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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파의 도전 "뭉쳐서 바꿔보자"

소장파의 도전 "뭉쳐서 바꿔보자"

2월14일 국회 귀빈식당에선 '작은 거사'가 진행됐다. 개혁 성향의 여야 소장파 의원 23명이 모여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약칭 정개모) 결성식을 갖고 지역주의와 보스주의, 패거리 정치의 극복을 주장한 것.

여야 의원들이 당의 벽을 넘어 처음으로 만든 연대기구인 정개모의 출범은 '당론에 얽매인 거수기가 되지 않겠다'는 소장파 의원의 선언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론에 얽매인 거수기는 되지 않겠다."

정개모 결성이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민주당 이재정 의원과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이 "여야 소장파 의원의 연대기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은 후 주변 동료의원을 상대로 조직꾸리기에 들어갔다.

이후 모임이 거듭될 때마다 참석자가 늘어나 민주당의 김태홍 정범구 송영길 김성호, 한나라당의 김홍신 안영근 서상섭 김영춘 의원 등이 뜻을 같이 했다.

여야 소장파 의원이 이렇게 쉽사리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지난해 당지도부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당내 민주화와 자유투표(크로스 보팅)를 주장하는 등 공동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

특히 지난해 9월을 전후로 당시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 정상화를 위한 공동방안을 모색했던 경험은 이들이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국회로 들어와보니 밖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정당정치의 벽이 너무 높아 (소장파는)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개원이래 여야 대결정치가 거듭되면서 당론에 따라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거수기 노릇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무력감을 느꼈고 무언가 돌파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두차례의 공식 회동과 수차례의 물밑 접촉을 통해 2월14일 국회에서 마침내 결성식을 갖고 출범을 선언했다.

이날 결성식에서 참석자들은 국가보안법, 반부패 기본법, 인권법 등 이른바 3대 개혁법안의 공동처리를 시작으로 개혁ㆍ민생법안을 함께 만들어내고 매달 한차례 모임을 통해 당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적인 의정활동을 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되풀이되어온 소장파의 도전과 좌절

사실 소장파 의원들이 기성정치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5대에도 당시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초ㆍ재선 의원은 각각 '푸른 정치 모임'과 '희망연대'를 결성, 나름대로의 개혁적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16대에서도 한나라당에선 '미래연대'란 모임이 만들어졌다.

16대 초반에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망월동 묘역을 공동참배한 후 국회의장 자유투표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장파의 도전은 언제나 높은 벽만을 확인한 채 실험으로 끝났던 것이 사실. 16대 초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386 소장파도 국회법 날치기 사건 등으로 가파른 여야 대치 국면이 시작되자 스스로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일부 386 의원은 당지도부의 계속된 회유와 압력에 굴복, 침묵하거나 아예 당의 공격수로 나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개모의 미래에 대해서도 "한두 번 목소리를 내다가 당지도부의 견제를 받으면 잠잠해지겠지."라며 뜨악해 하는 시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들은 스스로 첫 과제로 내세웠던 국가보안법 처리를 놓고 내부혼선을 드러내는 등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도전과 좌절'이라는 선배들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불길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더구나 향후 정국이 2002년 대선국면으로 들어갈 경우 여야 정치권이 정권쟁탈전이라는 대결정치를 피할 수 없다는 정치적 상황도 이들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될 수 있다.

대선구도가 본격화할수록 여야 양당 지도부가 이들에게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결단을 강요하기 시작할 것이고 한가하게 '적과의 동침'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추진하는 국보법 개정 방향이 민주당과 비슷한 시각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정개모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당직자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면서 "보수노선을 유지해온 이회창 총재와 당내 개혁세력을 분리하기 위한 모종의 움직임일 수도 있다"고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총재는 정개모 결성 움직임이 활발해진 지난달 26일 정개모에 참석한 한 의원을 가회동 자택으로 불러 "당이 분란에 빠지면 안된다"면서 몸소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또 한나라당의 일부 중진도 당내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집안단속에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한 중진으로부터 당의 단합된 모습이 중요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게릴라 전술로 돌파하겠다.

정개모에 참여하고 있는 소장파 의원들도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이같은 걸림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임을 할 때마다 가장 심각하게 논의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일단은 자신에게 주어진 각종 현안을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과정에서 조직내부의 역량을 키우고 극복해가는 일종의 게릴라 전술로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 하다.

"그동안 소장파 의원들이 말만 앞세운 측면이 있고 그래서 언론플레이하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실천하기 어려운 이슈는 자제하고 실천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쪽으로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노숙자 시설이나 남대문시장 등 민생현장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정개모 한나라당 간사 김원웅 의원)

또 한나라당의 김영춘 의원은 "너무 욕심을 내고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분명하게 하나씩 이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김성호 의원도 "처음에 아주 느슨한 단계의 정책연대로 시작한 후 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는 국보법 개정문제가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6대 국회 중반에 새롭게 시작된 소장파의 도전 정개모가 기성정치의 제약을 뛰어넘어 한국정치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천호 정치부 기자 toto@hk.co.kr

입력시간 2001/02/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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