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월출산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808m)은 해발 900m도 채 못 되는 낮은 산이다. 전체 면적이 41.88㎢로 크기도 보잘 것 없다. 그런데 예로부터 전남 제일의 명산으로 꼽혔고 지금은 어엿한 국립공원이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고 매운 고추와 같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엉킨 돌무더기 산이기 때문에 길이 험하고 오르기도 힘들다. 꿈 같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땀을 지불해야 한다.

월출산 등산로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동북쪽 천황사에서 올라 최고봉인 천황봉을 등정하고 구정봉을 거쳐 도갑사로 내려오는 길이다. 봄철 산불방지기간(5월 15일까지)에는 이 구간만 개방된다.

작은 암자처럼 생긴 천황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거친 숨이 절로 나온다. 길은 바위를 만나면 90도 각도로 솟는다. 사다리 같은 계단이 걸려있다.

오르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도 많다. 거친 바위파도를 타는 느낌이다. '낮은 산이라 우습게 여겼던 것은 교만.'이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10분이면 족하다. 숨이 턱에 차지만 산행을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르면 오를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산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바위 봉우리들이 내뿜는 강한 기운에 빨려 발길은 계속 산 속으로 향한다.

약 3시간 여 엉금엉금 기면 천황봉에 이른다. 정상 바로 아래는 철골구조의 나무 계단이다. 보폭의 자유를 제한하는 계단은 마지막 힘까지 모두 빨아낸다. 드디어 정상.

헐떡거리던 호흡이 저절로 멎는다. 사방은 온통 바위의 바다이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햇살처럼 펼쳐져 있다. 사나운 짐승의 떼가 우두머리를 향해 도열한 것처럼. '우우~'하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황봉과 구정봉을 잇는 길에서 그 바위들을 가깝게 대할 수 있다. 거대하면서 저마다 다른 얼굴들. 사람이 깎아 놓은 것처럼 정교한 모습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표정을 보면 모두 둥글둥글 마음씨가 좋아 보인다. '고생하시네'라며 웃고 있는 것 같다.

구정봉은 봉우리 위에 아홉 개의 물웅덩이가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구정봉 쉼터에서 계속 정상바위에 다가가면 사람 하나가 지나갈만한 굴이 나온다. 굴을 지나 발 한쪽을 겨우 붙일만한 아슬아슬한 절벽길을 오르면 구정봉 정상에 이른다.

물웅덩이는 목욕탕의 욕조만한 것부터 바가지만한 것까지 다양하다. 웅덩이의 물은 마르는 법이 없다고 한다. 가뭄이 길어지면 이 물을 모셔다가 기우제를 지낸다.

구정봉부터는 내리막. 약 30분의 너덜지대를 통과하면 마지막 쉼터인 억새밭에 이른다. 힘든 산행은 일단 여기까지이다. 지금 억새꽃은 없다.

꽃대만 바람에 출렁인다. 억새밭 한쪽으로 거북이 머리 같은 길쭉한 너럭바위가 45도 각도로 솟아있다. 바위에 올라 소리를 질러봄 직하다. 발 아래 펼쳐지는 성전저수지의 푸른 물빛이 시원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3/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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