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펀드 바람 "영화가 뜨면 돈 번다"

3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친구'의 시사회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영화 홍보사 직원이 흥분된 목소리로 "좋은 뉴스가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심마니와 증권정보 전문 사이트 팍스넷의 합작사인 엔터펀드가 모집중인 '친구'의 네티즌 펀드가 단 1분 만에 공모금액 1억원을 채워 마감되었다는 것.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사이트가 다운되고 소액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인당 한도를 500만원으로 제한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친구'는 전자 상거래 업체 인터파크가 설립한 '구스닥'이 지난 2월 차태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로 6시간 40분 만에 1억원을 모금했던 네티즌 펀드의 최고 기록을 불과 한달여 만에 엄청나게 단축했다.

'엽기적인 그녀' 이전에는 최민수 주연의 재난 영화 '리베라 메'가 711명의 투자자로부터 이틀 만에 1억원을 모은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네티즌 펀드의 마감기간은 최근 영화계에서 강력하게 일고 있는 네티즌 펀드 바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계의 네티즌 펀드 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표는 펀드 공모 영화의 수.현재 펀드 공모를 하는 업체는 모두 6곳.

가장 먼저 시작한 인츠닷컴(film.intz.com)을 비롯, 엔터펀드(enterfund.simmani.com), 엔터스닥(www.entersdaq.com), 구스닥(www.goodsdaq.co.kr), 한스글로벌(www.hansboom.com), 문화거래소(www.gfan.net) 등이다.

이들 업체가 현재까지 펀드 공모를 이미 마감했거나 올 상반기 중으로 펀드 공모를 계획 중인 영화는 1999년과 2000년을 합한 것보다 많다.

이중 '무사' '휴머니스트' '인디안 썸머' '파이란' '친구' 등은 미개봉 작이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엽기적인 그녀' '게이머' 등은 현재 제작이 한창이다.


억대 공모 다수, 제작비 전액 공모작품도

네티즌 펀드 바람을 타고 공모액의 규모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까지는 대부부의 펀드가 1억원 이하.

'동감'(4,300만원)이나 '눈물'(4,000만원)처럼 5,000만원 이하의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파이란'의 2억원을 시작으로 '천사몽' 은 3억3,000만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각각 4억원을 내걸었다. 현재 문화거래소가 공모중인 '게이머'의 최종 목표액은 6억원에 달한다.

이밖에 엔터펀드는 올해 안으로 1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제작비의 절반을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엔터스닥은 아예 올 상반기 중으로 20억원의 제작비를 전액 공모하는 작품을 제작할 계획이다.

네티즌 펀드가 이처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적은 돈을 투자하고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대박의 꿈'이 사람들을 인터넷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제까지 개봉된 몇 편의 네티즌 펀드 영화는 킬리만자로(- 54%)와 단적비연수(약 1%, 정산 중)를 제외하면 모두 10%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30% 이상의 고수익률을 올린 영화도 5편이나 된다. 연 6%의 저금리 시대, 주식시장의 불안까지 계속되는 상황에서 30% 이상의 수익률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의 번쩍 뜨일만한 좋은 재테크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네티즌 펀드가 처음부터 고수익을 목적으로 한 재테크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화계에 네티즌 펀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11월. 인츠닷컴은 '반칙왕' 개봉을 앞두고 네티즌들에게 투자 공고를 띄웠다.

인츠닷컴 김정영 필름사업팀장은 "영화 홍보에 있어 날로 그 힘을 더해가는 온 라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툴을 고민하다 네티즌 펀드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프 라인 관객들의 입소문도 그렇지만 네티즌 관객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영화의 흥행에 무시 못할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인츠닷컴측은 만일 누군가 어떤 영화에 다만 1~3만원이라도 자기 돈을 투자했다면 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자진해서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의 글을 올릴 것이고 판단했다.

그런 글들은 영화사 관계자나 게시판 운영자가 올린 글보다 다른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데 훨씬 효과적일 터였다. 말하자면 일종의 영화 소액주주 운동인 셈이었다.


돈도 벌고 재미도 있고…가요계로도 번져

판단은 적중했다. 네티즌 펀드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재미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는 모두 464명의 네티즌들이 1억원을 투자했다.

인츠닷컴측이 밝히는 바로는 그 중 상당수가 김지운 감독의 열성 팬이었다. 연령대로는 영화와 인터넷에 가장 열심인 20~30대가 주축이었고 직업별로는 대학생이 가장 많았다. 15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반칙왕'은 그 해 흥행 성적 2위를 거두며 97%의 수익률을 올렸고 네티즌 펀드에 대한 관심은 한 순간에 높아졌다.

네티즌 펀드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네티즌 펀드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인츠닷컴이 순수한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도입했던 네티즌 펀드는 뒤이어 등장한 다른 펀드 업체들에 의해 자사 사이트 홍보와 수수료 등을 보장하는 새로운 수익 사업 모델로 벤치마킹되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 불을 지른 계기가 되었다. 인츠닷컴이 모집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만들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 당연히 투자자들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인츠닷컴 김 팀장은 "반칙왕 때와는 달리 몹시 초조한 목소리의 50대 아저씨나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은 영화에는 관심 없고 인터넷도 별로 하지 않는, 돈만 보고 투자하려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모두 35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 1억원을 모았다. 그리고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되면서 무려 약 150%(현재 정산중)의 고수익률을 기록했다.

100만원을 투자한 경우 150만원을 번 셈. 뒤이어 엔터펀드가 485명으로부터 1억원을 모집한 '자카르타' 역시 약 50% (정산중)의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그 이후 웬만한 네티즌 펀드 영화에는 10만원 미만의 소액 투자자들은 물론 200만원 이상의 고액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1,000만원 이상의 거금을 투자하려는 '큰손'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게 펀드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네티즌 펀드가 실질적인 고수익을 올리기 위한 '머니 게임'화 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1만원 짜리 투자자 1,000명이 1,000만원 짜리 투자자 1명 보다 훨씬 낫다"는 네티즌 펀드 도입 취지가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또 영화에서 시작된 네티즌 펀드 바람은 최근 들어 가요계로도 번지고 있다. 한스글로벌은 지난해 11월 가요계에서는 처음으로 김경호의 콘서트 펀드를 조성, 1주일 만에 2억3,000원을 모금했으며 총 투자금액의 10.4%의 수익률을 거둬 네티즌 투자자들에게 5.2%의 수익을 나눠주었다.

또 2월 26일에는 포털 사이트 심마니가 가수 조관우의 6집 음반 '연'으로 펀드를 모집, 6분만에 공모 금액 5,000만원을 채웠다. 일인당 1만~5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조관우의 음반펀드의 손익분기점은 음반판매량 30만장.

그러나 음반 판매가 저조해 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최초의 '원금보장형' 네티즌 펀드인 셈.

한편 한스 글로벌은 올 상반기 중으로 조성모 임창정 엄정화 코요태 핑클 등이 참여하는, 사랑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음반 3장에 네티즌 펀드를 모금했다. 총제작비 15억원 중 4억원 정도를 펀딩해 현재 정산 중이다.

한스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이재원 책임심사역은 "손익분기점은 36만장 정도로 보고 있으며 최소한 58만장 이상, 수익률 26%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며 "영화와 마찬가지로 공연과 음반 쪽도 계속해서 펀드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에 앞서 감독역량 등 충분한 검토 필요

이러한 네티즌 펀드의 바람에 대해서는 이상 과열이라는 비판적인 시각과 영화계의 투자관행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작이 공존한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판은 전문 투자자들에게도 결코 녹록치 않은 곳이다.

하물며 일반 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오프 라인에서 투자 유치에 실패한, 흥행성 없는 작품들이 온 라인으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한다.

일반 투자자들이 영화를 보는 눈이나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무턱대고 돈을 투자했다 경제적 손실을 입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이럴 경우, 네티즌 펀드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부에서는 네티즌 펀드의 순기능을 강조한다. 전문 투자자들만이 아닌 일반관객의 눈과 감각이 흥행 판단과 투자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즉 영화계의 관행에 익숙한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해온 새로운 관습의 영화들도 실제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부터 기회를 부여 받을 수도 있다는 긍정론이다.

특히 기존 영화 관습에서 벗어난 독립영화로서는 네티즌 펀드가 일반 극장 상영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충무로-대자본- 금융자본 순으로 변화해온 한국영화의 자본의 흐름에 네티즌 펀드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네티즌 펀드는 그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영화와 가요쪽 제작비의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네티즌 펀드가 영화와 무관한 또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영화 자본의 새로운 대안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영화투자가 성공하려면 영화의 작품성과 흥행성이 열쇠.

그러므로 믿을만한 투자사와 제작사의 보다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메이저 영화사들은 네티즌 펀드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자체 자본력이 충분한데다 자칫 영화가 실패했을 경우의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개인별 투자액의 상한선을 둔다든지, 몇 개의 영화를 묶어 패키지 식으로 펀드를 모금, 리스크를 줄인다든지 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생각해볼 만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에 앞서 감독의 역량, 제작사와 투자사의 능력, 배급망 확보 등 영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추는 일이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8 20:39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