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위험한 정사, 어설픈 미스테리

■레드 레터

재능을 제대로 펴지못하는 배우가 한둘일까마는 나스타샤 킨스키만큼 아까운 배우도 없을 듯 싶다.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에 출연했을 때의 나이가 열일곱. 청순함과 유혹의 두 경계선을 무시로 오가는 그녀의 매력에 전세계 영화 팬이 설레였었다. 감독 운도 나쁘지 않았건만 <파리 텍사스> <사랑의 아픔> 정도를 빼고는 이렇다할 작품이 없다.

나이 들어 출연한 <원 나잇 스탠딩> <스와핑>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만을 위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조연으로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것이 여간 안스럽지 않다. 미모가 아직 남아있을 때 큰 역을 맡아 영화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비중이 큰 최근작으로 브레들리 베터스비의 2000년 작 <레드 레터:Red Letter>(18세, MV-net)가 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함과 악마적 유혹을 동시에 내뿜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그녀인지라 이 영화에서도 성실하게 살고있는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정체불명의 여인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에로 분위기의 스릴러라는 제작사의 선전문구는 도입부에만 해당된다.

알몸으로 책상 위에 걸터앉은 여학생이 방금 관계를 끝낸 교수 데니스 버크(피터 코요테)가 썼던 소설 '레드 레터'를 암송한다. 몸에 경련이 인다 운운하는 야한 대목들을 읽다가 그녀는 돌연 "누구와도 이 짓을 못하게 성희롱 죄로 고소하겠다"며 태도를 바꾼다.

과거에 썼던 소설 한권으로 인해 나다니엘 호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자로 유명한, 잘 생긴 독신 교수 데니스는 클레르몽트의 폴라드라는 작은 대학교의 강사로 좌천된다.

착실하게 수업에만 몰두하려는 데니스에게 학장의 딸 반 베른(페루자 발크)이 "13살에 레드 레터를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며 접근해오기 시작한다. 해커왕을 자처하는 셔튼 클라크 교수(제레미 피벤)만이 데니스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동료.

전 주인에게 배달된 편지 한통을 뜯어본 것이 데니스의 인생을 다시 바꾸게 된다. "13살에 첫 경험을 했어요"로 시작되는 편지와 옷을 벗는 장면을 연속으로 찍은 사진. 데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사진속의 여인을 혀로 ?는다. 그리고 그녀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편지의 주인공 리디아(나스타샤 킨스키)는 갑부 연인의 부인을 머신건으로 쏘아 죽인 죄로 30년형을 언도받아 6년째 복역 중이었다.

지적이며 아름다운 미지의 여인에게 끌리기 시작한 대학 교수와 그를 이용해 무죄를 입증하려는 여인간의 밀고 당기는 심리를 미스터리하게 풀어가고 있다.

애증에 얽힌 범죄라는 기본 줄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데니스로 하여금 나다니엘 호손에 대한 그럴 듯한 언급을 하게 한다. "호손은 죄의식과 열정에 사로잡힌 작가였다. 호손의 증조부는 마녀재판을 주도했다.

호손은 자신의 가족에게 저주가 내렸다고 확신했다. 호손은 약혼녀에게 무려 100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결혼하지는 않았다"는 등등. 한편 레드 레터에 대해 데니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죽고는 글을 쓰지 않았다. 섹스는 생명의 메타포어다. 그녀는 나의 분신이었는데 나는 그녀를 잃었다."

문제는 호손에 대한 해석이나 글쓰기에 대한 변명이 리디아라는 여성의 범죄와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고 따로 논다는 점이다. 심오한 뜻이 있을까 싶어 열중했다가 내쫓기는 기분이라니.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2/28 11:2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