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라"

정치ㆍ경제적 실리와 명분 노리고 거국적 노력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비치 발리볼 게임이 벌어질 수 있을까. 천안문 광장에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의 결승점 아치가 세워질 수 있을까. 중국 정부의 대답은 OK다.

물론 2008년 하계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개최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사회주의 건국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린 베이징의 중심, 천안문. 그 누각 위에서 아슬아슬한 수영복 차림으로 펼쳐지는 비치 발리볼 게임을 볼 수 있을지 여부는 올 7월 판가름난다.

중국 정부가 200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팔을 걷어부쳤다. 베이징과 경쟁하는 도시는 프랑스 파리, 캐나다 토론토, 터키 이스탄불, 일본 오사카. 2표 차이로 2000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던 중국은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결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서방의 패권주의적 압력이라며 반발해왔던 인권문제까지 양보할 수 있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대만에서의 일부 분산 개최 의향도 밝혔다. 올림픽 유치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세다.


오륜기 펄럭이는 베이징 시대

중국의 각오를 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조사단이 중국을 방문한 2월20일, 수도 베이징은 전혀 다른 도시로 태어나 있었다. 새롭게 색칠한 차선과 표지판으로 도로는 깨끗했고, 도로변을 장식한 가지각색의 조화(造花)는 마치 완연한 봄이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IOC 조사단이 들른 시청 앞 잔디밭은 아예 파란 물감으로 물을 들였다. 도로체증을 없애기 위해 택시는 이날 시내진입이 금지됐다.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은 오륜기 플래카드가 나붙어 한껏 축제분위기를 띄웠다.

중국이 이처럼 극성을 떤 것은 베이징에 대한 IOC 조사단의 첫 인상을 고려해서다. IOC 조사단이 중국에 체류한 기간은 6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까지 몸소 IOC 조사단을 접견해 협력을 부탁함으로써 중국의 올림픽 유치 운동은 최고조에 달했다.

중국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정부 차원의 '베이징 올림픽 신청위원회'를 만들어 가동중이다. 신청위원회가 2월14일까지 마련한 활동비는 2,000만 달러.

이중 800만 달러는 정부가 출자했고 나머지는 중국의 대표적 IT업체인 롄샹(聯想)과 제너럴모터스 등 20개 국내외 업체가 내놓았다. 신청위는 이 자금으로 세계 유력언론을 대상으로 중국과 베이징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대대적 광고를 시작했다.

신청위가 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환경분야. 베이징은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가 올림픽 유치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청위의 위샤오쉬엔(余小萱) 환경보호생태부 부장은 '녹색 올림픽'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베이징이 행사유치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고의 환경보호 기술을 채용해 올림픽 선수촌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림픽 경기후 이 선수촌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녹색지구로 유지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청위의 녹색 올림픽 청사진에 따르면 선수촌은 화석연료를 완전히 배제하고 지열 등 청정 에너지만 사용하도록 건설된다.

하루 최대 1,400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온수도 태양열을 이용해 만들어낼 계획이다. 선수촌에서 나오는 생활폐수는 완전정화를 거쳐 760ha에 달하는 올림픽 공원의 녹지에 공급된다. 태양열로 분뇨를 처리하는 화장실 설치도 계획에 들어있다.


환경 인권향상 노력 대외에 과시

신청위는 아울러 베이징의 환경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개선돼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1993년 IOC 조사단이 방문했을 때 당국은 베이징과 인근 공장의 가동을 모두 중단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세계 최고의 오염도시란 오명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동중단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환경상태가 호전됐음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신청위는 앞으로 2008년까지 거액을 투자해 환경정화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IOC측에 약속했다.

중국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 쏟고 있는 노력은 인권향상에서 더욱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은 2000년 올림픽을 간발의 차로 시드니에 뺏긴 가장 큰 이유를 중국에 대한 서방의 적대감에서 찾고 있다. 당시 톰 란토스 미국 하원의원(캘리포니아ㆍ민주당)은 인권탄압을 이유로 베이징의 올림픽 유치운동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시킨 바 있다. 란토스 의원은 이번에도 같은 결의안을 추진중이다.

2000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후 중국은 "미국이 정치와 스포츠를 연계시켰다"며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선수를 치고나섰다. 당국이 먼저 인권향상 노력을 대외에 과시함으로써 정치와 스포츠를 스스로 연계시킨 것이다.

류징밍 베이징 부시장은 IOC 조사단이 방중한 22일 "올림픽 경기가 유치된다면 인권향상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부시장의 이야기.

"올림픽 유치신청을 함으로써 우리는 베이징의 발전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포함하는 사회발전도 증진시키고자 한다. 앞으로 8년은 긴 시간이다. 올림픽 유치는 보다 정의롭고 조화로운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중국을 세계속에 통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2월28일 유엔인권협약을 비준했다. 1997년 서명 뒤 4년간 미뤄오던 유엔인권협약에 비준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달 제네바에서 열리는 연례 유엔인권회의를 겨냥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미국의 지지로 대중국 인권탄압 비난 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인권협약 비준을 통해 대외의 비난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또다른 이유는 올림픽 유치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있다. 인권향상에 노력하고 있다는 가시적 제스처를 대외에 보이겠다는 이야기다. 인권협약의 핵심 조항인 집회와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허용될 수 있을 지는 물론 미지수다. 세계 인권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술책을 쓰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중화민족 위상 국가위신 높이는 계기

중국이 올림픽 경기의 일부분을 대만에서 분산 개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도 유치전략의 일환이다. 대만해협이 세계 최고 긴장지역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소한 2008년 올림픽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양안관계를 흔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무엇 때문에 올림픽 유치에 목을 매고 있을까. 관영 인민일보에 실린 올림픽 유치의 의의를 보자.

"올림픽 개최는 종합국력의 전면적 실험일 뿐 아니라 중국과 중화민족의 전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길이다. 제국주의 침략으로 100여년간 굴욕을 겪었던 중화민족은 21세기 맹렬한 비상의 염원을 갖고 있다. 올림픽 개최는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다."

여기에는 중국 문화와 개혁ㆍ개방에 따른 발전상을 해외에 알림으로써 국가적 위신을 높이려는 희망이 강하게 깔려 있다. 하지만 더 큰 정치적 의도도 담겨있다. 이른바 종합국력의 대외적 과시를 위한 국민적 결집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002~2003년은 중국 지도부가 3세대에서 4세대로 교체되는 권력 이동기다. 안정적 권력이동을 위해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국가적 동원체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2000년 올림픽 유치 실패 후 중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이 적지 않았다. 한국이 중국의 협조요청을 뿌리치고 미국이 지지하는 호주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는 올 7월 모스크바 IOC 회의에서 결정된다. 중국 정부의 유치 의욕이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한국의 선택에도 상당한 고민이 따를 전망이다.

<사진설명> ①천안문광장에 펄럭이는 홍기.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홍기 대신 오륜기가 펄럭이게 된다. <김건수/사진부 기자>

② 2008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나선 중국이 IOC 조사단의 방문과 때맞춰 오륜마크가 그려진 대형간판을 베이징시내에 내거는 등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06 16:1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