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강릉 단경골

올 봄에는 계곡이 볼만할 듯하다. 유난히 많았던 눈이 봄볕에 녹으면서 계곡으로 쏟아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한 계곡을 행선지로 잡아보자.

강원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일대. 일명 단경골이다. 대관령, 경포대 등 주변의 유명세에 가려 아는 이가 드물다. 무명이지만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기암,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

기왕에 강릉행을 결정했다면 반나절의 시간만 더 내면 된다. 계곡을 따라 약 6㎞ 정도의 비포장 도로가 나 있어 가족과 함께 트레킹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왕복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단경골은 강릉 시내와 해돋이로 유명한 정동진 사이에 있다. 동해고속도로에서 정동진으로 연결되는 안인행 진입로로 들어간다. 곧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 약 500m를 달리면 왼쪽으로 영동공원묘원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단경골이라 쓰여진 입석이 보인다. 여기가 입구이다.

단경골은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만덕봉의 골짜기이다. 인근의 산세가 사람이 오르내리기 힘든 악산인데 비해 이 골짜기만 완만한 경사이다. 큰 사찰이나 사찰터가 있을 듯한데 찾아볼 수 없다. 사연이 내려온다.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이 골짜기에 들어 신라를 대표하는 큰 절을 지으려 했다. 삐죽삐죽 솟은 기암 등 남성적인 양기가 충만했다.

그런데 높이 오르면서 점점 평평해지고 얌전해졌다. 골짜기의 전체 모습은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 오히려 음기가 강했던 것이다. 도선은 여기서 승려들이 수행을 하다가는 몸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음기가 강한 이 골짜기에 삽이나 천공기를 대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 1960~70년대 인근 탄광에서 재미를 본 광산업자들이 이 곳에서 탄을 캐려 했다. 탄층이 나왔는데 포기할 양도 아니었지만 수지가 맞을 정도도 아니었다. 결국 업자들은 야금야금 자금을 빼앗기고 거지 신세가 되어 산에서 내려왔다.

명당으로 잘못 알려져 무덤도 많다. 그러나 이 골짜기에 조상을 모시면 자손이 망한다고 한다. 묘를 만들고 2~3년이 지나면 성묘는 커녕 벌초를 하러 오는 자손도 없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집안이 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최근에도 큰 재앙(?)이 있었다. 100억원을 들여 계곡을 가로막는 물막이 공사를 시도했다.

1차 공정이 끝나 댐을 쌓기는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물이 새버리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저수지 전체의 밑바닥을 방수 시멘트로 바르면 된다. 그런데 공사비가 수백억 원이 들 터이다. 그래서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그 현장이 단경골 계곡의 가운데 부분에 있다. 온통 파헤쳐 놓은 삼림, 물 속에서 죽어 있는 굵직한 소나무..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하려면 200년도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현재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곳은 7부 능선인 담정농원까지이다. 아쉽지만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다. 1996년부터 무기한 자연 휴식년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직 계곡에는 겨울빛이 짙다. 그러나 등성이의 눈 녹은 물이 계곡을 점점 봄빛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3/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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