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48)] 가을태생 장수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몇 개월을 더 산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질까? 그 인생이 즐겁기만 하다면 단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좋은 일이겠지만, 삶이 힘겹고 고단할 때는 단 한 시간도 영겁과 같은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태어난 계절에 따라 수명의 장단이 결정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잔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봄에 태어난 사람보다 몇 개월을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수행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가브리엘 도밤머 박사와 제임스 와펠 박사는 50세 이후에 사망한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사람 100만 명 이상의 출생 월(月)과 수명의 길고 짧음을 비교 조사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인의 경우 10월에서 12월 사이의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4월에서 6월의 봄에 태어난 사람보다 0.6년(7개월 6일)을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인의 경우 가을에 태어난 사람이 봄에 태어난 사람보다 0.3년(3개월 7일)을 더 오래 산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호주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호주의 경우 봄에 태어난 사람의 평균 수명은 78세였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77.65세였다.

겨우 몇 개월의 수명차이지만, 만일 이 연구결과처럼 태어난 계절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심각하게 고려해 볼 만한 문제다.

그렇다면 계절의 그 무엇이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일까?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연구자들은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임신 동안의 영양상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름과 가을에는 겨울과 봄보다 더 많은 과일이 나고 더 많은 채소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임신한 여성은 여름과 가을에 음식을 더 잘 먹기 때문에 아이도 더 크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야겠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해석이다.

그러나 요즘은 겨울에도 여름 못지 않은 과일이 유통되고 있는 시점이라 조사대상이었던 50년 전에 태어난 사람과는 여러 가지 환경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아이를 가을에 낳아 몇 개월을 장수하게 만든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을 것같다.

이와 유사한 연구도 더러 있었는데, 봄에 태어나는 아이의 몸집이 겨울에 태어나는 아이보다 작다고 한다. 이 경우는 산모가 임신기간인 겨울에 덜 활동적이거나 추운 온도가 스트레스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차치하고라도, 임산부의 영양상태가 태아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여러 연구사례가 있으며, 또한 인생의 초기의 나쁜 환경이 어른이 되었을 때 만성질환을 비롯한 감염성 질환에 더 민감해 지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임신 마지막 3주 동안에 부모가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당뇨병이나 고혈압, 비만, 우울증 등의 병에 걸릴 위험에 더 높다.

또한 무관심하게 키운 아이는 인생 말기에 알츠하이머나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높다고 한다. 동물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로 나타난다. 엄마의 관심을 덜 받고 자란 생쥐는 깊은 관심을 받은 생쥐에 비하여 인지능력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임신 중의 건강과 태어난 직후의 환경은 그 사람의 신체 생리학(적어도 면역시스템)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운명은 부모의 손에 이미 좌우된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자기관리와 사랑은 계절을 초월하여 자녀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03/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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