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집권 3년 성적은 낙제점?

시민단체들 참혹한 평가, 실망인가 채찍인가

참혹하다. 2월25일 집권 3년을 넘어 4년차로 접어든 '국민의 정부'에 대한 성적표다. 다름아닌 시민단체와 학계의 평가가 그렇다.

1998년 2월25일 정권 출범 당시 '든든한 우군'으로 인식됐던 시민단체까지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왜 그럴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커서일까. 아니면 그래도 남은 2년에 기대를 갖고 채찍질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실망과 기대의 착종 때문일까.

DJ정권의 집권 4년차는 중요하다. 일단 선거가 없어 정치바람을 가장 적게 탈 수 있는 시기이자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DJ정권이 추진중인 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이 가속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대통령 비서실은 최근 '국민의 정부 출범 3년의 주요 성과 및 향후 과제'라는 80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자료는 "21세기형 선진국가의 기초를 닦았다"며 집권 3년을 자평했다.

경제 재도약의 기틀 조성, 선진 복지사회의 기본틀 마련, 정보화 사회ㆍ지식경제 기반 조성, 법치와 인권이 우선되는 민주인권국가로의 발전, 화해와 협력의 새 한민족 시대의 개막을 치적으로 거론했다.


시민단체 '빈껍데기 개혁'등 시국선언

그러나 시민단체는 이 같은 DJ정권측의 평가를 일축했다. 2월21일 성공회 대강당에서는 '개혁쟁취를 위한 사회 각계 인사 1만인 시국선언'이 있었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평화인권연대, 전국연합, 여성민우회 등 주요 사회단체가 망라됐다.

시국선언 참가자는 분야별, 지역별로 모두 1만3,610명. 시국선언의 목적은 시민사회의 개혁의지를 재천명하고 절대절명의 국가 개혁작업을 방기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규탄하는 것. 시국선언은 크게 7개 사항으로 구성됐다.

첫째, "국민의 정부 3년간 국가개혁은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취임후 한 개혁 약속이 대부분 좌절되거나 '빈 껍데기 개혁'으로 전락하면서 총체적인 신뢰공황의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낡은 정치의 악순환과 개혁 리더십 부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DJ와 민주당이 지난 3년간 국민의 요구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스스로 기득권 집단이 돼 관료화, 보수화해왔다는 주장이다. 선언은 현상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있다고 말했다.

셋째로 "부패방지법, 국가인권위원회법, 국가보안법 등 3대 개혁입법은 개혁의 출발점이자 시금석"이라고 밝혔다. 시국선언은 개혁입법의 사실상 좌절로 노벨상 수상과 남북정상회담이 무색해졌다고 비난했다.

특히 부패방지법과 인권위원회법은 검찰 등의 반대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넷째로는 "교육개혁과 언론개혁 역시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 그리고 다섯째로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국선언은 경제부실의 책임과 개혁의 고통이 여과없이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되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재벌경제의 폐해는 개선이 안된 반면, 부실로 인한 고통은 고실업률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고용불안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섯째로 "정치적 기득권과 관료주의를 뛰어넘을 개혁적 힘은 참여민주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고 이 선언은 밝혔다.

여기서 시국선언은 정치권이 자체 개혁에 실패했다며, 내년 지자체 선거와 대선 전까지 정치개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총선연대에 버금가는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정권이 지방자치제의 문제점을 빌미로 중앙집권적 통제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마지막으로 시국선언은 "대통령이 결단하라. 그리고 즉각 실천하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이 총재인 집권 민주당이 대통령의 개혁입법 약속을 뒤집고 있고, 그 지휘 하에 있는 법무부가 개혁입법에 저항하거나 형해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선언은 개혁정부라는 최소한의 명분마저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정권에 대한 태도를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3대 개혁입법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DJ정권에 개혁을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학계 '국민없는 국민의 정부' 혹평

그렇다면 DJ정권에 대한 학계의 평점은 어떨까. 2월2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김대중 정부 3년을 평가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했다. 부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모순을 심화시킨 국민없는 국민의 정부'였다. 민교협의 평가 역시 혹독하다.

민교협은 DJ정권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는 종속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다고 평가했다.

사회적으로도 연대와 평등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복지정책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DJ정권의 히든 카드인 남북화해와 협력에 대해서는 선언적이고 정략적인 차원을 탈피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민교협 평가를 세부적으로 보자. 첫째, 부진한 민주개혁. DJ정권이 진정한 개혁을 추진했더라면 소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의 '특권적 카르텔'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당내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활성화에 실패했다. 남북관계도 정권의 이해차원에서 접근하는 잘못을 범해 실질적, 가시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둘째, 신자유주의와 대외종속의 심화. 먼저 재벌개혁이 허구에 그쳐 경제 체질개선에 실패했다. 금융구조조정은 막대한 국민세금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한 후 외국자본과 재벌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같은 영ㆍ미식 시장주도의 금융개혁 모델은 국가경제의 파탄을 재촉하는 길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공기업 민영화와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이뤄져 공공성의 후퇴를 초래했고, 공기업을 재벌에 넘김으로써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증폭시켰다.

노동부문 구조조정은 초국적 자본의 요구를 수용하여 시장원리를 노동사회에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고용 유연화, 임금 유연화, 노동권 제한 등 노동배제적 정책으로 인해 노동운동과 국가, 노사간의 대립이 격화됐다. 농업부문에서는 가격지지정책을 후퇴시키고 유통개혁에만 매달려 식량자급도 하락, 농산물 가격폭락, 농가부채 누적 등 농업해체를 심화했다.

대외경제에서는 자본자유화가 국내경제 효율성 제고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외국자본의 지배력만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무너지는 공공성. 생산적 복지를 내세운 사회복지정책은 자본에 투항한 DJ정권의 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했지만 실제 적용대상은 이전보다 줄었으며 급여 수준도 너무 낮았다.

의약분업은 의료기관 운영을 병원과 제약사의 주도 아래 온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교육개혁은 김영삼 정권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해 관료의 독점적, 배타적 정책운영을 혁파하지 못했다. 세무조사 등 타율적 수단에 의존함으로써 언론개혁 역시 정략적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민교협은 지난해 말 한 민중집회에서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민교협은 "DJ정권이 남은 임기 동안 개혁에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 심판 받은 것" 경고

'인권운동사랑방'이 2월22일 내놓은 성명도 "인권은 이용물에 불과했다"고 공격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DJ 집권 3년 평가를 보자. 국가보안법과 사상ㆍ양심의 자유(정체 혹은 후퇴), 집회시위의 자유(현저한 후퇴), 창작ㆍ표현의 자유(정체 혹은 후퇴), 5ㆍ6공 인권침해자에 면죄부 및 박정희 미화(현저한 후퇴) 등에서 과락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저소득층과 농민, 노숙자 등과 관련한 생존권, 노동권, 건강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보장에서도 평가는 마찬가지였다.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법제화한 데 대해서는 절반의 진전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것도 DJ정권의 적극적 의지가 아닌 유가족의 투쟁에 따라 얻어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원도 2월21일 학계ㆍ언론계 인사 등이 참가한 세미나를 통해 평가작업을 했다.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김인영 교수는 "DJ정부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과 공고화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이 선택한 양당 체제를 정치적 편의를 위해 '의원임대'란 수단을 동원해 3당 체제로 바꾼 것은 비민주적이라고 지적했다. DJ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 성균관대 경제학과 안종범 교수는 "한마디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벌려놓기만 했다"고 평가했다.

다분히 시혜적 복지로 인식되는 정책대안이 복지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이에 따라 목표 효율성 개념 도입, 효율적 사회안전망 전달체계 구축,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 등 방안을 제시했다.

'여성단체연합'(여연)은 22일 'DJ정부 여성정책 3년 평가토론회'의 총평에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여연은 DJ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여성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사회이슈화하는데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집권 3년간 여성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간제 노동은 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지적했다.

여연은 "DJ정부가 여성정책에 관한 한 돈 안들이고 전시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대안과 지향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에서 DJ정부의 여성정책에 박수를 칠 수 없다는 것이 여연의 이야기다.


국민들 '실망 채찍' 동시에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훨씬 빠른 게 정권의 생리다. 잔여임기 2년을 남겨둔 DJ정권은 이제 레임덕의 최소화에 발목 잡힐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의 혹독한 비판은 실망과 채찍질 중 어느 것에 무게가 실려 있을까.

전국연합 김기창 조직국장은 실망과 채찍질의 의미가 동시에 담겨있다면서도 "개혁완수에 대한 기대는 별로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또 각계 인사 1만여명이 시국선언을 한 배경에는 다방면의 개혁지체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보수인사를 당 대표에 앉혀놓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게 그가 드는 위기의식의 한 예다.

하지만 1만인 시국선언이 말미에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직은 DJ를 포기할 수 없는 시민단체들의 복잡한 감정을 표출한 것일지도 모른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7 18:5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