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저항문학을 벗어난 새로운 비평모델

■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Postcolonocal Theory)
바트 무어-길버트 지음/이경원 옮김

최근 개봉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는 흰 수염이 덥수록한 노년의 흑인 쿠바 뮤지션들이 20세기 말 암스테르담과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관객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지만 그 이면에는 우울함이 배어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쿠바의 음악, 거기에 열광하는 미국인들. 그 속에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지배와 저항의 수직적 관계가 숨어있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인들은 카리브해의 정서가 담긴 음악을 유희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지배자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내재돼 있는 것이다.

프란츠 파농(1925~1961년)과 체 게바라(1928~1967년)는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둘러싼 지배, 종속, 저항의 역사적 측면을 강변했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게바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화상품으로 전락했고, 파농은 투사의 이미지는 순치된 채 그의 탈식민적 정신분석학 이론만 강단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는 근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이었던 탈식민주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탈식민주의(Postcolonism)는 이제 세계적으로 젠더, 환경, 민족주의, 페미니즘 등과 관련해 새롭게 떠오르는 비평 모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국내에 이런 탈식민주의가 소개된지는 근 1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모호한 수입이론이나 잡종이론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탈식민주의 자체가 다양하고 이질적이며 양립하기 힘든 이론의 혼합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 더 큰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바트 무어-길버트의 저서 '탈식민주의! 저항에서 유희로'(컬처북스 펴냄)는 한번쯤 섭렵해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실천, 정치적 입장과 효과, 그리고 주요 이론가와 쟁점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내리고 있다.

탈식민주의론은 태생적으로 체계화, 이론화가 힘들다. 최근에는 서양학자들에 의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형태로 다뤄지고 있지만 실제로 탈식민주의는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식민자의 절규와 몸부림으로 시작된 저항 문학이고 사상이다.

저자 무어- 길버트는 이런 논쟁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내린다.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제3세계 국가의 자생적ㆍ주체적 민족운동 개념이 강했던 초기를 '탈식민주의 비평'으로,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같은 서구 이론과 자본의 개입으로 문화적 신탁통치식이 되버린 후기를 '탈식민주의 이념'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기존의 이론가들을 비평하면서 결국은 탈식민주의 비평과 이론은 서로 생산적 조화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0 22:14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