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구조조정 의지 새롭게 다져야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금리조정 등 중요한 금융정책을 결정할 때 소비자물가(CPI), 전미 구매자관리협회(NAPM)지수 등 1만4,000개에 달하는 방대한 경제지표를 참고로 한다.

그는 심지어 공급자 운송지표, 전미 건축가협회 건물신축지수까지 꼼꼼하게 체크, 금리를 내리거나 올릴 때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달에 한번씩 의회에서 FRB의 금융정책에 대해 브리핑한다. 이 때마다 페드워처(Fed watcher:FRB의 금융정책동향을 분석, 전망하는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이 그의 발언내용과 시사점을 해석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의회에서 증언할 때마다 옆에 배석한 FRB의 간부는 1분 단위로 미국 증시와 채권 등 금융시장의 동향을 메모쪽지로 리얼타임으로 전달해준다. 그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다우와 나스닥 지수, 채권금리가 롤러코스트를 타듯이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경제 바닥짚었다" 낙관에 우려의 시선

세계의 금융시장을 지휘하는 거장 그린스펀 의장도 요즘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 경기는 경착륙이 우려될 정도로 침체가 지속되고 있지만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미국 경제 전문가들조차 경제지표를 보는 관점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비관론과 희망론을 피력하는 혼란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리만 브라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슬라이퍼는 증시침체가 지속되고 소비자 신뢰지수도 악화하고 있어 FRB가 이르면 이번 주에 금리를 추가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반면 BOA증권의 이코노미스트 팀 마틴은 "봄까지는 경제여건이 개선될 전망이어서 3월 말 이전에 금리인하의 가능성은 낮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인플레 바이러스 퇴치와 경제의 연착륙 등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그린스펀으로선 1만4,000개의 데이터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미국 경제가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불투명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책당국의 대응능력이 긴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 일부 지표의 호전을 들어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다"며 낙관론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터널 속에 갇혀있는 한국 경제에 대해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따끔한 지적을 하고 있다. 개구리가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경칩(3월5일)이 문 앞에 와 있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도 동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3월로 접어드는 이번 주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은 안개속에 싸인 금융 및 자금시장의 안정대책에 쏠려있다.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연ㆍ기금을 동원한 증시부양, 국고채 발행물량 및 시기 조절을 통한 회사채 시장 활성화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정권지지도와 주가지수의 상관관계를 실감하고 있는 국민의 정부는 이번 주에 연ㆍ기금 3,600억원을 주식매수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공무원연금 및 기업연금 등 공적인 연ㆍ기금에 대해 국채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도록 방화벽을 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안전성이 생명인 연ㆍ기금을 증시에 투입하는 것은 추락한 증시를 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월급쟁이의 유일한 노후생계수단인 연ㆍ기금이 원금까지 까먹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 경제의 항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각종 지표들이 이번 주에 잇따라 발표된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증가율은 사실상 제로성장(0.1% 증가)에 그쳐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월중 물가동향(28일), 2월 무역수지동향(3월2일)도 실물경기의 바닥탈출 시기를 가늠케 할 지표가 될 전망이다.


경제항로 가늠할 각종 지표 발표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28일, 현지시간), 미국 구매자관리협회 지수(3월1일) 내용도 국내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가는 나스닥 지수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지수가 나쁘게 나올 경우 이번 주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증언하는 그린스펀 의장이 다시한번 '마법사 역할'(추가금리 단행)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5일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 3년이 지났다. 정권출범 초기 중환자실에서 신음했던 한국 경제는 그동안 재벌 및 금융 등 4대 개혁에 힘입어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잦은 정책실기, 정책의 일관성 부족, 대우차 및 현대건설 등 부실기업의 처리지연 등으로 또다시 시련기를 맞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3주년이 구조조정의 마무리가 아닌, 구조조정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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