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대종상이 가야할 길

해마다 3월이면 할리우드는 즐겁다. 그들이 마련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세계가 들뜬다. 아카데미는 칸이나 베를린영화제와 다르다. 미국의 국내 영화제일 뿐이다. 그런데도 관심과 영향력이 큰 것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힘이다.

미국에 아카데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대종상이 있다. 역사도 만만찮다. 아카데미가 73년의 역사라면 대종상은 1958년에 시작했으니 53년이나 된다.

둘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우습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아카데미는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고, 대종상은 할리우드 공세에 맞서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의 30% 이상 지키는 자랑스런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공정한 영화인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미국이나 우리나 다른 영화제도, 상도 있다. 상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 두 시상식은 영화인 스스로 한해를 결산한다는 의미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질 못해왔다. 심사에 잡음이 그칠 날이 없었고 돈이 없어 여기저기에 손을 내밀다보니 떳떳하지도 못했다. 1998년에는 열지조차 못하는 비운을 맞았고 지난 2년 동안은 그마나 갈갈이 찢어진 영화인들로 '그들만의 행사'가 됐다.

모처럼 공정성을 되찾으려고 하니까 젊은 영화인들이 따로놀아 반쪽 잔치가 됐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한국영화축제'를 만들었다. 그래 봤자 기업체에 돈 받고, 비디오로까지 나온 한국 영화 다시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당연히 여론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부터 함께 치르는 대종상이라는 선택을 했다. 기존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그야말로 범영화인의 잔치. 그들이 밝힌 올해(제37회) 대종상(4월21~24일)은 이렇다.

먼저 한국 영화 진흥을 직접 지원하는 영화제. 이는 상금을 말한다. 둘째 관객이 영화제에 참여하여 직접 호흡하는 영화제.

이는 단순한 시상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의 '한국영화축제' 를 결합시켰다. 영화도 보여주고, 한달전부터 인터넷 의견을 반영해 후보작을 선정하고, 인기상도 뽑겠다는 것이다.

또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자리도 만들고, 토론회도 열어 의미있는 잔치로 발전시키려 한다. 청각장애인, 외국인을 위한 자막영화 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분명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는 시도다. 그러나 대종상이 전통과 권위를 쌓고 영화인의, 나아가 국민의 축제가 되려면 무엇보다 집단이기주의와 편견을 버리고 수상작 선정에 공정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극영화 제작지원을 둘러싼 잡음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

또 비충무로 영화인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심형래가 이런 말을 했다.

"할리우드 기술자를 데려와 특수효과 몇 장면 만들어도 기술상 주면서 왜 나는 한번도 후보에도 못들어가느냐"고. 몇 걸음 양보해 생각해도 그가 우리 기술로 이룩한 몇가지 테크놀로지는 완성도를 떠나 충무로가 인정해야 한다.

이런 편견과 불공정성을 막기 위해 올해 대종상은 예심을 없앴다. 대신 인터넷을 통한 관객의 인기투표를 심사에 참고하겠다는 것이다. 본선 심사위원도 종전보다 거의 2배(15명)로 늘려 전문성, 객관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후보작에서 탈락한 영화인의 대종상 외면을 막고, 또 1년에 60편도 안되는 한국 영화의 제작현실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결국은 공정성과 영화인 모두의 잔치를 위해 대종상은 한달 전부터 후보작을 선정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것과 정반대 방법을 선택했다.

중요한 것은 영화인 스스로 대종상의 권위와 전통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마음이다. 그것은 두 집단이 타협하고, 심사위원을 두배로 늘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영화에 박수를 아끼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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