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마포구 망원동(望遠洞)

망원정(望遠亭)! '일만 집 촌락은 남쪽 호구에 잇닿았고/ 일백 치첩(雉堞)산성은 저 멀리 버티어 있네/ 풍경에 취한 이 마음 한번 크게 취해 볼거나/ 덩굴 사이 밝은 달 물가에 비추어 더욱 좋네'라고 명(明)나라에서 온 사신이 이곳 마포 한강가의 망원정에서 풍류를 즐기며 읊은 시다.

'망원'이란 글 뜻대로 '멀리 바라본다'는 뜻이다. 망원정의 '망원'을 따 붙인 땅이름이 오늘날 마포구 망원동이다.

망원정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곳에 처음 정자를 세우고 가람(한강)의 풍경을 즐기던 곳으로 처음에는 희우정(喜雨亭)이라 불렀다. 어느날 세종이 일부러 형의 정자에 거동, 잔치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이때 오랫동안 기다리던 비가 들판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세종이 기다리던 비라 기쁜 나머지 즉석에서 친히 '희우정'이라 이름짓고 큰 글씨로 써서 걸었다고 한다. 그 뒤, 세종은 자주 이곳에 거동, 한강에서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관전하였던 명소로서 임금과 형제간의 훈훈한 정을 다지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이곳 정자에서 한강을 굽어보면 물속의 고기와 새우가 노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황포돛배와 물위의 갈매기, 그리고 정자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가 우거져 마치 한폭의 동양화을 연상케 했다니 그 정경이 실로 눈에 훤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강은 물론, 망원정조차 접근이 어렵고 그 많던 소나무는 간데 없고 다만 한강변의 대로엔 자동차 물결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새로 복원한 망원정은 들어갈 수 없게끔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는데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 질식할 지경에 놓여있다.

조선조 성종(成宗) 때 이곳은 성종의 친형이자 연산군(燕山君)에게 백부가 되는 월산대군(月山大君)의 별장이 되었으며 이때 정자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꾼 것이 오늘의 이름이다. 뒷날 등극한 연산군은 음란, 호색, 술을 따를 자가 없는 폭군으로 변했다.

본래 월산대군은 일찍 본부인과 사별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보내고 있던 중, 폭군 연산군을 권좌에서 몰아낸 박원종의 누이(박씨)를 후실로 맞아들였다.

월산대군이 세상을 뜨자 연산군은 백모가 아직 젊은데다가 절세 미인으로 소문났던 터라 월산대군의 정자인 망원정에 나?던 길에 백모인 박씨를 범하고 말았다.

이에 불의의 치욕을 씻을 수 없게 된 연산군의 백모 박씨는 원통함을 참다못해 칼로 스스로 자신의 국부를 난자, 자결했다고 야사(野史)는 전하고 있다.

1984년 한강 대홍수로 이 일대가 침수,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를 놓고 오랫동안 민원을 빚었던 망원동도 그 '망원'(望遠)이라는 글 뜻처럼 '멀리 바라보는 안목(眼目)'이 있었던들 그런 재난은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곳은 세종대왕께서 친히 이름을 내린 '희우정'이었는데도 한강 홍수 때의 그 비는 반갑고 기쁜 비가 되지 못했으니 오늘은 사는 못난 후손을 탓하랴.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1/03/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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