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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속의 고향 '전원일기' 20년

TV속의 고향 '전원일기' 20년

방송 1,000회, 국내방송사상 최장수 드라마 기록

서울 여의도는 여러 풍경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정치와 금융, 정보통신 등이 빠른 속도로 경쟁하는가 하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MBC 드라마 '전원일기'가 20년째 제작되는 곳이다.


중년의 최불암이 환갑이 되어 시청자를 만난다.

전원일기가 국내 방송사상 최장수 드라마를 기록하며 3월4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1980년 10월21일 1회 '박수칠 때 떠나라'편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김 회장 역을 맡아 등장했던 최불암은 이제 환갑이 되었다.

전원일기가 고향의 느티나무처럼 오래 우리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농촌 드라마라 전원일기가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새마을운동 같은 계몽 드라마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곧 극중 무대인 양촌리와 4대가 살아가는 김 회장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원일기는 어려운 농촌현실을 알려주고 따스한 농심을 끌어안는 상징이 되었다. 전원일기에서 돼지값 파동으로 돼지를 땅에 묻는 장면을 보며 시청자들은 농촌현실에 뼈저리게 공감하며 TV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전원일기의 무대 양촌리는 더이상 농촌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농촌의 피폐상을 고발하는 내용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농촌풍경으로 가족의 정을 강조한 내용이 시청자의 반응이 훨씬 높았다." 전원일기를 12년간 집필했던 김정수씨의 증언은 전원일기의 성격변화와 장수비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전원일기를 농촌보다는 서울 등 도시 사람이 많이 보며, 고정 시청자 비율이 51%에 이른다는 방송진흥원의 지난해 조사결과는 이 드라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제 양촌리는 모든 것이 변해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모두의 고향이자 언제나 편안함을 주는 농촌의 상징이다.

또 김 회장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아버지의 상이다. 또 많은 시청자들이 '일용엄니', '금동이', '복길이' 등 극중인물의 이름만 들어도 정겨움을 느낀다.

주창윤 서울여대 신방과 교수는 "전원일기에는 현대인이 상실해가는 가족의 사랑이 있고 잃어버린 고향이 있으며 사람과 흙의 냄새가 있다.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50분간이나마 이미지로 존재하는 고향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는 "농촌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드라마", "남성우월주의가 엄존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의 진원지"라는 등의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잃어버린, 혹은 잃어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전원일기는 여전히 존재가치가 있다.


드라마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전원일기

전원일기는 농촌 드라마나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장르를 개척하고 자리잡게 한 드라마사적인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쁜 호흡과 빠른 템포로 도시를 무대로 한 드라마 홍수 속에서 방향타 구실을 하고 있다. 갈수록 드라마가 자극의 농도를 더하고 있는 가운데 전원일기는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삶의 진정성을 담은 드라마를 만들게 하는 촉매제 기능도 하고 있다.

전원일기의 권이상 PD는 "요즘 유행과 감각을 쫓는 트렌디 드라마가 주류지만 전원일기는 한국적 정서로 승부를 거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PD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고 설명한다.


전원일기의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

1981년 김 회장 댁으로 입양된 꼬마 금동이가 결혼을 해서 분가한 것 만큼이나 20년 4개월째 방송되는 전원일기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차범석씨를 시작으로 유현종 김정수, 그리고 현재의 김인강씨까지 전원일기를 집필한 작가는 14명에 이른다.

김정수씨의 작가교육원 제자가 김인강씨다. 연출자는 초대 이연헌(아리랑TV 제작본부장) PD에서부터 13명에 달한다.

제작진만 바뀐 것이 아니다. 김 회장 집의 옛날 부엌이 가스렌지와 싱크대가 갖춰진 입식 부엌으로 변한 만큼 무대와 세트도 많이 바뀌었다.

양촌리 무대는 경기 양주군 일영면에서 양평군 강하면, 충북 청원군 문의면을 거쳐 현재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바뀌었다. "농촌이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해 농촌 분위기를 보존하는 동네를 찾다보니 무대가 자주 바뀐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나 연출자도 바뀌고 무대와 세트도 여러차례 변했지만 20년 4개월동안 전원일기를 지켜온 연기자들은 대부분 변하지 않았다.

김 회장 댁의 할머니 정애란, 김 회장 최불암, 어머니 김혜자, 아들 김용건ㆍ유인촌, 며느리 고두심ㆍ박순천, 일용엄니네의 김수미ㆍ박은수 등은 전원일기를 지탱해 온 연기자다. 이들은 산 증인이자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오래해서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아 출연진의 한 사람으로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최불암이 방송 1,000회를 맞는 소감이다.

"전원일기는 대본과 PD없이 출연자들끼리 눈빛과 마음으로도 능히 만들어 갈 수 있게 된 농익은 드라마"라는 소설가 박완서씨의 지적처럼 연기자들은 이제 스튜디오에만 들어서면 리허설이 필요없을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극중 부부인 최불암과 김혜자를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가 생긴 것도 오래 함께 출연했기 때문이다.

전원일기를 지켜온 연기자들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다. 하나는 앞으로도 전원일기가 계속 방송되는 것이고 또하나는 지난해 방송 20년을 기념해 추진하다 좌절된 북한 농촌에서 전원일기를 촬영하는 것이다.


한국판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를 향하여

한 마을의 서민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상사를 그린 영국 ITV의 '코로네이션 스트리트'(Coronation Street)는 방송을 한지 41년째지만 요즘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시청률 저하로 폐지 위기에 몰리면서도 1,000회를 맞는 전원일기 역시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젊은 날 보기 시작한 전원일기를 자식들과 함께 오래도록 보고싶다"는 한 시청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배국남 문화부 기자 knbae@hk.co.kr

입력시간 2001/02/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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