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편지 600편에 담긴 50년 세월

"전쟁통에 죽은 줄로만 알고 30년째 제사를 지낸 큰형이 살아있다니 너무 기쁘고 고맙다. 편지를 받고보니 장남없이 6남매를 고생하며 키우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설움이 북받친다."

강환준(56ㆍ충북 제천시 청전동)씨는 3월17일 북한에서 날아온 큰형 환철(72)씨의 편지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반세기전 헤어져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큰형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움이지만 생존사실을 모른 채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 안타까웠다.

북측 환철씨의 편지. "그리운 고향을 떠날 때 어머니와 헤어지던 모습이 가슴에 사무치고 부모에게 밥 한그릇 따뜻하게 대접하지 못한 게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동생들이 나대신 부모님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다.

나는 인민군 지휘관으로 제대하고 대학졸업 뒤 시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지내면서 훈장과 메달 17개를 받는 영예를 지니었다."

남북한 분단사상 처음으로 3월15일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서신 600통이 교환됐다. 남북측이 300통씩 보낸 편지에는 분단과 생이별의 회한, 그간의 안부가 교직돼 있었다.

이번 서신교환은 앞서 13일부터 4일간 서울서 예정됐던 제5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북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무기연기된 뒤 이뤄졌다.

북한이 이미 약속됐던 인도적 사업을 무산시키지 않은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서신교환과 아울러 정부가 추진중인 이산가족의 영상물 교환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이같은 교환의 정례화, 상시화에 있다. 이산 1세대는 이제 세월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이념과 국경은 허울일지도 모른다. 남북 당국간 관계, 북ㆍ미관계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을 위한 인도적 사업은 멈출 수 없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1 21:0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