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오청원 일생중 가장 절실한 한 판

-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11)

휴식 후 큰 끝내기에 들어가 184수째 다시 오청원의 실착이 나와 마침내 흑 우세로 되고, 이대로 두어가면 흑이 2-3집 앞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데 그 목전인 193수에 이르러 기다니는 실착을 범해 오청원이 승기를 잡고 패를 건 끝에 역전시켰다. 백의 2집승이었다.

오청원의 100국 가까운 치수고치기 10번기 중 이와 같은 격전으로 치른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10번기의 처음이기도 하려니와 오청원의 일생 중 혼인보 슈사이와의 은퇴기념 대국과 함께 가장 절실한 한판이었다.

그런데 1939년이라고 하면 중일전쟁이 확대일로를 거듭 하고 일본에서는 국수주의가 사회를 뒤덮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시류 속에 앞에 나온 관전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때 독자의 반응은 대단하였다. 기다니가 코피를 내고 괴로워하는데 모른 체 하면서 계속 두어나가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다.

왜 곧장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지 않았는가. 무사의 인정을 모르는 냉혹비도(冷酷非道)한 승부의 마귀라고 하는 비난의 소리가 쇄도하였다. 당연하겠지만 동료기사 중에 오청원이 예에 어긋났다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기다니가 독자의 그런 관심을 귀찮게 생각했다.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야스나가와 상담하니 야스나가는 "오선생이 10번기를 이기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만 답했다. 세고에 선생은 10번기를 중지시켜야 할 것인가 크게 고민했으나 "바둑꾼은 비록 반상에서 묵숨을 앗겨도 행복한 일이니 당당히 두어가시게"라면서 격려해주었다.

1940년 4월. 원각사의 제1국 외에도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4국은 2승1패의 뒤를 이어 이 십번기의 결과를 좌우하는 일국이었다. 오청원의 흑번이었으나 백인 기다니가 과수를 추궁해와 끝내기에 들어설 무렵, 필쟁점인 역 끝내기를 두어 거꾸로 한집을 남길 수 있었다.

사실 이때 오청원이 졌다면 2승2패. 그러면 십번기의 상황도 달라지고 십번기가 이렇게 100국 가까이나 두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치수고치기가 걸린 6국이었다. 1939년 10월 원각사내의 자그마한 암자였다. 6국을 앞두고 오청원은 구레 이즈미라는 일본 이름을 다시 오청원으로 돌렸다. 바둑팬의 열망 탓이었다. 호적은 그대로 두고서 '오청원'이라고 이름만 다시 바꾼 것이다.

5국에서 패하자 기다니는 오랜동안 길렀던 장발을 싹둑 잘라 중머리가 되었다. 막판에 몰린 6국부터 분위기를 일신하자는 뜻이었다.

오청원은 본래 까까머리였으므로 둘이서 승방에서 대국하면 선승(禪僧)일 것이라고 웃기도 했다. 오청원이 6국을 이겨 5승1패. 드디어 기다니를 선상선으로 치수를 바꿔놓고 말았다.

치수고치기에서 치수는 바꿔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4승차, 예를 들면 4전전승이나 7승3패가 되어 치수를 바꾸기로 한 약속이 그대로 실현되자 호선만을 두던 상대는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것은 아직 승부가 아니라는 반론을 폈다. 이름하여 '신예 10번기'라고 명명한 것이다. 기다니를 신예로 보아 그들의 뭉개진 자존심을 만회해보려는 소치였다. 이제까지의 대국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국(1939년 9월28일~30일) 백2집승

2국(1939년 12월26일~28일) 흑불계승

3국(1940년 3월15일~4월9일) 흑5집승

4국(1940년 6월12일~6월14일) 흑1집승

5국(1940년 8월4일~8월6일) 백불계승

6국(1940년 10월16일~10월18일) 흑불계승


[뉴스화제]



●이세돌, 이창호에 연속 승리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세돌이 이창호를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이세돌은 2월26, 27일 양일간 인터콘티넨탈호텔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1, 2국에서 133, 155수만에 불계승을 거두고 우승에 1승을 남겨놓았다.

2연승은 자신도 몰랐던 쾌거인데 이로써 역대전적 3승2패로 이세돌이 앞서게 되었다. 비교적 단명국을 패한 이창호는 이세돌의 바둑이 익숙하지 않은 듯 시종 서두르다 패하는, 보기드문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이 9단 여류기전 그랜드슬램

루이 9단이 박지은 3단을 물리치고 여류명인전을 획득, 사상 초유의 여류기전 그랜드 슬램을 차지했다.

2월26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벌어진 제2기 여류명인전에서 224수만에 불계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루이 9단은 동방항공배, 흥창배, 여류국수전, 여류명인전을 차지해 여류기전 그랜드 슬램을 차지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3/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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