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한 수마다 長考…엎치락 뒤치락

-오청원(吳淸原)의 치수고치기 10번기⑩

제1국은 9월28일부터 3일간에 걸쳐 건장사의 승방에서 두어졌다. 돌을 쥐어 기다니의 흑차례다.

기다니의 바둑은 혼인보 슈사이 명인의 은퇴바둑에서부터, 신포석 세력을 중시한 위치높은 기풍에서부터 자리를 낮게 착실히 집을 장만하는 기풍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차분히 집을 장만하고 중반에 접어들 무렵 상대방의 모양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기다니와의 바둑은 쳐들어온 돌을 둘러싸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이 바둑도 마찬가지로 흑은 낮게 귀를 차지하고 중반 가까이 백의 모양에 쳐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흑이 튼튼히 집을 마련하는 동안 백은 발빠르게 모양을 이룩하여 첫날은 흑이 여간 뒤진 모양이 아니었다.

이틀째는 흑모양에 백이 쳐들어와 대접전이 되었고, 돌파전에 흑이 성공한 듯 했으나 국면은 흑에게 그다지 호전되지 않아 흑이 약간 고전이란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흑77수부터 3일째로 접어들어 엎치락 뒤치락 바둑은 한결 확대되어 쌍방이 무척 착수가 어려운 대목이 따랐다. 기다니는 한수마다 끙끙거리며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기록을 살펴보아도 흑95수에 52분, 흑97에 65분, 흑101 에 55분. 기다니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120수째 오청원이 두집 정도 벌려고 미끄러져 들어간 수가 실착이었다. 흑의 거센 반격에 부딪쳐 큰 패가 생겼다. 기다니와 오청원은 필사적이었다. 이때 관전기자인 미호리 마사우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국은 진검이다. 바둑두는 사람은 필사적이다. 치수를 건 10번 승부의 결전을 새겨넣을 이 일전은 마지막 날 밤늦게 귀기(鬼氣)가 사람에게 다가서고 처절함이 땅을 치는 한 장면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흑57이 두어진 직후 기다니 7단이 코피 낸 다음부터다. 이토록 가슴이 콱 막하는 반측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서둘러 열어제친 미닫이 유리문, 산에서 불어오는 밤의 냉기는 건장사의 선방 구석구석까지 얼어붙어가는 것이다.

그 복도에서 이제 제한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기다니 7단이 데굴데굴 몸부림치고 있다. 머리를 수건으로 식혀가면서 "저편에서 생각하는 동안 나도 생각하고 싶은데."라고 외치는 것이다. 한때는 억지로 바둑판을 안았으나 "안돼"라고 비틀거리며 다시 나둥그러지는 것이다.

사실은 이 관전기자가 쓴 관전기 때문에 오청원은 시달림을 받게 된다. 기다니가 쓰러진 것이 코피 때문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줄곧 미세한 바둑이었던데다가 흑이 줄곧 고전이었던 것이 자신의 실착으로 국면이 호전되어 한숨을 쉬던 중 "휴우"하고 긴장이 풀리다보니 그만 빈혈을 일으킨 것이라 생각했다.

기다니는 대국중 피로가 쌓이면 가끔 빈혈증세를 보였다. 하시모토와의 대국에선 빈혈을 일으켜 30분간 휴식을 취하고 바둑을 둔 일이 있다.

하시모토의 말에 의하면 그 바둑은 큰 끝내기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기다니는 30분 휴식중 누워있으면서 머리 속으로 바둑판을 그려 자기의 한집승을 읽어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오청원은 기다니에게 마음을 쓸 계제가 아니었다. 반면에 있는 한 대국자는 어떤 상태로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많다. 실제로는 긴 의자에 누어있을텐데 '데굴데굴 구른다'는 표현은 과장된 것이다. 독자에게는 마치 괴로워 몸부림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뉴스화제]



●이창호, 기성전 9연패 위업

이창호 연승행진이 계속된다. 지난주 제4회 응씨배 우승에 이어 이번엔 기성전 방어다. 이창호 9단이 2월21일 벌어진 기성전에서 유창혁 9단을 맞아 제12회 현대자동자배 기성전 4국에서 133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3:1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조훈현 국수탄환 청신호-루이에 선승

조훈현 9단이 국수탈환에 청신호를 밝혔다. 지난 20일 벌어진 도전5번기 제1국에서 조훈현 9단은 루이 나이웨이의 강펀치를 비켜가며 198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두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2/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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