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제2의 박지원?

체육교류협의 명목 방북,'대북 밀사설'에 무게 실리기도

3월16일 국회 문화관광위. 김한길 문화부장관이 출석한 이날 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3월10일에서 14일까지 있었던 김 장관의 방북 활동을 집중적으로 캐고들었다.

"김정일을 포함한 다른 주요 인사들을 만난 사실이 없는가", "문화ㆍ관광ㆍ체육분야 이외에 다루어진 의제는 무엇인가"라는 등의 질문이 주로 제기되었다.

출발 일주일전 이미 언론에 알려진 방문이었고 또 귀국 직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 등 북측과의 합의가 발표된 상황에서 의원들이 방북기간중 김 장관의 동선(動線)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발표된 사실 외에 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밀사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 미묘한 시기에 방북

이른바 '김한길 밀사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꽤나 그럴 듯하다. 우선 방문시기가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바로 직후라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대북정책에 관한 한미 양국간 입장의 간격을 확인시켰고 비록 '포괄적'이라는 수식이 붙긴 했지만 한국은 미국의 상호주의 견지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또 부시 미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등 북한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표출했다.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을 자극했으리란 것은 불문가지로 정부로서는 북한의 오해에 대비, 즉각적인 해명의 필요성을 느꼈을 법하다.

둘째, 올해 최대의 정치 이벤트가 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사전조율했을 가능성도 신빙성있게 제기된다.

남한내 정치ㆍ경제적 상황변화와 맞물려 상반기내 답방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답방문제가 얘기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이런 정황과 어울려 밀사설을 뒷받침하는 또하나의 근거로 김한길 장관이 이 정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들 수 있다.

16일 질의에서 한나라당의 김일윤 의원은 "박지원 전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밀사로 활동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김 장관이 김정일 답방과 관련한 밀사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주장했다.

현정권의 최고 실세장관으로 꼽혔던 박 전 장관과 후임인 김 장관의 역할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김 장관이 김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브레인중 한명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96년 국민회의에 입당, DJ와 인연을 맺은 후로 그는 무수히 많은 기회를 통해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등 무려 3차례 대변인직을 맡아 DJ의 '입'구실을 했고 총재특별보좌역을 두번이나 역임했다.

1999년 3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일하면서 현정권의 위기관리 및 정책 시스템을 다졌고 4ㆍ13 총선에서는 총선기획단장으로 선거홍보를 총괄지휘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아크월드 사건으로 낙마한 박지원 장관의 후임으로 문화부장관에 취임, 현정권에서 가장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 주도면밀한 일처리로 DJ에 신임

김 장관은 여러모로 DJ가 좋아할 만한 요건을 갖춘 사람이다. 주변 사람이 전하는 김 장관의 성격상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치밀함과 주도면밀함이다. 그의 본업이 소설가라는 점,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이력을 고려할 때 퍽이나 뜻밖의 평가다.

한 측근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챙김으로써 큰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예로 정책기획수석 재직시절 그가 유행시켰던 '택시기사 참모론'을 들 수 있다. 당시 그는 "유능한 택시기사는 손님이 서울역으로 가자고 하면 을지로로 갈 것인지, 퇴계로로 갈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면 평소 어느 길이 가까운지, 얼마나 막히는지 열심히 지도를 보고 교통방송도 들어둬야 한다.

어떤 기사들은 길이 막혀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손님에게 미리 길을 묻는데 이는 손님을 모시는 자세가 아니다.

손님이 시청까지 30분안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 그 다음은 택시기사가 알아서 하듯 대통령을 모시는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닮은 아랫사람을 어여삐 여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할 때 DJ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부지런과 주도면밀함을 갖춘 김 장관을 신임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평범을 뛰어넘는 순발력과 기획력,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대표적 특장으로 들 수 있다.

그는 사상 최초의 미디어 선거전으로 꼽히는 지난 대선에서 TV홍보대책팀장을 맡아 발군의 감각으로 '준비된 대통령=DJ'의 이미지를 연출, 기획하고 이를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그의 홍보능력이 없었다면 30만표차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DJ는 당선 후에도 '국민과의 대화', 취임 1주년 기념회견, 8ㆍ15 경축사 등 방송관련 이벤트는 김 장관에게 맡겼다.

무난한 처신과 신중한 입은 김 장관의 관운을 뒷받침한다. 그는 세칭 동교동계도 아니고 그밖에 다른 실력자의 서클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지만 안팎으로 거의 적이 없는 사람이다.

타고난 친화력에다 도드라져 보이길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이는 그의 단점으로 자주 거론되는 점이기도 하다.

■김한길 박지원의 복잡미묘한 관계

단순히 전임과 후임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박지원 전 장관과 김한길 장관은 상당한 공통점과 개인적 인연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 1996년 국민회의에 입당한 김 장관은 지역구 출마를 위해 대변인직을 물러난 박 전 장관을 대신해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다.

또 1997년 대선 승리 후에 박 전 장관은 김대중 당선자의 대변인을 지냈고 김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을 맡아 '대변인 투톱 체제'를 끌어가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직을 놓고 두 사람이 경합, 박 전 장관이 낙점을 받았다. 박 전 장관의 후임으로 문화부장관에 임명된 날, 김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축하받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해 두 사람간의 복잡미묘한 인연을 반영했다.

어쨌든 두 사람에게서는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핵심 브레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유추할 수 있다.

박 전 장관이 그러했듯 김 장관 또한 대북정책 등 현정부의 정국운용에 있어 비선(秘線)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리란 추론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번에 김 장관의 평양행을 놓고 갖은 추측이 나돌았던 것처럼 앞으로 그의 움직임엔 비상한 관심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김 장관은 '한국의 앙드레 말로'보다는 '제2의 박지원'으로 일반에 인식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북한을 방문한 김한길 장관의 행보를 놓고 정가에서는 '대북밀사설'이 흘러나오는등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원명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1 14:19


노원명 정치부 narzi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