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24時] 불과의 전쟁에 '0'일은 없다

섭씨 1,400도… 최초 5분이 화재진압 성패

소방은 전쟁이다. 소방관들은 매일 전쟁을 치른다. 전차대신 물펌프차, 보급차량대신 물탱크차, 대포와 총대신 관창(살수 호스의 끝부분), 실탄대신 물을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과의 전쟁'은 예고도, 시간대도 없다. 하루에 수차례 전장에 투입되기는 다반사다.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심야전쟁이 특히 많다.

특공대도 있다. 불 속에 갇힌 사람, 즉 '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투입되는 구조반이다.

불은 포로에 가혹하다. 구출못한 포로는 끝이다. 구조반은 화재진압대(경방)와 구조대로 이뤄진 혼성팀. 구조대가 건물 속으로 진입하면 경방은 관창을 들고 따라들어가며 구조대를 엄호한다. 구조대를 덮치는 불길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이 바로 엄호다.


발화점 찾아 불속으로 뛰어드는 특공대

특공대는 건물 내부의 발화점을 찾아 제압하는 업무도 맡는다. 발화점을 찾아 정확히 공격하지 않으면 물대포의 효력은 뚝 떨어진다. 수백평에 달하는 상가건물 내부에서 불이 나면 연기는 온갖 틈으로 뿜어져나온다.

융단폭격하듯 막무가내로 쏘아대는 물대포는 효과를 낼 수 없다. 발화점 포착과 인명구조는 동시에 진행된다. 이론상 섭씨 1,400도에도 견디는 방열복을 입고 공기호흡기, 무전기, 손도끼를 휴대한 특공대가 건물에 진입해 수색작전을 펼친다.

모든 화재현장에서 특공대는 내부에 사람이 살아있다는 전제 하에 행동한다. 지하실에서는 언제나 칠흑의 야간전투를 벌여야 한다. 지하실을 가득 채운 연기는 시야와 방향감각을 완전히 뺏는다. 어떤 조명기구도 소용이 없다.

지상에서 끌고 내려온 로프나 호스는 생명선이다. 자칫 놓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공기호흡기 탱크의 공기량은 길어야 30분. 유독가스는 두 모금만 마셔도 정신을 잃는다. 탱크속의 공기를 모두 소모하기 전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끝장이다.

서울시 종로구 종로소방서. 소방대원 305명이 인구 21만5,600여명(8만952가구)을 관할하는 국내 최대의 소방서다. 본부 직속의 119구조대 1개와 7개 예하 파출소를 두고 있다.

각 파출소는 펌프차 1대, 탱크차 1대, 구급차 1대로 구성돼 있다. 초동단계의 1차 출동에는 예하 4개 파출소와 1개 구조대가 투입된다.

종로소방서의 사령탑은 종합지령실. 화재신고를 받아 출동지시를 내리고 진압을 총괄지휘하는 곳이다. 종합지령실은 시끄럽다. 진짜 제보에서 장난전화까지 모두 이곳으로 몰린다. 근무자를 괴롭히는 장난전화는 하루평균 10여차례. 장난전화는 발신지를 추적해 2회 이상 누적되면 과태료를 물린다.

하지만 장난전화도 일단 사실로 추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1층 대기실의 진압대원과 2층 대기실의 구조대원은 차량격납고로 내달리고, 그 사이에 격납고의 셔터는 올려진다.


불법주차가 현장접근 최대 장애물

화재진압에는 최초 5분이 중요하다. 박청규(53) 진압계장에 따르면 정확한 제보는 조기진압과 직결된다. 발화점이 지상인지 지하인지, 화인이 무엇인지, 불타는 주요 물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출동하는 차량이 달라진다. 지하실이면 배연차가, 주유소면 화학차가, 고층건물이면 고가차가 출동한다.

출동은 화재진압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이송을 위한 구급출동과 다른 소방서나 파출소를 위한 지원출동, 비화재 인명구조를 위한 구급출동 등 갖가지다.

종로소방서 세종로 파출소는 3월3일 오전 9시부터 4일 오전 9시까지 24시간동안 11번 출동했다. 09:03 종각역 앞 구급출동, 11:47 서린동 구급출동, 15:43 회현역 구급출동, 16:57 익선동 화재출동, 23:20 인창고교 후문 앞 화재출동, 03:55 남창동 화재출동, 04:40 홍제동 지원출동, 05:20 북아현동 구급출동, 06:20 신영파출소 지원출동, 07:02 서울역파출소 구급출동, 07:10 북아현1동 구급출동. 퇴근 후 대원들은 파김치가 된다.

세종로파출소 김두일(42) 소장에 따르면 현장출동의 방해요소는 체증과 이면도로 주차차량.

신호와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내달리지만 얌체차량이 한두 대씩은 꼭 끼여들어 훼방을 놓는다. 양보를 않는 차량이 70%가 넘는다. 출동중인 소방차라 하더라도 사고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현장주변의 이면도로 주차차량은 대전차 장벽이나 다름없다. 사이렌을 울리고 방송을 해도 차를 빼려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사 차를 빼준다 해도 주차차량이 많아 시간은 이미 늦다. 최대한 소방차량을 접근시킨 뒤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수밖에 없다. 15m짜리 호스를 20개나 연결해야 겨우 현장에 닿는 경우도 있다.

LPG 등 가스는 지뢰다. 언제 어디서 터져 대원의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관창을 빠져나가는 물의 강력한 수압은 관창수를 뒤로 나동그라지게 한다.

직경 6.5츠의 관창을 다루기 위해서는 관창보조 2명이 호스를 잡아주어야 한다. 펌프차의 물 3,000 리터는 4분만에 바닥난다. 4,500~1만 리터짜리 탱크차가 1차 보급하고, 이도 바닥나면 소화전의 물이 2차로 중계된다.


119구조대는 세계최강 엘리트부대

작전의 핵심은 인명구조. 119구조대는 세계 최강의 엘리트 부대다. 구조대원의 자격은 '하사관 이상 계급으로 3년 이상 군복무한 사람으로서 군복무시 공수강하 훈련을 4회 이상 거친 자'다.

현재 119구조대원의 90% 이상은 특전사 출신.

이밖에 해병대 특수수색대와 해군 SSUㆍUDT, 공군 항공구조대, 정보사 HID 출신자가 일부 있다. 세계 어느 구조대도 이같은 인적자원을 가진 곳은 없다. 구조대원간의 우정과 규율은 현역군인 이상이다.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김형윤(43) 대장은 "구조대의 각조는 열정과 이성을 조화시켜 편성된다"고 밝혔다. 물불을 안가리는 열정적 대원과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 열정을 제어할 이성적 대원을 섞어서 편성한다는 것.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일차적으로 탈출한 사람의 제보로 판정한다. 하지만 소란한 현장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내부에 아직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제보가 틀렸더라도 진입하는 것이 구조대원의 원칙이다.

구조대의 천적은 부실ㆍ노후 건축물. 소방수에 흠뻑 젖은 건물은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 하지만 구조대는 포로구출을 위해 진입한다. 소방대원 6명의 생명을 앗아간 3월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화재 현장. 진압대원 3명과 구조대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출대상자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약 2시간 뒤 매몰 대원을 발굴했을 때 이들이 휴대한 공기통은 모두 비어있었다.

종로소방서 119구조대 허찬만(39) 부대장의 이야기. "공기통의 공기를 모두 소모했다는 것은 이들이 최소한 30분간은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건물더미에 깔린 채 동료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맨손으로 헤치고 들어가며 악전고투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14 20:52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