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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봄맞이강 섬진강

[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봄맞이강 섬진강

섬진강은 봄맞이강이다. 영호남을 가로질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이 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다. 3월. 봄이 고스란히 섬진강에 머무는 때다.

봄의 첫 전령은 노란색의 산수유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산수유는 10월에 찬 서리를 맞으며 빨간 열매를 맺는다. 지난해에는 3월18일, 19일 산수유축제가 열렸는데 개화가 늦어 꽃망울만 구경했다. 올해에는 예년과 비슷하게 3월 중순 정도에 꽃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축제는 24일, 25일로 예정돼 있다.

전남ㆍ북의 경계인 밤재터널을 지나면 왼쪽으로 지리산 온천이 보인다. 온천 뒷마을인 상위마을(구례군 산동면)이 산수유 세상이다. 전국에서 나는 산수유 열매의 60%가 이곳에서 나온다.

산수유는 멀리서 보면 개나리와 맵시가 비슷하다. 수백그루씩 군락을 이루어 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가지와 꽃 모양이 전혀 다르다. 가지는 개나리처럼 처지지 않았고 꽃은 수십 개의 뿔이 난 왕관을 닮았다.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산수유 나무가 집중돼 있다. 반짝거리는 물빛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꽃. 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산수유가 만개할 무렵부터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다. 매화다. 매화는 한꺼번에 피고 지는 꽃. 한순간 산자락을 구름처럼 뒤덮었다가 눈처럼 꽃잎을 날리며 진다.

가장 유명한 매화촌은 섬진강의 남쪽에 있는 매화마을(광양시 다압면)이다. 그중 청매실 농원(061-772-4066)이 가장 유명하다. 논밭이 적었던 이곳 주민은 먹고 살기 위해 유실수인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70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연간 100여 톤의 매실을 생산한다.

매년 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작가와 화가, 문인이 화려한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꽃이 만개하면 이쪽 능선의 사람은 꽃에 파묻혀 보이지 않고, 저쪽 능선의 사람만 눈에 띈다. 거칠게 굽이쳐 흐르는 꽃의 바다다.

매화가 지는 4월 초. 봄의 꽃 축제는 절정을 맞는다. 섬진강의 양 기슭은 온통 하얀 꽃지붕으로 덮인다. 벚꽃이다. 강 북쪽을 달리는 19번 국도는 물론 강 남쪽 861번 지방도로의 가로수가 모두 벚나무다. 아직 수령이 별로 안돼 그리 탐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벚꽃의 정취에 젖을만 하다.

벚꽃의 명소는 쌍계사길이다.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잇는 4㎞(1023번 지방도로)다. 흔히 '10리 벚꽃길'로 불린다. 아름드리 벚나무의 긴 가지가 2차선 도로에 지붕을 놓은 것처럼 드리워져 있다. 꽃이 피면 꽃터널이고 꽃잎이 져 바닥에 앉으면 꽃길이다. 그 황홀한 모습은 '혼례길'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꽃이 만발할 때 혼례길에 들어서면 혼절해버릴 지경이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 모두가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차 안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모두 차를 길 옆에 세우고 걷는다. 걸어서 1시간이면 족한 거리. 그러나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까르르 웃다보면 두세 시간도 모자란다.

남녘의 봄을 전해주는 섬진강은 아직 오염의 아수라에서 벗어나 있는 건강한 강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 빛의 완성형이다. 작년 봄에는 오랜 가뭄에 모래톱이 하얗게 넓어져 그 색깔의 대비가 볼만했다. 지난 겨울 눈이 많이 내렸다. 지리산 기슭이 녹으면 수량이 많아져 지난해와 같은 풍광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진한 초록의 맑은 물이 그득하게 흘러갈 터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koh@hk.co.kr

입력시간 2001/02/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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