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24時] 열악한 근무환경, 실종된 소방정책

서울 강서소방서의 119구조대 정경일(37) 소방교는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구조영웅이었다. 백화점 지하 3층에서 동료대원과 함께 생존자 24명을 구해냈다. 그는 지금 한강성심병원에서 5개월째 침대에 누워있다.

지난해 10월25일 강서구 화곡동의 주택 화재에서 인명수색중 건물이 무너지면서 중화상을 입었다. 같이 수색중이던 구조대의 막내 임은종(당시 25세)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는 당시 오른다리 허벅지에서 발목까지 깊은 3도 화상을 입었다. 인대와 핏줄이 소멸돼 발목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남아있던 근육도 대부분 절제했다. 정상생활은 불가능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는 혈관불통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이상으로 현장에서 부하를 잃었다는 정신적 고통을 더 크게 받고 있다.


부상치료비 대부분이 본인 부담

그는 아직 여러 차례의 피부 이식수술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쓴 병원비는 340만원. 공상(公傷ㆍ공무수행중 부상) 판정을 받았지만 비보험 의약품과 특진비는 자부담으로 해야 했다.

1장에 300만원인 인조피부는 의보와 산재수가 적용이 안된다. 인조피부를 또 사용해야 하는 다음 수술 때는 400만원 이상의 추가비용이 든다.

자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복촉진을 위해 의사가 권장하는 한약비 320만원 등 부대비용이 지금까지 800만원 가량 들었다. 지금까지 쓴 돈만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그에겐 부인과 딸 둘이 있다. 부인은 초등학교 2학년인 큰 딸을 학교에, 작은 딸은 유치원에 보낸 뒤 병원으로 달려온다. 하교시간에 맞추려다보니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돈도 만만치 않다. 그는 현재 정상근무시의 70% 정도 급여를 받고 있다.

그는 항상 부인에게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애들 돌보는 게 돈버는 거야." 그는 특전사 중사 출신이다. 1991년 제대 후 119구조대에 입문했다. 그는 구조대가 정말 적성에 맞았고, 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아직 구조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동안 구조한 사람을 생각하면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누워있으니 사고대원에 대한 복지가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번 사고(3월4일 홍제1동 소방대원 6명 참변)를 계기로 일회성이 아닌 근본적인 개선책이 나왔으면 한다."

1995~2000년 5년동안 업무중 사고를 당한 소방관은 모두 1,313명. 이중 순직이 75명이다. 1995년 190명(사망 10명), 1996년 192명(14), 1997년 215명(15), 1998년 270명(20), 1999년 226명(6), 2000년 213명(10)이었다.

올해 3월7일까지 합하면 순직자는 모두 82명이다. 높은 사고율은 소방관의 근무여건과 소방정책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24시간 근무에 야식비 고작 2,000원

홍제1동 참변 후 한 소방관계자는 "매스컴을 크게 타고 죽었으니 그나마 개죽음은 아니다"며 자위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순직자 6명에게 순직군경에 준하는 국가보훈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순직자 중 20년 이상 근무경력을 가진 박동규 소방장 유족이 받는 보상금 1억5,669만원에는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

이전까지 소방공무원은 보훈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보훈대상이 '안보치안'으로 규정돼 있어 군경을 제외한 소방공무원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이 보훈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국무회의의 개별심의를 거쳐야 한다. 보훈신청에서 심의통과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소방공무원의 훈련중 부상이나 업무수행중 과로에 따른 재해는 보훈대상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소방관이 순직하면 정년까지의 월급과 함께 별도의 보상금이 가족에 지급된다. 국민소득이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낮았던 1960년대부터 일본은 이 제도를 시행해왔다.

소방공무원은 24시간 맞교대로 주당 84시간 근무한다. 교정공무원 75시간, 경찰 56시간, 지하철 직원의 42시간과 비교할 때 공무원 중 최다 근무시간을 갖고 있다.

외국 소방관의 주당 근무시간은 뉴욕ㆍ도쿄 40시간, 파리ㆍ런던의 48시간 등이다. 한국 소방관이 받는 위험수당은 일괄적으로 매달 2만원. 24시간 교대근무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루 야식비는 2,000원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화재출동이 없는 날에는 지급되지 않는다.

비번 날에도 소방공무원은 제대로 쉬지 못한다. 훈련과 제설작업, 방화순찰에 동원되기 일쑤다. 인력이 많은 대도시 소방서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지방 소도시 파출소의 소방공무원들은 대체자가 없어 친인척 경조사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다.

사기가 푹 꺾인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만은 물불을 안가리는 서비스 정신을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소방공무원의 근무환경은 정부의 획일적인 구조조정으로 더 악화됐다. 정부는 1998년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분야별 정원제가 아닌 전체 정원제를 택해 공무원을 잘라냈다.

당시 소방공무원 2만2,153명 중 1,426명이 옷을 벗었다. 이 바람에 서울에서만 소방차 84대가 운행중단 상태에 빠졌다. 지방 소방파출소에서는 출동 뒤 빈 사무실에 도둑이 든 일이 있을 정도의 현실이다. 1997년 대대적인 구조조정 당시 소방공무원을 오히려 100여명 증원한 일본 도쿄와는 정반대다.


불끌사람 절대부족, 장비도 태부족

운행중인 소방차에도 탑승인원은 선진국에 비교가 안된다. 한국이 소방차 1대 당 평균 2명이 탑승하는 반면 일본은 5명, 미국 5~6명, 영국은 6명이다.

한국의 소방공무원은 약 2만명. 소방관 1인당 담당인구가 2,082명에 달해 208명인 미국의 10배가 넘는다. 소방차 운행 중 사고를 내면 운전자가 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방장비에 대한 정부의 지출은 인색하기 그지없다. 민방위용 방독면에는 돈을 잘 쓰는데 소방장비와 소방관 개인장비, 구조ㆍ구급용 소모품에는 예산을 내놓지 않는다.

서울시립대 방재공학센터의 윤명오 교수는 "소방관들이 열악한 장비로 불속에 뛰어 드는 것을 보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방관의 활동과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소방업무를 관장하는 소방국이 행정자치부내의 일개 국으로서 비전문 순환보직자에 의해 통제되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윤명오 교수는 국방부나 경찰청과 달리 소방국은 스스로 정책을 입안해 실행하기 위한 길이 봉쇄돼 있다고 지적했다. 소방국이 청으로 승격되지 않는 한 장비현대화 등을 위한 예산증액은 앞으로도 입밖에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방관들 사이에는 "재주는 우리가 넘고 생색은 다른 데서 낸다"는 자조가 일반적이다.

국내에 화상전문병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소방병원을 신설하는 것은 경제성으로 봐서도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열악한 근무조건은 사고와 무관치 않다. 소방관 대형참사에 대해 정부는 변명할 말이 없다. 재난시 119는 국민이 가장 먼저 찾는 조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14 20:5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