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NYT와 대통령들

새해 들어 제기된 언론개혁과 언론 세무사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언론이란 과연 독자와 언론 사주, 권력 사이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1999년 뉴욕타임스(NYT)에 근무했던 수작 티피트와 아렉 존슨 부처는 NYT가 아돌프 오크스에게 인수된(1896년)후 100주년을 맞아 사사(社史)를 냈다.

제목은 '트러스트'(TRUST, 기업합동), 부제목은 'NYT의 배경인 사적이고 막강한 족벌의 이야기'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NYT는 언론이 가야 할 정도를 가는 신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NYT는 뉴스만을 찍어 낸다", "NYT는 공포나 편견 없이 보도한다"는 NYT의 표어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신문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일에서 이민온 신문배달원 출신의 유대인 2세에 의해 사실상 창간되고, 세계 초일류의 신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다.

8살때부터 테네시주 치타누가 타임스 배달원이었던 오크스는 22살에 이 신문의 발행인이 되고, 38살에 NYT의 발행인이 된다. NYT의 표어인 "NYT는 뉴스만을 찍어 낸다"는 그가 경험에서 얻은 언론관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1935년 죽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사위는 아서 설즈버거였다. 그이 조카인 쥬리우스 아드러는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부사장이었지만 NYT는 설즈버거에게 돌아갔다.

오크스의 유언은 이랬다. NYT는 독자의 정부, 외부로부터 신뢰(trust)를 얻기 위해서는 창립자인 그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딸 이피진과 사위 설즈버거, 조카 아드러 3명이 스스로 총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딸 이피진은 남편을 택했고, 그래서 NYT는 그의 아들, 그의 손자에게 넘어가 운영되고 있다.

NYT가 트러스트(TRUST)라고 불리는 것은 족벌이 선단식 경영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와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정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편견도 없이 보도하기 위해서는 신뢰(trust)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얻는 방법으로는 외부인사의 고용보다 가족들의 연계가 더 낫다고 오크스는 생각한 것이다.

오크스의 이런 정신을 높이 샀는지, 1883년 오크스가 결혼할때 아서 미국대통령은 테네시의 조그마한 신문 발행인인 오크스 부부를 백악관으로 초정하기도 했다,

오크스가 1896년 NYT를 인수할때 남부 출신의 이 발행인에게 보증서를 써준 것은 매킬리 대통령이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그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피진을 위해 직접 서명한 사진을 보내 주기도 했다. 윌슨 대통령은 NYT의 열렬한 국제연맹 지지에도 불구하고 친하지 않았다. 이피진의 결혼 면접 대도 "아버지의 인사를 올립니다"는 말에 "당신 아버지가 누구냐"고 반문할 정도로 냉담했다.

후버 대통령과 대공황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단독면담을 했다. 오크스가 1929년 10월 후버를 만났을때 그는 재선을 포기할 정도로 의기소힘해 있었다. 그러나 오크스는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민주당 지지인 NYT는 공화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루즈벨트의 경제정책의 급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크스는 개인적으로는 루즈벨트의 당선을 점쳤고 , 그를 지지했다.

루즈벨트는 NYT에 대해 두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뉴딜 정책에 너무 비판적이며 경제정책에 대해 보수적이다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등장과 미국의 어쩔 수 없는 세계문제 개입에 대한 지지에는 감사했다. 루즈벨트는 무엇보다 NYT의 불편부당과 독립성을 보고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신문이라고 느꼈다.

1935년 오크스가 죽자, NYT의 상속세는 100만달러가 넘었고, 이를 징수할 경우, 신문의 경영주는 바뀌어야만 했다. 루즈벨트는 대법원의 구조개편에 반대한 NYT의 사설에 기분이 나빠 상속세를 징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새 발행인이 된 설즈버거와 사저에서 단독면담을 가진 뒤 상속세 징수를 1939년까지 연기시켜 주었다. NYT는 1939년 세금을 모두 내고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대한 경고 사설을 썼다. "미국이여 평화스러울 때 징집령을 내려라"는 것이었다.

루즈벨트는 "나는 이 사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좌파성향의 잡지 '뉴 메스'는 "이 사설은 루즈벨트가 쓴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NYT의 100년 사사를 보면 언론에 대한 신뢰는 독자와 정부의 비판이나 세무사찰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2/22 18:2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