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의 외국] 서울 속의 '이방인 타운'

자국문화 향유하는 소중한 '그들만의 공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ceㆍ거대도시)다. 역대 최대라는 88서울올림픽이 열렸고 지난해에는 아셈(ASEM)총회가 성공리에 치러졌으며, 내년에는 세계인의 축제 한ㆍ일 월드컵대회가 개최된다.

서울은 남한 인구의 4분의1인 1,037만명(2000년 기준)이 거주하며 한해 국가 예산의 10%인 10조원이 집행되는 곳이다.

인구로만 보면 중국 상하이(1,300만명)와 인도 봄베이(1,260만명)에 이어 세계 3위로, 프랑스 파리(200만명)의 5배나 되며 영국 런던(700만명)과 미국 뉴욕(750만명)보다 훨씬 크다. 세계 각국의 국제항공 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고 각국 대사관과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이 입주해있다.

특히 IT 분야의 기술과 인프라에 있어서 단연 동양 최고를 자랑한다. '세계 속의 서울'이라는 표현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처럼 국제화,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서울에는 많은 외국인이 살고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 몇몇 거점지역에 모여 나름대로의 자국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그곳에는 본국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음식점과 카페가 몰려있고, 정보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 우리에겐 단순히 이방인 타운이지만 타국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제2의 고향'이다.


방배동 파리지엔느 스트리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방배중학교 방면으로 가는 언덕 길인 소래로. 겉으로 보기에는 한적한 부유층 동네로만 보이는 이곳은 국내의 프랑스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그들만의 공간'이다.

여기는 프랑스 대사관 직원과 주한 프랑스 무역상사 주재관, 프랑스 출신 대학교수들이 모여사는 '프렌치 타운'이다. 언덕 중간에 프랑스 학교가 있고, 고급 빌라들이 몰려있는 등 입지 여건이 좋아 프랑스인들이 하나둘씩 이주해오면서 자연스럽게 '파리지엔느 스트리트'가 형성됐다.

이곳에선 등교 시간인 오전 8시와 학교가 마치는 오후 4시경이 되면 아이들의 손을 잡은 프랑스인들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와인, 치즈, 크로와상 같은 프랑스인이 즐기는 생활용품을 파는 상점이 골목 곳곳에 포진해있다. 카페도 프랑스 풍으로 꾸며져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이곳을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부른다.

현재 이 부근에는 약 300가구의 프랑스 가정이 거주하고 있다. 집 값이 강남에서도 비싼 편에 속해 상사 고위간부나 대사관 직원, 호텔 간부 등 국내 거주 프랑스인중에서도 부유층이 주류를 이룬다. 관할 구청인 서초구청에서도 이들을 위해 프랑스어 경진대회 같은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고있다.

4세 된 아들과 함께 산책 나온 프랑스인 메이에르(34)씨는 "한국에서 7년을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주변에 프랑스풍의 가게들이 있고 프랑스 학교도 있어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며 "단 어린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프랑스 상사 대표인 남편과 한국에 온지 1년 됐다는 전업주부인 리베씨는 "모국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쉽게 프랑스 이웃과 교제할 수 있고, 물건 값도 저렴한 편이어서 만족스럽다"며 "하지만 주변에 주차공간이 많이 부족하고 교통 체증이 심한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텐투텐델리의 대표 유병두(40)씨는 "본래 이태원에서 프랑스인을 상대로 와인 치즈 시가를 취급하는 상점을 했는데 단골 손님인 프랑스인이 주로 이곳에 살고 있어 지난해 말 아예 이곳으로 이전했다"며 "손님 90% 이상이 프랑스 사람인데 매주 금요일 오후 프랑스 학교가 끝나는 4시경이면 주말에 쓸 생활용품을 사러온 프랑스인들로 이곳은 프랑스 거리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재팬타운 동부이촌동

강북의 대표적인 부촌 중의 하나인 용산구 동부이촌동은 일본인이 터전을 닦아온 대표적인 '재팬 타운'이다.

한강대교에서 동작대표 방향으로 동부이촌동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촌 아파트 앞 대로 변에 일본풍 외장에 일본어 간판을 단 음식점을 볼 수 있다. 주로 로바다야키, 스시 전문점, 우동집, 꼬치집 등 일본 음식을 파는 가게다.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 아파트에 일본 대사관 직원과 소니 도요타 전일본항공 등 일본 상사 주재원 1,200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다.

일본인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은 때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외교관들과 상사 주재원들이 전망이 좋고 주거 여건이 뛰어난 한강 외인아파트를 중심으로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서울 속의 일본인 거리가 만들어 졌다.

지난해 이 아파트가 철거돼 대단위 고층 아파트가 신축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주변은 일본인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일본 어린이반을 따로 개설한 유치원이 운영된지 오래고, 주변의 병원 음식점 부동산 여행사 이발소 등 편의시설 상당수가 일본인을 상대로 운영되고 있다. 조흥은행 동부이촌동 지점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일본어로 상담하는 일본인 전용창구를 개설해 놓고 있다.

조흥은행 일본인 전용 창구 담당자인 김덕주(40) 과장은 "동부이촌동 일대는 전통적으로 일본인이 집단거주하는 지역이라 예금유치 차원에서 전용창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고객 수가 늘어나는 등 큰 호평을 받았다"며 "주로 본국 송금과 입출금, 공과금 처리가 주를 이루는데 근면하고 저축을 생활화하는 일본인의 성향을 반영하듯 약 10억원이 넘는 예금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송용훈씨는 "일본인은 다른 나라 상사 주재원이나 외교관보다 2배 이상 많은, 월 200만원 정도의 주택비를 지원받는 데도 정작 집을 고를 때는 25평이나 33평형 등 중간 평형을 많이 찾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쇼핑을 나왔다는 한 일본인 주부는 "이곳은 도쿄에 비해 전세금이 매우 저렴하고 물가도 싸 너무 좋다"며 "일본인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끼리나 아파트마다 별도 모임을 결성해 한달에 한두번씩 정기 모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 일본 부인들은 '볼런티어회'(霜月會)라는 월례회를 결성해 매월 한차례씩 고아원이나 노인정 등을 돌며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부이촌동 강촌아파트 맞은 편에서 만 15년째 꼬치전문 로바다야키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7ㆍ여) 사장은 "일본 경기가 좋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저녁시간이면 일본인들로 가게가 북적거렸는데 IMF 이후 일본인 숫자가 현저하게 줄었다"며 "주변에 있는 일본 주점은 대부분 15년 이상 된 전통을 가진 곳인데 주요 손님은 한국인이다"라고 귀띔했다.


대표적 외국인거리 이태원

뭐니뭐니 해도 국내에서 대표적인 외국인 거리를 꼽으라면 역시 이태원을 빼놓을 수 없다.

북한남 로터리에서 6호선 녹사평역에 이르는 약 1.5km에 달하는 이곳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대표적인 외국인 쇼핑 명소다. 주변에 위치한 미군부대 장병을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각국 사람들이 즐겨찾는 쇼핑장소가 돼버렸다.

가죽 제품, 캐주얼 웨어, 운동화, 액세서리, 기념품, 가방 등 각종 상품을 시중보다 싼 값에 판매한다.

두 딸과 함께 쇼핑을 나왔다는 미국인 낸시(39ㆍ여)씨는 "상사 사장인 남편과 1년째 이태원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데 물건 가격이 싸 쇼핑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주변에 주차시설이 부족해 교통혼잡이 심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며 "특히 인도를 마구 질주하는 오토바이 때문에 아이들이 다칠 위험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태원 소방서와 해밀턴 호텔 부근에는 성인 쇼를 하는 유흥업소들이 밤이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밝히며 영업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태원은 서울의 밤 문화를 선도할 정도로 흥청거렸으나 최근에는 다소 수그러들고 있다. 미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진 데가 미국인 숫자도 점차 줄어들면서 이태원의 밤거리는 전과 같지는 않다.

이밖에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부근에도 규모는 작지만 독일인들의 공간인 '저먼 타운'이 있다. 인근에 독일 대사관과 독일인 학교가 있고, 쇼핑타운인 이태원과 가까워 인기를 끌고있다.

현재 국내에는 약 600명의 독일인이 들어와 있는데 이중 3분의1 정도가 이 부근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주로 대사관 직원 가족과 보시, 지멘스 등의 상사 주재원이다.

독일 대사관의 한 직원은 "동빙고동 일대에는 독일 대사관 뿐아니라 헝가리 벨기에 브루나이 등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어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외국인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슬람사원 중심으로 회교도 밀집지역

미국,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 출신이 서울 요지에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동남아나 중국, 러시아, 동구권 등 후진 국가들은 아직 이렇다할 자기들만의 지역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태원과 한남동의 경계 지점인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이슬람 성원(한남 2동 소재)은 각국 이슬람 교도들이 운집하는 '성지'다. 1976년 개원한 이 성당에는 약 2,500여명의 외국인 이슬람 교도들이 매주 한차례 이상 찾아온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수단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사우디 북아프리카 등 주로 후진국의 외국인들이다.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로 노동일을 하고 있어 토요일 오후 이곳에 와서 성당에서 하루를 머문 뒤 이튿날 일요 예배까지 마치고 돌아간다.

성당 주변에는 회교도들이 즐기는 음식만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태원을 근거로 7개월째 무역업을 하고 있다는 파키스탄인 캐서린 아쿠발(29)씨는 "한국의 옷은 원단이 뛰어나고 디자인도 좋아 동남아 국가에서는 최고 인기품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 2만2,000달러 상당의 옷을 파키스탄으로 보내 약 4,000달러의 돈을 벌었다"며 "식사는 패스트푸드에서 피시버거 또는 사원 주변 인도 식당에서 해결하고 성당을 거점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추운 것 빼고는 전혀 불편한 것이 없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슬람 성원의 이주화 사무차장은 "이슬람 교도들은 대부분 안산이나 구로, 인천, 반월 등 수도권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어서 토요일 예배 후 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성당은 안락과 휴식의 장소일 뿐아니라 정보 교환과 직장 알선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 러시아거리등은 슬럼화

서울에 있는 외국인 거리 중 일부는 슬럼화한 곳도 있다.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을지로 6가에 이르는 뒷골목은 '러시아 거리'로 명명된다. 이곳은 1980년대 말 한ㆍ러 국교 정상화가 된 이후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과 인터걸들이 국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교두보가 됐던 곳이다.

이 부근에는 러시아인에게 달러를 바꿔주는 환전소가 15개 정도 운집해 있고 러시아 간판이 걸린 술집 20여개가 있다. 기자가 러시아 간판을 단 한 호프집을 들어가자 야한 옷을 입은 20대 초반의 러시아 여성이 한 룸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 한국인은 "이 주변에 러시아 간판을 단 술집은 러시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여성과 즐기려는 한국 남성을 유인하기 위한 곳"이라며 "이곳에는 보따리 장사를 하러온 러시아 장사치들과 몸을 팔아 돈을 벌려는 인터걸들이 섞여있다"고 전했다.

2년전부터 환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여성은 "러시아발 비행기가 들어오는 날이면 이 부근 여관과 환전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며 "1995년경에는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는데 최근에는 물건 값이 싼 중국으로 빠져 예전만은 못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밖에도 동남아 근로자들이 모여들이 '국경없는 거리'로 불리는 경기도 안산, 조선족의 쉼터가 되고 있는 서울 가리봉동 일대, 그리고 인천 북성동의 차이나타운 등도 '한국 속의 외국'풍경이 물씬 풍겨나는 외국인 타운이다.

현재 국내에는 150여개국 48만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55만명)의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이들 외국인 중 절반을 훨씬 넘는 수가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몰려 있다.

이들은 한국과 인연을 맺고 한국을 생활 터전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국경 인종 피부색을 넘어 우리의 이웃이자 동반자다. 한국 속의 이방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세계 속의 한국'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7 18:3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