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국악] 전통 국악의 멋을 찾아서…

다양한 대중화 노력, 틀 유지하며 생활 속으로

국악의 대중화는 오래도록 국악계 전체의 가장 큰 화두였다. 구한말 서양음악이 유입된 이래 우리 음악인 국악은 대중과 급격하게 멀어져왔기 때문이다.

젊은 국악인이 새로운 형식의 대중국악을 지향하고 나서는 동안 전통국악쪽에서도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되어왔다.

전통국악도 대중화라는 대원칙에서는 대중국악과 같다. 하지만 접근방법이 다르다.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은 이를 '온고지신'(溫古知新)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내려온 우리의 전통음악을 요즘 사람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음악어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찬성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악의 원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전통국악을 근간으로 삼되 새로운 것이 때로 원형의 파괴로 이어지기도 하는 대중국악에 비하면 보수적인 입장이다. 윤 원장은 일례로 개량 가야금을 든다.

"견사로 만든 전통 가야금은 오음계에 적합하기 때문에 혹자는 음역을 넓히기 위해 합성섬유로 된 25현 가야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을 듣게 되면 서양 악기인 하프와 소리나 연주기법이 거의 흡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사물놀이, 국악 저변확대에 큰 역할

전통국악의 대중화 노력은 두 단계를 거치며 진행되어왔다. 1단계는 철저하게 궁중음악과 선비음악 위주였던 국악이 민요와 판소리, 산조 등 민속음악을 포괄하기 시작한 것.

이는 1951년 국립국악원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이때의 대중화는 아주 넓은 의미, 즉 국악이라는 틀 안에서 대중음악에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이 같은 1단계 대중화 작업은 1950-1960년대를 거치며 국악의 보급 및 보전 등 비교적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2단계 대중화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이루어졌다. 각 대학을 중심으로 마당극 붐이 일기 시작하고 서울대의 여민락 등 국악 동아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 이러한 대학가의 움직임은 오래도록 젊은 층으로부터 줄곳 외면당해온 국악을 다시 청년문화 속으로 불러들였다.

뒤이은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결성과 1985년 KBS 국악관현악단의 결성도 빼놓을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통 풍물 리듬을 현대화한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았고, 이후 사물놀이 붐은 물론 국악의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1970년대 마당극으로부터 시작된 대학가의 움직임이 19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더욱 확산되면서 사물놀이와 판소리 살풀이춤 등은 대학가의 빼놓을 수 없는 공연형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시대 양반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해온 사물놀이와 판소리가 이제는 국악의 대명사처럼 되다시피 했다.

국악에 대한 인식론적 대중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데 반해 대중 사이에서는 여전히 국악에 대한 감성적 거부감이 존재한다.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전통국악의 노력은 대중국악에 비하면 한눈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전통국악 대중화의 모범 사례들은 종묘에서 행해지던 제사음악을 음악과 무용, 제례가 결합된 무대극으로 만든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 공연과 사라져가는 경서도 소리를 이용해 만든 소리극 '남촌별곡'처럼 온건하다.

원형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대중은 옛 국악과 많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전통국악의 점진적 대중화는 외래의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대중국악의 노력에 비해 더 어려운 작업이다.


"친숙해지고 즐길 수 있게 해야"

때문에 최근의 전통국악 대중화의 노력은 무엇보다 교육에 집중된다. 이러한 노력은 "전통음악은 언어와 같아 배움을 통해서 보다 친숙해지고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의 말로 대변된다.

"우리가 처음부터 서양음악에 익숙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꾸 듣고 생활화하니까 저절로 그것이 귀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국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니까 싫고, 싫으니까 외면만 할 게 아니라 교육과 방송 등을 통해 꾸준히 국악을 접하다 보면 고루하게 느껴졌던 우리 음악에서 다시 그 멋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전통국악이 주목하는 교육은 학교교육과 일반교육 모두를 포괄한다. 1994년 국악의 해를 계기로 현재 초ㆍ중ㆍ고교 음악교과 과정 중 국악 비중은 30~40%까지 올라갔다.

내용적으로도 단순히 장단의 종류를 암기하는 등 이론중심에서 벗어나 민요 부르기, 전통악기 연주, 가락짓기 등 표현 중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 사범대나 서양음악 위주의 음대 출신 교사들로서는 교과서 안의 국악을 학생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 국악원 등에서는 이를 위해 지난해에만 1,500명의 일선 교사에게 국악연수를 시켰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주말과 방학을 이용, 1년에 1,000~1,500명의 학생에게 우리 음악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국악원은 보다 넓은 의미의 교육을 위해 오는 3월 국악 FM의 문을 연다.

현재 시험방송중인 국악 FM은 채치성 편성팀장을 비롯, 8명의 PD와 5명의 기술팀만으로 운영된다. 100%로 디지털 방송으로 오디오 파일을 사용, 음악과 해설 등 모든 자료를 컴퓨터에 저장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시스템이다.

국악 FM은 서울ㆍ경기지역에 주파수 99.1Mhz, 전북 남원 일원에는 95.9Mhz로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방송될 예정이다. 국악원의 한관계자는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도 즐겨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문감상용 프로그램 뿐 아니라 주부, 노인, 농어촌 주민, 운전자 등 청취대상을 구분,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방송매체 신설 등 저변확대 안간힘

이와 함께 얼마전 국악전문 출판사 국악중심(발행인 권오성 한양대 국악과 교수)은 국악전문지 '월간 국악'을 창간하고 인터넷 국악 방송을 겸한 국악 전문 사이트 국악센터(www.kukakcenter.com)를 개설했다.

국악센터에서는 각종 국악 음반이나 국악관련 서적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국악 공연평이나 국악공연 관람료에 대한 설문조사 등 국악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가입자에게 추첨을 통해 국악음반과 공연 티켓, 세종문화회관 1년 명예회원권을 제공하는 등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한 이벤트도 실시중이다.

이러한 국악계의 매체 신설 움직임은 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존 방송이 국악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체 해결 의지가 담겨있다.

현재 국악 전문 프로그램은 KBS 라디오에 4개, MBC 라디오에 1개 있고 TV는 이보다 훨씬 적어 '국악한마당'(KBS2), '퓨전 콘서트 가락'(MBC) 단 둘뿐이다. SBS의 '정겨운 우리 가락'은 이달초 개편 때 폐지되었다. 그나마 두 프로그램도 심야 아니면 오전에 편성되어 있고 특집방송이라도 있으면 밀려나기 일쑤다.

하지만 각 방송사는 시청률을 이유로 개편이 이루어질 때마다 국악 프로그램을 없애버리고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면 다시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국악 프로그램을 만든다.

하루에 다만 5분이라도 정기적으로 국악이 방송되었으면 하는 것이 국악계의 바람이다.

더불어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현재 서울대와 한양대를 비롯, 22개인 대학 국악과 졸업생들이 보다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절대부족 상태인 국악기관의 재원이 좀더 확충되기를 대다수의 국악인은 무엇보다 바라고 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7 21:00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