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칼 돌풍] "실컷 먹고도 살 뺄 수 있다고요?"

제니칼(Xenical) 바람이 불고 있다. 1997년 개발된 먹는 다이어트 약 제니칼이 지난 2월10일부터 국내에서도 시판되기 시작한 것. 호프만-라로쉬사가 '오르리스타트'라는 이름으로 개발한 제니칼은 먹는 다이어트 약으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던 화제의 신약.

미국 캐나다 스위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벌써 800만명 이상이 복용했다. 국내에도 벌써 '실컷 먹고 운동하지 않아도 약을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진다'는 입소문이 나 다이어트에 열심인 여성 사이에서 최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저것 안해본 다이어트 없이 다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사람이거나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데 어떡하느냐"고 한숨짓는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안하고 단지 하루에 세번 푸른 색 알약을 삼키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데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 800만명 이상 복용, 문의 빗발

제니칼에 대한 수요는 의료현장에서 금새 드러난다. 상계 백병원 비만클리닉의 경우 "뚱뚱하지 않은 여성까지 제니칼을 처방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을 팔 수 있는 약국도 마찬가지. 종로5가나 강남 일대의 대형약국 약사들은 "제니칼을 구할 수 없냐는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온다"고 말한다.

제니칼의 한국판매사인 한국 로슈는 아예 전문상담원을 두고 고객의 상담을 받고 있다.

한국 로슈의 제니칼 담당자인 이혜규 과장은 "하루 평균 70여통의 전화를 받고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의 80%는 여성이며 그중에서도 중년의 비율이 압도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몇년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돌풍의 재판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제니칼과 비아그라는 치료 목적 및 효능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1999년 제니칼의 미국 시판 직후 발간된 타임지는 아예 제니칼을 가리켜 '허벅지를 위한 비아그라'라는 표현까지 썼다.

두 약은 모두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데 없어서는 안될 자신감과 행복을 안겨준다. 제니칼과 비아그라가 대머리 치료제인 프로페시아와 더불어 일명 3대 '해피 메이커'(Happy Maker)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약회사 입장에서 보면 두 약 모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신약으로 시판과 함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닮은 점이다.

또 두 약은 엄연히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복용할 수 있는 의약품인데도 마치 미용보조식품이나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어 너도나도 복용하려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모든 약이 가지고 있게 마련인 부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작정 먹었다가 오히려 병을 얻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과연 제니칼은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마법의 약일까.


1년에 10% 감량, 반드시 음식 먹어야

제니칼은 기존의 다이어트 약과는 달리 식욕을 억제하지 않는다. 대신 장에서 지방(트리글리세라이드)을 분해하는 효소인 리파아제의 작용을 억제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만 효과가 있다.

먹으면서 살을 뺀다는 것은 그래서 나온 얘기다. 매끼 식사 전후 30분쯤 1알씩 복용하면 음식물을 통해 섭취한 지방 중 70% 정도만 흡수되고 나머지 30% 정도는 대변으로 배출되어 체중이 준다.

국내의 일부 의사들은 제니칼이 지방이 전체 칼로리의 20%를 넘지 않는 한국인에게도 같은 효과가 날 지 미지수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제니칼은 BMI지수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것) 30 이상인 사람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서 만들어진 약이다. 키가 160cm 라면 체중이 76.8kg를 넘어야 BMI지수 30을 넘는다. BMI 30 이하인 사람에 대한 체중감량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단, BMI가 27~30인 경우도 고혈압 당뇨 이상지방혈증 등이 있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제니칼을 복용해도 된다.

2년동안 미국과 스위스 등 8개국에서 2만명의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행해졌던 임상실험 결과 제니칼은 1년간 꾸준히 복용했을 경우 대개 자기 체중의 10% 정도를 감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4개월 동안 체중감량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그 이후에는 줄어든 체중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또 지방 섭취를 줄임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고혈압 및 당뇨병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위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제니칼은 이제까지 나온 비만치료제 중 가장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1996년 제니칼에 앞서 먹는 다이어트 약 선풍을 일으켰으나 일부 사용자에게서 심장판막 이상이 발견되면서 1년 만에 흐지부지 된 리덕스와 비교해도 훨씬 안전하다.

하지만 모든 약에는 부작용의 위험이 상존한다. 제니칼의 경우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비율은 약 6%. 복용초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방변과 복부 팽만감, 방귀, 잦은 배변, 복통 등 가벼운 증상에서부터 담석증 같은 다소 위험한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또 지용성 비타민인 A, D, E, K의 섭취를 방해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제니칼을 먹기 2시간 전후로 종합 비타민을 먹도록 권하고 있다. 고지방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


"부작용 적지만 효과에도 의문" 비판적 견해도

제니칼의 복용을 중단하면 일단은 다시 체중이 는다.

2년간의 임상결과만을 놓고 말하자면, 미국의 비만환자 9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제니칼을 끊자 평균 3.1~5.8kg 의 체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약 자체에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체중조절을 원한다면 평생 복용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FDA 자문위원단의 비만전문가로 제니칼의 시판에 반대표를 던졌던 줄스 허시 박사는 "제니칼이 이제까지 나온 약에 비해 부작용이 덜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효과 또한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그의 말에 근거가 될 만한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비만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식사를 하루 600칼로리 (비빔밥 한 그릇)로 철저하게 제한하고 운동요법을 병행하면서 한 그룹은 제니칼을 복용하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제니칼이라고 속이고 아무 효과가 없는 설탕약을 먹였다.

6개월 뒤 제니칼을 먹은 그룹은 평균 자기 체중의 10%를 감량했고 설탕을 먹은 그룹도 자기 체중의 5%라는 적지않은 감량에 성공했다. 식사조절과 꾸준한 운동이 체중감량의 기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다.

그러므로 제니칼은 먹으면 살을 뺄 수는 있지만 먹기만 하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마법의 약은 절대 아니다. 10% 감량이라는 임상실험 결과는 모두 하루 칼로리 섭취량을 3분의1로 줄이고 운동을 병행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제니칼은 식이요법과 운동요법만으로는 살을 뺄 수 없는 환자들이 보다 손쉽게 체중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약만으로 먹어서는 그다지 얻을 게 없다는 얘기다.

한국 로슈의 이혜규 과장은 "제니칼을 먹는 기간에는 반드시 철저한 식이요법을 행해야 하고 운동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이요법·운동 병행해야

제니칼 같은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비만이 더이상 나태와 무절제의 결과 혹은 배부른 자의 사치가 아니라 엄연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비만은 단순히 살이 쪘다는 것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등을 동반한다. 이제는 무슨 살을 약까지 먹어가며 빼냐고 나무랄 일만은 아닌 시대가 된 셈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07 11:01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