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비둘기파와 매파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를 전후해 워싱턴에서는 대북한 비둘기파, 매파, '제3의 길'파 등이 등장해 한반도가 갑자기 '베트남 수렁'에 빠진듯했다.

지난 1월 조지 부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북아 안보를 다루는 인터넷사이트인 노틸러스(www.natilus.com)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포럼을 만들면서 부터였다.

한 때 뉴욕 타임스의 논설위원이었던 레온 시걸(사회연구소 동북아협조계획 사무국장, '북한과의 핵 외교'의 저자)이 "평양과 협상하는 데 유의할 한 여섯가지 '신화'(myths)를 포럼에 올리면서 열기가 올랐다.

시걸은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재임중 적어도 7년 간 북한을 상대해 핵동결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 및 수출 보류 합의를 끌어낸 것은 신화적일 수 있다는 비둘기파적 견해를 보였다.

그는 첫번째 '신화'로 북한이 협박만 하고 미국은 양보만 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미국과 티격태격했을 뿐 협박은 하지 않았다는 것. 북한은 미국이 협조를 요구하면 들어 주었고 그러한 상호주의가 차기 정부에도 유용하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고 분석했다.

두번째는 미국이 북한으로 받은 게 많다는 것. 적어도 제네바 합의에 의해 지금쯤 60개에 달할 핵폭탄 제조가 중지되었다.

또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노력으로 노동, 대포동 미사일 수출, 생산, 시험이 중지되었아. 재래식 무기와 군사력 감축도 북한과의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남겼다.

세번째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대신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평화유지군이 된다는 주한 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

네번째는 경제사정이 나빠지기 전인 1980대부터 북한은 한국, 미국, 일본과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교섭을 벌였고 약간의 성과를 얻었다.

다섯번째는 외부의 원조가 평양의 경제개혁 없이는 무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원조하면 신화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섯번째 신화는 북한이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서만 경제적 붕괴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걸은 북한이 안보의 두 축인 미사일과 핵을 포기할 때 미국은 이를 포용하고, 부시는 클린턴이 세운 토대위에서 미사일 협상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의 방미직전 영국 리드대학 사회학 및 현대한국문제 선임연구원인 애디언 포스터-카터는 "비둘기파의 신화는 매파보다 나쁘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부시나 파월 국무장관, 라이스 안보보좌관의 의견에 동조한 매파적 시각이다.

포스터-카터는 시걸이 북한의 행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매파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얻은 것은 명백한 '협박'인데도 이를 협박이 아니라는 것은 말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두번째는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감축 등에 대한 김정일의 언급은 말뿐이며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4자 회담에서 군사력 감축문제는 논의되지 않았고 남북정상회담에서 핫라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셋째, 주한미군 주둔의 합리성은 김 대통령의 전언일 뿐이다. 김정일은 스스로의 입이나 글로 이를 증명해야 한다.

넷째, 1980년대 고립을 탈피하려 했다는 북한은 1987년 KAL기를 폭파했고, 1982년과 1992년 한국과 일본과의 협상을 갑작스레 중단했다.

다섯번째 북한의 구호에는 동의 하지만 세계은행 등이 투자하기 전 미국의 경제제재는 검증된 뒤 풀려야한다.

여섯번째 북한이 외부의 돈이 필요하면 1970년대의 부도를 낸 신용을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군사력 강화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포스터-카터는 시걸과 같은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비들기파적 사고가 결국 보수적 매파의 '검증'과 '투명성' 논리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방미중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회견에서 '제3의 길'도 있음을 밝혔다.

이 신문의 국제문제 컬럼니스트인 집 호크랜드는 "김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평만이 나쁜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 통일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구상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적인 논리' 때문입니다. 남과 북은 서로 무서워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나 남북은 주변국가의 패권다툼에 대해서는 공포와 혐오가 더합니다. 지난 6월의 만남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나왔을 때 김 위원장에게 동북아 안정을 위해 통일후에도 미군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동의했습니다."라고 김 대통령은 대답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은 살아남기 위해 외국원조가 필요하며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김대통령의 '제3의 길'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보다 김정일은 김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투명성 및 검증 요구를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외교를 펴야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 교수

입력시간 2001/03/20 22:0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