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이야기(11)] 진돗개의 역사

우리의 역사에서 개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부여시대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 부여전>(三國志 魏志 夫餘傳)에 부여의 관직 명칭으로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이 있다.

여기서 '구'(狗)는 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이 시기에 말, 소, 돼지 등의 가축과 함께 개를 이미 가축화해 기르고 있었던 것을 반증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우리 개들이 가축으로서의 위치를 어느 정도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한국견으로서의 혈통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하는 삼국시대 초기부터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 예로 부여를 흡수한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들 수 있다. 중국 집안(集安)지방에 있는 고구려 고분 각저총(5세기 후반-6세기 초)의 벽화에는 '고구려의 개'라 불리는 그림이 있는데 목걸이를 차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당시의 고구려 사람이 키우던 개가 틀림없다.

이 개는 귀가 삼각형으로 서있고 영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황구의 모습으로 오늘의 진돗개와 그 형태가 영락없이 똑같다.

그리고 이 각저총의 실물 크기로 그려진 '사냥하는 개' 벽화는 이 시기에 이러한 개들이 이미 사냥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리 토종개인 진돗개와 풍산개는 이런 종합적 상황 속에서 그 혈통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한 초창기 시대의 개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진돗개의 형상을 통해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동물의 경우 오랜 세월이 경과할수록 유전자의 돌연변이 및 색소변이 유전자의 활동 등으로 일어나는 '유전자의 다형화 현상'을 역으로 거슬러올라가 검은 털이 많이 섞이고 모질도 현재보다 더 거칠고 강한 개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말리거나 쭉 뻗은 모양으로 세운 꼬리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늘어뜨리고 낮은 산야를 질주하기에 적합하게 네 다리가 훤칠하면서 관절부위가 강인하고 뚜렷한 모양으로 발달된 개를 머릿 속에 그려보자.

이렇게 조금만 변화시켜 상상해보면 현재의 늑대나 시베리안 울프독(Siberian Wolfdog) 계열과 비슷한 강인함을 갖춘 개가 머릿 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렇게 상상해낸 개가 어쩌면 신석기 시대인 혹은 청동기 시대인을 따라 바이칼호 일대에서, 혹은 북만주 일대에서 한반도로 들어오고 일본으로도 건너간 것은 아닐까.

유입과 정착, 이같은 경로를 통해 들어온 고대의 개가 가견화(家犬化)하는 과정에서 다리나 꼬리가 조금씩 퇴화되고 뇌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주둥이도 조금씩 짧아지는 퇴화와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진돗개와 풍산개의 혈통 기반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진돗개의 한 특성으로 자리잡은 말린 꼬리나 장대꼬리를 밑으로 늘어뜨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리 진돗개는 다른 서구의 대다수 견종처럼 단시간에 인위적 잡종에 의해 만들어진 개가 아니라 이런 자연 속의 개를 기반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견종이므로 자연스러움 그 자체와 각 부위 생김새의 조화가 견종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혈통 형성의 역사 속에는 개를 잡아먹는 우리의 식문화가 선별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같은 여건이면 더 못생기고 더 능력이 떨어지는 개들이 많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반드시 어떤 형태나 성품을 목적으로 하여 선택되고 사육되는 개가 대다수가 아니었다는 상대적인 개념에서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개라고 할 수 있다.

또 진돗개는 세계적으로 역사가 가장 깊은 개 중의 하나다. 진돗개와 같은 계열의 다른 북방견종의 본질적 특성들을 조합하고 우리의 풍토와 옛날 우리 생활문화 속에서의 개의 역할, 진돗개의 견종 목적, 즉 수렵성에 부합되는 요소를 모아 정리하면 진돗개의 생김새와 외형적 특성이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윤희본 한국견협회 회장

입력시간 2001/02/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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