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격세지감(?) 한국영화

"한국 영화의 제작에 있어 자본의 변화와, 그리고 최근 한층 두드러진 한국 영화제작의 활력과 수준에 무척 관심이 높았다. 그만큼 일본 영화의 고민이 구체적이라는 얘기다. 전세가 역전된 느낌을 받았다."

지난 2월27일 일본 도쿄의 한국 중앙문화회관에서 열린 한일 영화 공동제작 세미나를 끝내고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이 한 말이다. 사실 그랬다. 분명 달랐다.

불과 3년전만 해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우리 영화제작자들이 일본과의 합작을 부르짖었을 때 그들은 마치 '한국 영화가 어떻게든 일본에 기대어 한편이라도 제작해볼까'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영화계는 여전히 흥행과 자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특별히 정부에서 도와주지도 않고 투자자본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영화에 관한 한 이제 돈 걱정은 없다. 영화진흥기금이 수천억원이 되고, 극영화 제작지원 같은 '공짜 돈'도 있다.

또 투자자본이 넘치고 너도나도 영화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후 일본 영화가 일방적으로 한국시장으로 밀려들어 성공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제는 기우가 됐다. 어쩌면 더이상 기대가 없는 일본 영화보다 우리 영화의 일본진출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영화의 일본시장, 나아가 아시아 시장의 확보보다 일본 영화의 한국시장, 나아가 아시아 시장의 확보가 더 절박해졌다. 이번 세미나도 일본 영화ㆍ텔레비젼 프로듀서협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었다.

80여명의 일본 프로듀서들은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한국과 합작으로 만들려면 누구와 접촉하면 되느냐", "기획단계부터 양국의 정서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긴밀히 협조하는 것이 합작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합작에 제도적, 법적 걸림돌은 없느냐", "흥행에 실패해도 한국은 어떻게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들은 풍부한 한국의 영화자본을 부려워하는 눈치였고 '쉬리' 의 일본흥행과 '공동경비구역 JSA'의 위력에 놀라고 부러워했다.

김혜준 실장과 함께 세미나에 참가한 유인택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과 안동규 한ㆍ중ㆍ일 영화교류추진위원장은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면서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만 갖는다면 합작도, 합작에 대한 지원도 어려울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순애보'의 일본 프로듀서였던 소지쿠(松竹)영화사의 츠시다는 덧붙였다.

"비록 한국에서 흥행이 실패했고 아직 일본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설령 똑같이 흥행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됐다. 충분히 의욕을 갖고 합작을 계속해 볼 만하다."

그렇다고 합작이 일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70억원짜리 영화까지 만들려는 한국 영화의 현실에서 국내시장만으로는 전혀 경제성이 없다. 자연히 한국 영화도 해외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돈은 넘치는데 알맹이 있는 기획이나 소재의 시나리도 없다. 돈자랑이나 하는 몇개의 볼거리 가지고 흥행을 기대하는 것도 지났다.

규모에 맞는 다양한 작품, 수준높은 작품을 위해 일본에게 손을 내민다. 그것이 한국 영화가 탄탄해지는 것이고 우리 영화의 해외시장을 넓히는 일이다.

그러자면 중요한 몇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우선 돈만 자랑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안동규 위원장의 하소연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 배우들은 자기 영화가 해외에서 상영되면 기꺼이 나서 홍보도 하고 이벤트에도 참가하는데 우리 배우들은 국내 개봉만 끝나면 끝이다. 해외에서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면 일반인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배우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상품성과 위상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06 16:0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