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미·일경제] 일본 경제 다시 어두운 그림자

닛케이스 연일 최저치 경신, '불황' 조짐
현실로

90년대 내내 계속된 10년 장기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와 지난해 완연한 회복 기미를 보였던 일본 경제에 다시 브레이크가 걸렸다.

일본 경제의 그늘은 주가 하락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4월5일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는 2만462엔이었다.

그러나 3월 2일 닛케이평균주가는 1만2,261엔까지 떨어져 거품경제 붕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가가 1985년 11월 수준으로 되돌아 간 이래 여전히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가 하락은 미국의 경기 후퇴 조짐에 따른 뉴욕증시의 주가 하락이 직접적인 계기이지만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한 시장의 차가운 눈길이 바닥에 깔려 있다. 또한 3월말 결산을 앞둔 주가의 하락은 기업의 평가손을 크게 늘릴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다시 주가가 하락하는 부(負)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얼어붙은 국내소비, 재정도 파타지경

지난해 뚜렷한 경기 회복 기운에도 불구하고, 사카이야 다이치 경제기획청장관은 지난 연말 퇴임 때까지 경기 회복 선언을 끝내 하지 못했다.

기업 수익이나 설비투자의 증가 등 생산 측면에서의 회복세는 뚜렷했으나 얼어붙은 국내소비가 깨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가 올해들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아소 다로 경제렝瑩ㅄ侍?장관은 3월9일 경기에 대해 "제자리 걸음 상태에 있다"고 밝히고 16일 발표될 3월 월례 경제보고의 경기판단도 "2월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하향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경기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로 "기업의 경상 수익은 괜찮으나 이익을 차입금 변제에 돌리고 있어 고용 확대나 임금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경기 후퇴 조짐이 분명해 질 경우 "재정 지출로 경기를 지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감안하면 재정 투자를 통한 경기 자극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야자와 기이치 재무장관이 최근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재정은 파국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재정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8년 7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내각의 출범과 함께 일본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내각의 재정 정책을 180도 수정, 재정 지출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썼다. 2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국채 발행이 약 85조엔이나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말의 국채발행 잔고는 365조엔에 이르렀다.

여기에 지방자치체의 채무 잔고 87조엔과 후생연금 등의 국고 부담 연장분까지 합치면 645조엔에 이르러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1%에 이르러 주요 선진국(G7) 가운데 최악인 이탈리아의 115.2%에 육박해 있다.


한계에 다다른 경기부양 효과

재정지출의 경기 부양 효과도 이미 한계에 달했다. 지난해부터 경기 회복 조짐은 대규모 재정지출이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경제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 창출을 위한 공공투자는 '1회용 영양제'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추가 재정지출이 어려워지자 올들어 경기 침체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 이상 1회용 영양제 주사에 의존하기 어렵다.

금리정책의 한계도 분명해졌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8월 1년반 동안 유지해 온 '제로금리'를 수정했다. 단기금리의 지표인 일일물 콜금리 유도목표를 연 0%에서 0.25%로 끌어 올리는 실질적 금리 인상을 발표하면서 하야미 마사루 총재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사라졌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런 자신감은 6개월을 가지 못했다. 2월13일부터 95년 9월 이래 계속된 연 0.5%의 재할인율을 0.15%포인트 인하, 연 0.35%를 적용했으며 이어 3월1일을 기준으로 이를 다시 0.1%포인트 끌어 내려 연 0.25%로 낮추었다.

동시에 일일물 콜금리 유도목표도 연 0.15%로 끌어 내렸다. 잇단 금리인하의 이유는 '디플레이션 우려'였다.

사라졌다던 디플레이션 우려가 6개월만에 다시 지적돼 일본 경제의 심각성을 확인했지만 이미 금리 인하의 경기 자극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연 0.5%의 재할인율만 해도 세계적으로 사상 최저치이고 정기예금 금리는 연 0.3~0.5%, 30년 이상 장기대출 금리가 연 3.5% 수준이다.

그러니 애초에 0.5%의 재할인율 범위내에서 이뤄지는 어떤 금리 정책도 시장의 자금 수급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기 어려웠다. 연 0.25%의 범위안에서 이뤄질 앞으로의 금리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된다.

그동안 일본의 경기 회복을 이끌어 온 것은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설비투자였다.

금융불안과 소비 부진 속에서도 일본의 제조업체는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활발한 생산을 거듭했다. 인원 정리를 비롯한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률을 끌어 올렸고 대부분의 기업이 3월말 결산에서는 거액의 흑자를 내다보고 있다. 이런 수익을 바탕으로 IT(정보기술)산업에서는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가 50%를 넘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분명해진 미국 경기의 후퇴 조짐과 아시아의 경제 불안은 기업의 생산 의욕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경제산업성의 2월말 발표에 따르면 1월의 광공업 생산지수는 103.2로 지난해 12월 대비 3.9포인트 하락했다.

광공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8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이렇게 크게 하락한 것은 93년 3월 이래 처음이어서 충격을 던졌다. 반도체 업체 등의 설비 투자 감소가 예상되고 있어 감소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심각한 금융불안, 생산의욕도 떨어져

물가 하락도 우려의 요인이다. 지난해말 일본의 도매물가는 95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기업의 경비 절감과 유통합리화 노력에 따른 긍정적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만성적 수요 침체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업의 생산의욕은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가장 커다란 우려는 금융불안이다.

거품경제의 붕괴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지난 10년 사이 55조엔이 처리됐지만 아직도 60조엔 이상이 남아 있다. 최근의 급격한 주가 하락으로 금융기관의 평가손이 늘어 날 경우 3월말 결산기를 맞아 금융불안이 다시 한번 표면화, 경제 기반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무성하다.

한때 사라졌던 이런 불안 요소가 모두 모리 총리 집권 이후에 표면화했다. 정치권은 모리 총리의 퇴진 여부를 놓고 오랫동안 씨름을 거듭해 왔을 뿐 마땅한 경제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모리 총리가 3월10일 밝힌 대로 4월에 퇴진하고 새로운 내각이 들어설 경우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오부치 전총리가 치중했던 영양제 주사의 약효가 떨어진 결과가 현재의 경제 상황이라면 모리 총리는 시장에 '정책 불안' 심리를 조장하기는 했지만 실체 경제의 약화와는 무관하다는 보다 냉정한 분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어떤 정권이 들어 서더라도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거나 일본 경제가 제2의 도약을 위해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회의련설衙隙?시장을 덮고 있다.


엔저유도론 공공연히 거론

엔저 유도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회의론과 무관하지 않다. 하야미 총재는 최근 "디플레이션 압력 해소에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대폭적인 엔저를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야자와 장관도 "자연스러운 엔저라면 나쁘지 않다"고 같은 입장을 보였다. 이런 발언의 결과 엔화는 99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119.98엔까지 떨어졌고 수시로 달러당 120엔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유일하게 일본 경제를 버티고 있는 수출기업의 숨통을 트는 데는 엔저만한 선택이 없다.

그러나 엔저가 아시아 주변국의 수출 경쟁력을 위협, 이미 일본 경제가 미국 시장과 비슷한 의존도를 가진 아시아 시장을 해칠 것이란 점에서는 양날의 칼일 뿐이다.

일본 경제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위기설의 최대 고비인 3월말 결산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3/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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