표기는 원시적 방법이긴 하지만 한자어에 우선한다.

우리의'생략하다'처럼 한자어에 고유어를 붙인 '쇼랴쿠스루'보다 '하부쿠'가 널리 쓰이는 것이 그런 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교'라는 고유어 대신 '곤지쓰'라는 한자어를 쓰는 것등은 일종의 지적인 허세라고 할수 있다.

일본인이 한자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우선 히라가나를 배우고 이러 가타가나를 배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말을 글로 옮길수 있지만 한자를 쓰지 않고는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을 제대로 읽어 내기 어렵다. 그래서 널리 쓰이는 상용한자 1,945자를 제정, 초중고 12년간 조금씩 익히도록 한다.

상용한자 1,945자를 익히는 데는 한자를 소리로만 읽는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5,000자가 넘는 한자를 익힐 때와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각급 입시에 단골로 축제되는 고유어에맞는 한자나 한자의 올바른 읽기를 고르라는 문제는 늘 학생들을 괴롭힌다.

상용한자를 넘어서는 한자는 기본적으로 히라가나로 표기한다. 그래서 '히후카'등의 간판을 흔히 보게 된다. 책에는 한자를 써놓고 작은 글씨로 읽는 법인 '후리가나'를 달아 어려운 한자를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린이 책은 상용한자에도 후리가나를 붙인다. 성인용 만화책도 독자의 수준을 감안해 후리가나를 붙이는 예가 늘어가고 있다.

후리가나의 이용은 인명 표기에서 두드러진다. 성만 해도 수없이 많아 읽기가 쉽지 않지만 먼저 고유어로 생각하고 적당한 한자를 갖다붙인 이름을 제대로 읽기란 정말 어렵다.

각정 서류의 성명란에 후리가나를 적는 칸이 있고 명함 뒤에 영어로 후리가나가 쓰어 있는 것도 그 때 문이다.

1995년 고베 지진 당시 아나운서가 사망자 명단을 릭으며군데군데 "…일까요"라며 어물어물하던 모습은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외국인이 일본어의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2/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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