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봄소식 애타는 한국경제

우리 경제가 다시금 풀기 힘든 시험대에 올라있다. 한국 경제의 해묵은 암적 존재인 동아건설의 파산처리와 현대 계열사들의 유동성위기 재발 등이 금융시장을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증시가 날개도 없이 추락해 국내 증시를 강타하고 있다.

그리고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있는 일본은 장기불황과 금융기관의 부실심화 등으로 3월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가 없어지면 잇몸이 시리다(脣亡齒寒). 비틀거리는 일본 경제는 한국 경제에 적지않은 충격과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연초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 조치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으로 어정쩡하게 봉합됐던 시장이 다시금 파열음을 내면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현대 유동성위기 재연, 금융시장 동요

우리 경제는 환란이후 '세계 경제의 패권자'인 미국 월가의 요구대로 '황금구속복'(관치경제 청산과 시장경제체제 도입, 투명경영, 금융 및 기업부실 해소,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을 입기 위해 기업ㆍ금융 등 4대 개혁에 나섰지만, '썩은 고름'(부실해소)을 제거하는데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금구속복은 월가의 중요한 투자잣대다. 월가는 세계 각국에 대해 달러를 유치하는 대가로 자기들이 만든 황금구속복을 입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 몸에 맞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가 황금구속복의 사이즈를 줄이거나 확대할 수 없다.

우리 경제가 거기에 무조건 끼워맞춰야 한다. 만일 황금구속복을 우리 멋대로 재단한다면? 월가의 전주들은 그 순간부터 1997년 환란 때처럼 한국에서 돈을 빼낼 것이다. 그러면 다시 환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한동안 잠잠했던 현대계열사의 유동성 위기가 고려산업개발의 부도와 현대전자 미국 법인의 부도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시장도 현대사태로 동요하고 있다. 부족하나마 어렵게 입은 황금구속복이 흘러내려 처음부터 다시 입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의 원격조종을 받은 현대채권단이 지난 주말 부랴부랴 모여 현대건설, 현대전자, 현대석유화학 등 부실 3인방에 대해 여신 만기연장, 수출환어음(DA) 매입한도 확대, 해외공사 지급보증 등 '현대살리기'에 나섰다.

현대살리기는 정부가 수차례 공언했던 부실기업 상시퇴출 방침을 스스로 뒤흔드는 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법원의 동아건설에 대한 법정관리(회사정리절차) 폐지 결정도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사실상 파산조치인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동아건설이 짓고 있는 1만 가구 이상의 아파트 공기가 차질을 빚고 입주예정자들도 발만 동동 구르게 됐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도 일시중단 가능성이 높아 외교적인 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증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은 왔지만, 봄소식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의도 증시는 미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나스닥은 반도체 기술주 등의 실적부진 악화로 지난 주말 폭락(2,052.78로 마감), 1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나스닥 2,000선이 붕괴될 경우 미국 투자자들은 사자의 습격을 받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아프리카 누우떼처럼 앞다퉈 투매하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는 국내 증시에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져올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월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20일로 예정된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경기의 경착륙을 막기위해 또한번 '마술'(추가 금리인하)을 부려주길 잔뜩 기대하고 있다. 이 경우 미국 증시가 반등세로 돌아서게 하는 호재가 되고, 국내 증시에도 가뭄끝 단비로 작용할 수 있다.


대우차매각, 경제팀 교체여부에 주목

재계에선 삼성이 지난 주말 정기인사에서 참여연대측의 반발에도 불구, 베일 속에 쌓여있던 '수줍은 황태자' 이재용씨(33세)를 경영의 전면에 부상시킨 점이 단연 화제다.

삼성전자는 이재용씨를 부장에서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승진시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한 것.

그러나 이씨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이씨가 삼성전자, 삼성생명, 에버랜드 등 그룹주력사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편법상속 및 증여가 있었다며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고 있다.

이씨가 삼성의 대권을 승계하기위해선 헌법보다 상위법인 '국민정서법'을 감안해야 하고 '국민과의 화해'를 위한 통과의례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대우차 매각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주 방미중 잭 스미스 GM회장과 회동한 것을 계기로 조속히 매듭지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당에서 솔솔 나오고 있는 개각과 관련, 경제팀의 교체여부도 과천관가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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