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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벤처캐피탈] 짦은 영광 긴 고통…창투사 생존 몸부림

[위기의 벤처캐피탈] 짦은 영광 긴 고통…창투사 생존 몸부림

한국 벤처캐피털 산업의 15년 역사 중에서 지난 2년간은 한마디로 '격동기'였다. 격동의 시기는 1999년 3월부터 현재까지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벤처캐피털의 투자회수 시장인 코스닥의 부침과 맥을 같이 했다.

그 과정에서 벤처캐피털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단계를 거쳤고, 이제 아픔을 딛고 성숙을 향해 몸을 추스리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닷컴기업의 몰락과 코스닥 시장의 침체 등으로 벤처캐피털회사(창투사)의 '개점휴업' 또는 '퇴출'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 사건의 영향으로 작년 7월부터 기업들이 코스닥 신규등록시 공모가를 당초 계획보다 낮추는 바람에 투자조합 결성이 어려워지고, 투자유망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자 아예 폐업하는 벤처캐피털회사도 나타났다.

1998년 설립된 샘캐피탈이 창투사 등록증을 반납하는 등 신설 창투사중 일부가 사업을 접었다. 공식적으로는 147개의 벤처캐피털회사가 영업중이다.

돌이켜보면 코스닥이 수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벤처캐피털은 짧게는 4-5년, 길게는 10여년간 휴면상태에 있었다. 그런 벤처캐피털이 활기를 되찾은 것은 따지고 보면 IMF 환란이 오히려 기폭제가 된 측면이 있다.

국가적으로 경제난국의 돌파구를 벤처산업에서 찾았고 벤처 드라이브 정책의 핵심 방안으로 코스닥 활성화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경기부침과 함께 한 벤처캐피털

IMF 이전 벤처캐피털들의 휴면이 방안의 고요함 속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의 휴면은 병상의 불안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년 남짓 동안 코스닥이 생로병사의 역정을 겪으면서 벤처캐피털은 영예도 안았지만 상처 또한 적지 않게 입고 말았다.

벤처가 활기를 찾으면서 동시에 많은 벤처캐피털(창투사)이 생겨났다. 대충 1999년 후반기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다. 이 기간 중 많을 때는 월 10여개의 창투사가 새로 문을 열었다.

창투사들이 유례 없이 늘어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벤처캐피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 데 따른 것이다. 1999년 중반기 이후 코스닥 활성화로 수십억~수백억원의 수익을 단숨에 올린 벤처캐피털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1999년 4/4분기부터 2000년 1/4분기까지는 한국 벤처캐피털 역사에서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시기다. 벤처캐피털들이 '환등기로 투영된 미녀'에 눈이 멀어 '상사병'에 걸렸던 때다.

현재 겪는 벤처의 진통은 이 때 실체 없는 미녀를 탐닉한 데에 따른 대가라고도 볼 수 있다. '묻지마 인터넷 투자'가 극에 달했던 것이다. 당시 인터넷 전문 투자조합 하나 갖지 않은 벤처캐피털은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지 못하는 낙오자로 인식될 정도였다.

인터넷 사이트 하나를 만들면 10배, 수익모델이 되면 30배, 이익을 내면 50-100배'란 우스개 소리가 나돌 정도로 인터넷은 '묻지마 투자'의 전형을 보여줬다.

당시 이런 무분별한 행태를 본 일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같은 방향으로 몰려다니는 '기러기 편대'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며 "몇달 후면 벤처기업도 벤처캐피털도 곡소리가 날 것이다"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눈도 귀도 먼 상사병 환자에게 그 충고가 들릴 리 없었다.

사실 벤처 투자시장에선 유행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코스닥이 침체되고 벤처 거품이 빠질 때가 투자의 찬스다. 반대로 코스닥과 벤처가 부풀어오를 때는 신중한 투자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스닥 및 벤처 침체기에 과감히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은 열에 하나이고, 활황기에는 열중 아홉이 투자를 서두르며 거품을 키운다. 바로 인터넷 투자가 그랬다.

'투자 기업을 코스닥에 올렸을 때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 수도 있다'는 가정을 지난해 세종하이테크의 주가조작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처음으로 자각한 것이 국내 벤처캐피털이고 벤처기업들이다.


벤처거품에 덩달아 춤, 짧은 영광 긴 고통

국내 벤처캐피털들이 짧은 영광에 이은 긴 고통을 겪는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당기간 동안 등록 전 단계(프리코스닥)에서 대개 기업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투자한 점이다. 더구나 코스닥이 침체의 늪으로 치달아온 동안에도 미등록 벤처기업들의 호가는 낮아지지 않아 벤처캐피털로선 여전히 높은 프리미엄을 물어야 했다.

벤처기업들이 고 프리미엄에 대한 각인된 기억을 버리지 못한 점, 창투사 신설 급증 등으로 벤처자금이 수요에 비해 크게 넘쳐난 점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외에 은행 증권사 보험사 종금사 파이낸스 금고 벤처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비즈니스 주체가 벤처투자 시장에 뛰어들어 '찌르기 한판'을 벌였으니...

이런 상황에서 닷컴기업의 위기와 코스닥의 장기 침체 등으로 2000년 1/4분기까지만 해도 호황을 구가했던 벤처캐피털회사들은 하반기 들어서면서 조기 퇴락의 길로 빠져드는 듯했다.

2000년 4월까지 몇 달 사이에 무려 40여개 창투사가 새로 생겨나고 투자조합 역시 봇물을 이루었지만 인터넷 기업들의 퇴조가 가속화된 5월부터는 신규 등록이 크게 줄어들면서 '개점휴업' 또는 '퇴출'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0년 상반기 투자조합을 통한 벤처자금의 조달규모는 총 6,94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코스닥 시장의 침체 및 투자심리의 위축으로 5월부터는 민간 투자조합 결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민간 벤처캐피털 등이 단독으로 결성한 투자조합 수는 2000년 3월 17개, 4월 23개에서 5월에는 8개, 6월에는 5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5월부터 재정자금 출자를 통한 정부-민간 공동투자조합 결성으로 그나마 전체 펀드규모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 사건 영향으로 작년 7월부터는 기업들이 코스닥 신규등록 프리미엄은 커녕 공모가를 당초 계획보다 낮추는 추세여서 투자조합 결성이 더욱 어려워졌다.

투자조합 결성이 부진한 데다 벤처투자를 할 만한 유망 기업을 찾기도 쉽지 않자 창투사중 상당수가 투자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아예 폐업을 하는 창투사도 있었다.

샘캐피탈이 창투사 등록증을 반납했고, 신설 창투사중 일부가 사업을 접었다.


해외 벤처자본 본격 유입

국내 벤처캐피털이 비틀거리는 사이에 해외 벤처자본이 국내에 본격 침투해왔다.

1999년부터 외국인이 직접 출자해 설립한 창업투자회사가 잇따라 2000년 7월 현재 아이비벤처캐피털 시티코프캐피탈코리아 등 모두 8개사가 출범했다. 해외 벤처자본은 당시 전체 창투사(136개)의 6%(자본금은 651억원으로 3.5%)에 달했다.

IMF 환란을 기점으로 외국인들의 창투사 투자경향이 투자조합 출자와 같이 간접투자가 대부분이었으나, 1999년부터 창투사 설립을 통한 직접투자가 대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99년 3월 외환거래 자유화로 외국인투자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없게 되었고, 벤처창업의 활성화, 코스닥시장의 성장 등으로 투자자금 회수가 용이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위기 속에서도 상당수 주요 벤처캐피털들은 지난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코스닥 장기침체에 따른 투자회수 부진과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투자기업의 신규 코스닥 등록과 투자주식의 매각으로 고수익을 창출했던 것이다.

지난해 KTB네트워크 한국기술투자 무한기술투자 우리기술투자 LG벤처투자 한국IT벤처투자 TG벤처 한미열린기술투자 등 주요 8개 벤처캐피털들의 단기 순이익은 약 4,500억원으로 99년의 2,100억원에 비해 무려 111%나 급증했다. 투자기업 중 99년과 2000년 사이에 코스닥에 등록한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이익을 실현했던 것.

창투사들이 벤처기업의 자금젖줄로서 벤처육성의 든든한 후원자라기 보다 투자기업을 코스닥에 올려 주가가 떴다하면 팔아치워 시장을 교란시키고 '개미'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안기는 돈놀이꾼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것은 이 때 너무 챙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벤처후원자로서의 시장신뢰 회복이 급선무

2001년 들어 벤처캐피털회사들은 서서히 투자를 재개하고 있다. 수천억원대의 재정자금이 투자조합에 들어와 있어 기한내 투자자금을 소진해야 하는 업체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올 한해동안 전체 창투사들은 지난해(1조 6,970억원)와 비슷한 수준인 1조6,302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요 업체별로는 한국기술투자 900억원, LG벤처투자 450억원, 우리기술투자 385억원, 현대기술투자 300억원, 스틱아이티 650억원, 무한기술투자 1,182억원 등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국 벤처캐피털 및 벤처산업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의 벤처육성 의지는 변함이 없다. 벤처산업이 21세기 한국의 주요한 성장엔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 벤처캐피털의 당면 과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투기꾼이 아니라 건전한 벤처 후원자란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정현준 사건, 리타워텍 사건 등에 벤처캐피털이 개입하는 것과 같은 모럴헤저드가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 그래야 벤처캐피털이 가장 유망한 첨단 특수금융 산업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병환 머니투데이 벤처팀장- moon@moneytoday.co.kr

입력시간 2001/03/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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