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백악관 경영학은 '품위'

CEO 스타일 관리, 클린턴과 차별화로 '위엄 되찾기'

미국 백악관은 '18에이커'로 불린다. 백악관에서만 사용되는 은어다. 백악관의 은어는 비서팀과 경호팀이 원래의 용어를 압축해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암호다. '포터스'(POTUSㆍPresident Of United States의 약자)는 대통령을, '짐꾸러미'(package)는 차량에 탑승한 대통령을 가리킨다.

'푸른 거위'(blue goose)는 대통령 전용 연설대, '플로터스'(FLOTUSㆍFirst Lady Of United States 의 약자)는 영부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입성 직후 이들 은어를 외우느라 진땀을 뺐다. 국외자들이 들으면 은어는 대통령과 백악관을 비하하는 말로 들릴 지 모른다. 하지만 부시는 묵은둥이 백악관 직원들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 이런 용어에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부시가 백악관의 공기를 확 풀어버린 것은 아니다. 정반대다.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시 실추된 백악관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분위기 전환에 착수했다.

그는 선거공약에서도 "백악관의 권위를 회복하겠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윤리적 행위 강조, 청바지 추방령도

취임식 이틀째인 1월22일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 출근한 부시 대통령은 '청바지 추방령'을 내렸다.

백악관의 품위를 세우기 위해서다. 모든 직원은 청바지 차림의 업무가 금지됐다. 남자는 넥타이와 정장을, 여자는 적절한 업무용 복장을 착용하도록 했다.

자신도 마찬가지. 백악관의 한 직원은 부시가 취임 후 두달 이상 정장이 아닌 차림으로 오벌오피스에 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바지 추방령은 부시가 업무와 휴가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부시는 평소 휴일에는 텍사스 출신답게 카우보이 스타일의 청바지와 점퍼를 즐겨입었다.

부시는 백악관을 조롱거리로 만든 클린턴 시절의 각종 스캔들에도 '방화벽'을 설치했다.

부시는 집무 첫날 신규 보좌관 취임선서식에서 고도의 윤리기준을 준수하도록 촉구했다.

백악관 직원의 법적, 윤리적 행위를 강조하며 "부적절한 행위로 비치는 것조차 피하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보좌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니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AP=연합)

부시는 자신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알베르토 곤살레스 백악관 법률고문에게는 "동료들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도 윤리적으로 의심스런 행동을 할 경우 기탄없이 맞서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백악관은 비싼 숙박료를 내고 유명인사들이 하룻밤씩 묵는 호텔이 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클린턴 시절 백악관은 정치헌금의 대가로 백악관 침실에서 기분을 낸 부자들이 적지 않았다.

부시의 '백악관 군기잡기'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부시의 백악관 경영학은 최고경영자(CEO)의 기업경영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은 아직 명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백악관 경영에서만은 분명한 색깔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클린턴 시설의 백악관을 반면교사로 활용하는 점도 없지 않다.

뉴욕타임스가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의 말을 인용해 3월11일 보도한 부시의 백악관 생활을 보자. 우선 부시는 각 부처의 브리핑 문건을 한 페이지 이내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많아도 두 페이지를 넘겨서는 안된다. 부시는 명백한 사실을 기술한 메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연설문에 '백악관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쓰여있으면 쓸데없는 것을 넣었다고 꾸짖는다.

"당신은 대통령이 그런 말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보고문에 대한 부시의 기호는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전두환씨와 비슷한 것 같다. 정보보고문에 대해 전두환씨는 한 페이지 이내, 김영삼씨는 본문없이 굵은 제목으로만, 김대중 대통령은 매우 자세하게 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담백한 백악관 경영철학

부시는 정시출근, 정시퇴근하는 스타일이다. 일 중독자도 아니다. 부시는 통상 오후 6시30분에 집무실을 떠난다. 백악관 직원에게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주말을 즐기기를 원한다.

카드 비서실장은 "부시는 매우 중요한 배터리(직원)를 어떻게 재충전시키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시간에 대한 부시의 태도도 분명하다. 정시 개회, 정시 폐회다. 참석자들은 정시, 또는 약간 일찍 도착해야 한다. 참모들에게는 서로 존중하고 다른 사람이 남긴 전화에 즉시 응답해주도록 당부한다.

이 방침에 따라 카드 비서실장은 보좌관들에게 특권의식 배제를 촉구한다. "우리는 단순한 보좌관에 불과하다.

교통부나 도시개발국 직원, 심지어 우편물 개봉직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건 전화에 응답을 받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전화에도 응답해야 한다."

AP통신은 부시의 백악관 경영철학이 그가 최초의 MBA 출신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관계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경영학 석사다. 부시는 하버드에서 배운 케이스 연구에 근거한 경영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부시는 훌륭한 경영자로서 백악관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해 비즈니스 냄새가 강한 용어를 사용했다. 강력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통해 행정을 집행하되 그들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한다는 이야기다.

부시의 경영관은 딕 체니 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두드러진다. 부시는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것은 체니의 경험과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의 부통령 선정기준과 크게 다르다. 체니는 지금까지 최고운영간부(COO)의 기능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부시는 "체니 대통령"이라며 보조관들과 농담한 적이 있다. 반면 체니는 "누가 보스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부시는 체니의 빛에 자신이 가릴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입방아에 별로 개의치 않는 인상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게 부시의 생각인 것 같다.

부시의 백악관 경영 스타일은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을 닮았다는 분석이 많다. 부시는 레이건처럼 결정을 내릴 때 측근 고문에 크게 의지한다. 아울러 자신은 큰 틀로만 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린다.

결정을 내리는 방식도 레이건과 비슷하다. 텍사스 주지사 시절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클레이 존슨은 "부시는 결정을 내릴 때 머뭇거리지 않고, 일단 결정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일 중독자가 아닌 것도 두 사람은 닮았다. 주지사 시절 부시는 낮에 두 시간은 운동과 비디오게임, 낮잠으로 보냈다. 1마일(1.6km)을 7분15초에 달리는 부시는 백악관 입성 후에도 조깅을 빼먹지 않는다. 부시의 가족은 부인 로라와 쌍둥이 딸 제나, 바버라.

로라의 역할은 시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클린턴 부인 힐러리나 레이건 부인 낸시보다는 안방마님에 더 가까울 것이란 이야기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1 14:33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