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무방비 사회] 성희롱! 당신도 가해자일 수 있다

'아차'하면 망신살, 스스로를 돌아봐야

권리와 책임를 인식하면 매사가 다른 각도에서 보이게 되고 또 조심하게 된다. 성희롱을 인권침해로 인식하면 지금까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갔던 일이 더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된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의 여성특별위원회(올 1월29일 여성부로 승격)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66.7%가 성희롱을 인권침해로 인식했다. 여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직장에서 언행을 조심하지 않으면 망신살 뻗치기 딱 알맞게 됐다.

1999년 7월1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성희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공공기관, 민간 사업장을 막론하고 성희롱 사건이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법제정과 주요 피해자인 여성의 권리의식 향상과 궤를 같이 한다.


사회 전반에 끊이지 않는 성희롱사건

가장 최근의 공공기관 성희롱 사건은 총리실에서 벌어졌다. 지난 2월16일 총리실 소속 2급 공직자 한 명은 성희롱 주장이 제기되자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다.

임시취업한 여직원에게 치근거리거나 인터넷의 음란 사이트를 같이 보자고 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앞서 1월17일에는 육군 0사단장 김모 소장이 부하 여군 중위를 상습 성희롱한 혐의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피해자 어머니에 따르면 사단장은 딸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집무실과 공관으로 불러들여 성희롱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무고라며 국방부에 항고했지만 군대 내부의 성희롱 문제는 네티즌이 가세하면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이정빈 외교부 장관의 여성비하 발언과 환경부 1급 공무원의 여성장관 비하발언으로 공직사회가 떠들썩했다. 오죽했으면 여성특위 위원장이 연말 술자리에서의 성희롱 예방을 촉구하는 편지를 고위공직자들 앞으로 띄웠을까.

민간기업에서는 더 심하다. 지난해 7월 호텔롯데에서는 여직원 327명이 그동안의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노동부에 진정해 32명이 성희롱 판정을 받았다.

이랜드 그룹에서도 지난해 9월 여직원 '군부대 서비스 교육'이 '군부대 위문'으로 변질돼 말썽을 빚고 있다. 여성특위가 여직원과 군사병간 각종 게임을 성희롱이라고 주장한 노조원 25명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성폭력과 다르다. 성폭력은 형사처벌의 대상이지만 성희롱은 그렇지 않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성희롱의 정의를 보자. 성희롱은 우선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포함한다.

성희롱이 구성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우선 당사자 요건. 직장내 성희롱의 가해자는 고용ㆍ근로조건에 관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업주나 직장상사 및 동료 근로자와 부하직원이 포함된다.

피해자 범위는 사업주를 제외한 모든 남녀 근로자와 모집ㆍ채용과정의 구직자까지 포함된다. 사업주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 않은 파견 근로자, 원청 근로자 역시 성희롱의 당사자다. 그러나 고객이나 거래처 직원은 직장내 성희롱의 당사자가 아니다.


지위 업무와 관련선 있어야 성희롱

성희롱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의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지위 이용 및 업무와의 인과관계만 있으면 사업장 내외를 불문하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희롱은 성적인 언어나 행동에 의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하는 행동이어야 한다. 특히 유의할 대목은 성적 굴욕감 여부의 판단이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관점에 달렸다는 것.

여성부 발표에 따르면 1999년 7월1일부터 2001년 2월20일까지 접수된 성희롱 사건은 모두 155건. 이중 36건이 남녀차별개선위에 의해 성희롱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여성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강제력이 없는 시정권고에 불과하다.

남녀고용평등법과 관련해 노동부에 접수된 민간기업내 성희롱 사건은 훨씬 많다. 노동부는 2000년 한해 363건의 성희롱 진정을 접수해 이중 84건에 대해 직장내 성희롱으로 결정했다. 접수건수로 보면 1999년의 19건에 비해 19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여성의 나이는 25세 미만 22명, 25~30세 44명, 31~35세 11명, 45세 이상 3명 등이었다.

성희롱의 유형에는 언어적, 신체적, 시각적, 성적 서비스형 등이 있다. 언어적 성희롱은 가벼운 성적 농담, 신체와 몸매에 대한 성적인 평가나 비유, 음담패설 등이다.

신체적 성희롱은 의도적으로 손, 어깨, 가슴, 엉덩이 등을 만지는 것. 시각적 성희롱은 특정 신체부위를 훑어보거나 야한 사진(인터넷 포함)을 보여주는 행위다. 성적 서비스형은 회식시 남자 직원 옆에 강제로 앉히거나 술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여성부가 공공기관 근무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희롱 유형 중 성적 농담이 가장 빈도가 높았다.

이어 술접대, 가벼운 신체접촉, 음담패설, 시선, 야한 사진, 심한 신체접촉, 성적 관계 요구의 순이었다. 유형에 따라 피해자의 대응도 달랐다. 의도적 신체접촉 등 심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여성의 50.8%가 불쾌한 표정과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가벼운 성적 농담에 대해서는 여성의 68.1%가 무시하거나 가만히 있었다.

성희롱 피해는 하급직, 일용직 여직원일수록 잦다. 숫적으로 여성이 적은 곳일수록, 직장 분위기와 상사의 태도가 성희롱에 관대할수록 발생빈도가 높았다.

아울러 다수의 여성 피해자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두려워 해 실명신고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여성은 인격적 모욕감은 물론이고 스트레스와 직장생활 위축, 작업능률 저하를 호소했다.


인격까지 파괴하는 경우 많아

성희롱이 인격파괴까지 간 경우도 적지 않다. 호텔롯데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노동부 진정에 앞서 피해사례를 모아 보니 성희롱의 도가니 속에서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몇가지 예를 보자.

"요즘 임신부가 왜 이리 많냐. 산란기냐?", "임신하더니 가슴이 빵빵해졌네. 이리와 봐.", "(여직원의 성기 주변을 느닷없이 만지며)야! 이X아, 많이 팔았냐?", "(가슴을 만지며)아이고 이X, 나이는 꽤 들었는데 젖은 아직 쓸만하네."

이 같은 성희롱 때문에 여직원들은 근무중 가해 상사를 피하기 위해 짧은 동선을 길게 돌아가야 했다. 가해 상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손님이 불러도 못들은 척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노조 관계자는 "호텔은 항상 미소가 필요한 곳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우리가 웃으며 고객을 대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호텔롯데 노조측에 따르면 노동부에 의해 성희롱 피해가 인정된 여직원들은 직장에서 또다른 피해를 보고 있다. 인사에서 근무편성까지 막강한 권한를 갖고 있는 가해 상사가 노골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직원은 가해자들이 무고를 이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불려다니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 발생에는 사업주의 책임이 크다. 사업주는 가해직원에 대한 처벌권을 갖고 있다.

연 1회 예방교육 실시 의무도 사업주가 지고 있다. 처벌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 예방교육을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는 사업주의 판단에 달렸다. 노동부와 여성부는 성희롱 여부 결정과 이에 따른 권고를 하는데 그친다.

정강자 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만연한 성희롱의 근인을 남성우월적 의식구조에서 찾았다. 정 대표는 "이제는 여성들이 깨어나고 있고, 또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들 정신 못차리면 정말 큰 코 다칠지 모른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7 19:41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