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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YS와 '처음'

[어제와 오늘] YS와 '처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은 종로서적에서 2월13~19일 사이 베스트 셀러 4위에 올랐다. 회고록의 표적중 하나인 김대중 대통령은 2월20일 "회고록에 사실과 다른 점이 있지만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고 청와대에서는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하나의 표적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21일 시작된 YS의 서도전에 YS가 임명했던 총리중 유일하게 참석을 하지않아 몸으로 저항했다.

YS의 회고록은 2000년 1월에 나온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의 속편이다. 전편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정치인 YS의 정치역정이었다.

또 그에 관해서는 숫한 평전이 있다. 그중 색다른 것은 '김대중 죽이기'로 필명을 얻은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저널룩 '인물과 사상'의 발행인)의 책. 그는 1995년 8월 '김영삼 이데올르기'라는 책을 냈다.

YS는 어떤 정치에서도, 어떤 주의에서도 이기는 것만을 신념으로 가진 정치인이며 그 대상은 DJ였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강 교수는 YS는 돈키호테적이며 '오만과 독선의 정치인'이었고 그의 정부는 '귀막은 정부'였다고 썼다.

강 교수는 또 올 1월에 나온 '인물과 사상' 17권에 'YS 신드롬과 지역주의'라는 글을 썼다.

'승리 이데올로기'에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자'라고 덧붙인 것이다. "YS는 박정희가 죽고 김일성이 죽은 것도 자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이회창이 대선에 진 것은 자기를 욕했기 때문이며..

지난 99년 5월에 일어난 '페인트 계란사건'은 자기를 골탕먹이기 위한 김대중 정권의 음모이며 최근에 일어난 '고려대 사태'는 김대중 정권에 김정일도 가세한 남북 양김의 합작품이라는 게 YS의 신념이자 주장"이라고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YS의 대통령 재임시절 회고록에는 강 교수가 지적하는 승리 이데올로기나 자기중심적 신념이 두드러진 것 같지는 않다. YS의 인기비결중 하나인, 'YS는 뭘 몰라'류의 개그 같은 순진성, 돈키호테적 낭만성과 의외로 숫자나 연대 분위기 묘사의 사실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다.

특히 '가장' 이라는 부사를, '절대'라는 형용사를, '아주'라는 형용사를 자주 썼다.

그보다는 '역사상 처음', '첫번째 일이다', '사상 처음이다'는 등의 표현이 두드러짐이 눈에 띠었다. 어느 면에서도 대통령은 그 나라에서 '첫번째 자리'며 재임의 기간이 역사에 어떻게 자리매김될까의 강박 속에 사는 직업정치인일 것이다. YS의 의식의 밑바닥에 이런 '역사상 처음'이란 의식이 상당히 갚었음을 곳곳에서 볼수 있다.

YS는 최연소 의원(1954년 제3대 당선, 26세)이었고 최연소 야당(민중당) 원내총무(1965년, 36세)였고 첫 문민정부 대통령이었다는 '첫번째들'의 위에서 그의 재임기간을 역사 속에서 비교하고 있다.

1993년 4월19일 수유리 묘역 참배를 두고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일이라고 표현했다. 1993년 5월25일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방한은 필리핀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이라고 쓰고 있다. 같은 해 7월12일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전선 방문에 대해서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시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썼다.

정말 YS의 '처음'은 국내 상황에 관한 한 집권 2~3년 동안, 그리고 시종일관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심했다. 1993년 11월23일 미국 국빈방문중 아메리카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에 대해 "외국의 국가원수로서는 내가 처음"이라고 썼다. 같은 날의 백악관 만찬은 "클린턴 내외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외국 정상을 위해 주재한 공식만찬"이라고 표현했다.

이상한 '첫번째'도 많다. 1993년 12월7일 우루과이 라운드와 북한 핵문제로 30분간 클린턴과 전화한 것에 대한 표현은 "양국 정상간 핫라인을 설치한 후 첫번째 한 전화 정상회담"이다.

1994년 6월28일 이홍구 부총리와 북한의 김용순 대남비서가 남북 정상회담 스케줄을 협의할 때 폐쇄회로 TV로 지켜본 YS는 이렇게 쓰고 있다. "김일성도 폐쇠회로로 그 장면을 보았기에 이것은 사실상의 첫번째 남북 정상회담인 셈이다."

YS가 '처음'을 흐믓하게 느낀 것은 1994년 3월 일본 방문때 아키히토 일왕이 "전후 우리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을 위해서 귀국 국민과의 사이에 확고한 신뢰와 우정을 구축하고자 노력해왔다"고 말했을 때다. YS는 "일본왕이 '반성'이란 말을 표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흐뭇해 했다.

YS는 1997년 8월7일 차관급 인사에서 김태정 법무차관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며 "사상 최초의 전라도 출신 검찰총장"이란 표현으로 회고록을 마무리했다. 사상 최초의 자필 회고록 1, 2부를 낸 YS가 퇴임후의 생활을 그린 또하나의 '최초' 회고록을 썼으면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2/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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