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왕년의 스타 '신일룡', 지금의 스타 '조수현'

이따금 '왕년의 스타' 를 만날 때가 있다. '왕년' 이란 말이 이미 한 시대를 지나 지금은 과거의 화려했던 이름만을 되새긴다는 뜻일 텐데, 그래서 그들은 주로 과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영화를 할 때는 이랬는데", "그 때는 참 낭만이 있었는데", "선배를 하늘 같이 알고, 대접을 했는데" 등등.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개 현실이 초라하다. 영화에서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어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왕년' 을 들먹이지 않는다.

'왕년의 스타' 도 여러 유형이다.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이 없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끝없이 자기를 드러내려는 사람. 그럴수록 초라한 현실의 자기 모습만 서글프다.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전혀 소리내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문득 "어디서 무엇을 할까" 라고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아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면 반갑다. 그리고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로 살아가는 그들은 평화롭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한 때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잊고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경우이다.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그리고 '의외' 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참 신기하네" 라고.

그 속에는 우리의 편견이 있다. 스타는 스타일 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부업을 하면 '인기를 이용해 편하게 돈을 벌려는 것이겠지'라고 여긴다.

1970년대 액션스타 신일룡(본명 김수현ㆍ54))씨도 그랬다. 1986년 '황진이'를 끝으로 그가 은막을 떠나 사업가로 변신하자 주위 사람들은 "분명 실패한다.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 는 식이었다.

그들의 얘기대로 되기 싫어서 그는 이를 악 물었다고 한다. 식당을 하면서 그는 직접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음식 맛을 보고, 메뉴를 개발했다.

그러기를 10년. 그는 외식사업에서 성공한 인물이 됐다.

1989년 그는 TV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로 잠깐 외도를 했을 뿐, 지금까지 신일룡이란 이름을 버리고, 조수현으로 살아간다. 조수현으로 만나도 그는 '스타' 다. 화려하지는 않다. 박수와 환호가 따라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가 타인의 관심이 되는 스타에서 자기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스타로 바뀌었다. 1996년 그는 돈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하는 등 인륜이 땅에 떨어진 우리사회를 개탄해, 아나운서 이계진, 개그우먼 김미화, 마라토너 황영조, 가수 김건모 등 각계 인사들과 함께 효(孝)문화센터와 효박물관을 지어 효교육과 실천운동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 포천에 있는 땅 8만평(당시 시가로 50억원)을 건립(추진위원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부지로 내놨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1월 20일 서울 명동에 문을 연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시애틀 베스트' 1호점의 수익 3%를 효박물관 건립기금으로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IMF 여파로 박물관 건립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시에틀 베스트 프랜차이즈 국내 독점권을 따내는 사업가로서 수완을 발휘한 그는 앞으로 300여개 까지 늘어날 국내 체인점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기금으로 양로원과 고아원, 불우한 원로배우들도 돕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애틀 베스트' 체인점을 가능하면 배우들의 부업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해 '거대한 스타 체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효자로 소문난 그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박복순 효도상'도 만든다.

"전국을 돌며 숨은 효자들을 찾아내 널리 알리고, 필요하면 내가 운영하는 곳에 취업도 시켜주겠다" 고 했다. 그는 부지런하다. 50대 중반이면서도 하루 두번씩 4시간 운동을 하고,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업을 찾고, 사회에 봉사할 방법을 찾는다. 그는 지금도 '스타' 이다. 박수와 인기보다 더 값진 인생을 사는.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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