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한국을 대표한 재벌그룹 총수의 모습 …

유명인사가 세상을 뜨면 언론은 그의 사망기사를 어느 정도 취급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생전의 업적과 위상, 파장 등을 감안하겠지만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언론의 속성상 죽은 사람은 크게 취급하기를 꺼리는 편이다.

중국의 막후 실권자였던 덩샤오핑의 사망이야 중국의 권력지도가 바뀐다는 점에서 당연히 크게 다뤄야 할 사안이었지만, 1997년 8월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명에 간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대문짝만하게 취급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그래서 그 평가도 엇갈렸다. 그녀가 '만인의 연인'이었고 정부와 함께 탄 자동차가 전복했으며 파파라치들이 따라붙었다는 전후사정이 모든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너무 포퓰리즘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언론은 비교적 크게 다뤘다. 케네디가의 비운이 또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죽은 뒤에 크게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주간지의 커버스토리에 오르기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주간한국은 다이애나비에 이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커버스토리로 올렸다. 그가 우리 나라의 경제개발 역사에 남긴 족적은 그만큼 크다. 일일이 거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다. 뒷이야기도 많다.

현대그룹의 '몽'(夢)자 계열의 분가가 초읽기에 들어갔고, 북한의 김정일도 처음으로 남쪽으로 조문단을 보내왔다.

그의 경영철학을 다루는 강의를 서울대학교에서 개설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주변에서는 그의 삶이 불꽃 같았다고 했다. 분명히 그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그룹 총수이자 경영자였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까지 기거한 방에는 평소의 검소함을 보여주듯 모서리가 닳은 헌책상과 장롱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다. 20년간 신은 헌 구두도 구석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를 왜 커버스토리로 다뤘는지 보여주는 또다른 이유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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