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50)] 호무레스

영어의 홈리스(homeless)는 '집없는'을 뜻하는 형용사여서 정관사 'the'를 붙여야 '집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홈리스의 일본식 표기인 '호무레스'는 곧바로 집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일본에서 호무레스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언론이 1980년대 중반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전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일본 언론은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이 최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회현상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저당잡힌 집이 날아가고 가족은 흩어지고 일자리가 없어 노숙을 해야 했지만 대개는 구걸을 하지 않았다는 데서 전통적 의미의 거지와는 행태가 뚜렷이 구분됐다. 거품경제로 흥청거리던 당시 그것이 머지않아 일본의 얘기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본 대도시 번화가의 지하철역과 공원은 호무레스로 넘쳤다.

우에노(上野) 공원이나 지하철 신주쿠(新宿)역 서쪽 통로에 즐비한 이들의 골판지 상자집은 한때 도쿄(東京)의 새로운 명물로 여겨질 정도였다.

신주쿠역의 경우 움직이는 보도가 설치되면서 이들은 모처럼의 안식처를 잃었지만 지금도 움직이는 보도의 운행이 중지되는 자정에서 새벽 5시 사이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상자집을 짓는 사람이 100여명은 된다. 1990년대 말부터는 변두리의 공원에까지 호무레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호무레스란 말이 널리 쓰이기 이전 일본에는 '고지키'(乞食)라는 말이 있었다. '음식이나 금품을 구걸해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우리 말의 거지에 정확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당사자 앞에서는 쓰기 힘든 말이어서 언론은 주로 '후로샤'(浮浪者)라는 말로 대신했다.

고지키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 집집을 돌며 탁발을 하던 승려를 가리킨 불교용어 '고쓰지키'에서 나왔다. 세월과 함께 뜻과 형태가 동시에 변했다. 물건을 얻는 행위를 뜻하는 '모라이'(貰い), 주로 한센씨병 환자를 가리켰던 '가타이'(乞向) 등도 같은 뜻으로 쓰였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유사 이래 거지가 없던 시대는 없었다. 일본에서도 8세기에 편찬된 만요슈(萬葉集)에 이집 저집을 다니며 축복을 겸한 간단한 연예를 펼치고 밥을 얻어먹던 '호카히비토'(祝ひ人)가 등장한다. 근대사회 이전에는 순수한 거지는 물론 탁발승, 하급 연예인, 행상인 등이 모두 고지키로 통하면서 일반인의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호무레스는 과거의 고지키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선 이들은 구걸하지 않는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아무데나 소변을 보는 바람에 냄새는 진동하지만 행인에게 특별한 폐를 끼치지도 않는다.

일반 시민의 불편은 벚꽃놀이철의 명소 우에노 공원 곳곳에 이들이 진을 치고 있어 자리맡기가 어려웠다는 정도다.

자원봉사단체의 활발한 구호활동과 행정기관의 보살핌도 있지만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이 이들의 끼니를 보장한다. 도시락과 주먹밥 등 인스턴트 식품이 극도로 발달한데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식품 관리체제 때문에 멀쩡한 음식이 수없이 버려진다.

따라서 편의점 등이 있는 '나와바리'(繩張りㆍ영역)를 확보하기만 하면 최소한 끼니를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종업원이 따로 모아놓거나 아예 이런 음식물을 거두어 배급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그래서 도시락과 생선회, 튀김 등을 죽 늘어놓고 찌개까지 곁들여 조촐한 잔치를 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다.

의료문제도 특별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정기적으로 이들을 검진하는 의료단체가 많고 위급한 경우에는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가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냉ㆍ난방 시설이 완비된 각급 자치단체의 도서관이 곳곳에 있어 하루종일 만화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며 지낼 수도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젊은 호무레스는 도서관이 가까운 공원을 가장 선호한다. 그래서 한동안 노령층을 제외한 호무레스를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적 취미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뿌리깊었다.

최근 들어 호무레스는 분명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달초 도쿄도가 간행한 '호무레스 백서'에 따르면 2000년 8월 현재 도쿄의 호무레스는 5,700명으로 1995년 2월 당시의 3,300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전직은 기능공 41%, 잡역 20%, 서비스업 10% 등의 순이었지만 사무직(6%)이나 전문ㆍ관리직(4%)도 있었다. 64%는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으며 지금이라도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70%에 달했다. 일본 경제의 그늘이 그만큼 짙은 셈이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3/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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