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50)]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 이정근(上)

"우리가 꿈을 꾸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고 믿는다." 회사의 명칭도 첨단 '꿈공장'인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Digital Dream Studio). 화두도 꿈이다. 올해에는 사람들이 가진 꿈을 100% 실현시켜줄 회사로 우뚝 서기를 원한다.

DDS의 이정근 사장. 그의 꿈은 야무지기만 하다. 환상 속에 빠져있는 것 같으면서도 디지털시대에는 가능한, 참으로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3D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영화 등 첨단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우리를 꿈속 환상의 세계로 여행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또 한국을 첨단문화의 강국으로 만들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시장에 내다파는 작업이다.


국내 3D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선두

DDS의 문화강국 꿈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서 따왔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백범일지 중에서). 이 사장은 이 문구를 가슴에 품고 DDS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언뜻 김구 선생의 높은 뜻을 기껏해야 3D 게임업체에 불과한 DDS가 이룩한다니 그 뜻을 훼손할 것만 같다는 느낌이 40대 늙은이(?)들에겐 적지 않지만 세계무대엔 이미 3D 게임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이 '문화권력'에 편입된지 오래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 같은 컴퓨터 게임은 전세계 청소년의 마음과 정신을 장악했고 3D 애니메이션은 픽사(PIXAR)가 월트 디즈니와 손잡고 내놓은 '토이 스토리'(1995년, 감독 존 래스터)의 성공을 계기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픽사는 '벅스 라이프'(1996년), '토이 스토리2'(1999년) 등을 잇달아 발표, 애니메이션 신화를 일궈냈다.

현재 전세계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약 57억 달러. 이중 미국과 일본이 90%를 점유하고 있다. 누구든 이 시장에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선 이 사장이 선두주자다.

"3D 애니메이션은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2D(셀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수익이 50배나 더 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겐 7년간 구축해온 제작기술과 노하우,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지요.

최근에 비즈니스 파트너로 합류한 존 우 감독과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배급망을 활용하면 제2의 픽사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의 자신감은 오랫동안 우리 업체들을 묶어놓았던 3D 애니메이션의 하청제작 구조를 DDS가 무너뜨리면서 시작됐다.

DDS는 세계적인 스튜디오의 하청제작에서 벗어나 기획 및 창작 능력에 디지털 기술을 덧씌우는 작업을 통해 레인보우 스튜디오나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유명업체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두 회사와 합작으로 설립한 인테인먼트회사 '디지털 림'이 그 결과다.

그러나 DDS의 애니메이션 매출은 아직도 미미하다. 지금까지 주력업종이었던 CD롬 타이틀 제작 등 영상분야가 매출의 60%, 게임이 30%를 차지하고 애니메이션이 10%에 불과하다. 올해에는 이 비율이 깨질 것이라고 이 사장은 자신했다.


첫 사업 실패로 '시장을 보는 눈' 키워

이 사장이 꿈을 찾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뛰어든 것은 벌써 8년째.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나와 SKC중앙연구소에서 대용량매체인 광미디어를 연구하다 매체보다는 매체안에 담기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벤처창업에 나섰다.

물론 거기에는 그의 끼가 발동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문학을 공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자연계열을 강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뜻을 따랐는데 항상 가슴속 한 구석은 비어있는 듯 했어요.

아마 타고난 끼 때문이겠지요. SKC 연구소에서 CD롬, DVD, 광미디어같은 첨단매체를 연구하다가 뉴욕의 비주얼아트스쿨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싶어 그만두었는데 주변 여건이 유학을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더군요. 그래서 새 매체에 담을 컨텐츠(내용)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에게는 새 매체를 다루는 엔지니어로서의 능력과 끼,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1992년 11월 용산에서 온라인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회사를 세웠다. 밥솥을 갖다놓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밤낮으로 일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홈쇼핑처럼 주문을 받아 전송시켜주는 일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엔터테인먼트 전문 B2C기업이었다.

"당연히 실패했지요. 시쳇말로 최진실 얼굴을 하나 다운받는데 5분씩 걸리는 통신 인프라에서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되겠어요?"

이 사장은 6개월만에 탈진해서 119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그때서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 보였다. 압축파일 전송이라는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시장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그는 시장을 보는 눈을 키웠고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발빠르게 움직여 업계에서는 '성공제조기'로 통한다.


윈도 95용 3D게임 개발로 승부

이 사장의 첫 성공은 CD롬 타이틀에서 나왔다. 타임워너사와 제휴해 게임 CD롬을 국내에 보급하다 1994년에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를 직접 CD롬 타이틀로 제작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 시장은 지금도 그 때의 성공비결은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은 결과라고 진단한다.

"CD롬 플레이어가 1993년엔 우리나라에 3,500대 정도였어요. 그러나 컴퓨터 보급으로 CD롬 플레이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CD롬 타이틀을 제작했는데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그는 베스트 셀러였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도 CD롬 타이틀을 제작해 큰 재미를 보았다.

이 사장이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께다. DDS의 전신인 한겨레 정보통신 시절 윈도95 컴퓨터용 3D게임인 '왕도의 비밀'(최인호 원작)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이 한편으로 DDS는 1997년도의 게임 관련 대상은 모두 휩쓸었다.

이것 역시 시장을 보는 눈의 승리였다. "1994년부터 게임에 뛰어들었는데 마침 윈도95가 나온다는 소리가 들려요. 알아보니까 윈도 환경하에서는 3D게임도 가능하더라구요. 그래서 남보다 먼저 윈도95용 3D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 승부를 걸었지요."

DDS는 이 한번의 승부수로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이 즐겨 사용하는 기업의 전략적 변곡점을 넘어서게 된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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