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김정일과 파월

남과 북. 이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관계속에 떠오는 첫 화두는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이다.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은 변했는가'이기도 하다.

북한은 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변했다. 1998년 11월 29일 워싱턴 타임스는 한반도에서 전재이 났을 때 한·미 연합군의 5단계 북한국 괴멸작전인 '5027 작전 계획'을 보도했다.

이에 대한 12월2일의 조선인민군 총참보무 대변인의 성명은 섬뜩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우리식 잔전계획이 있다. '외과 수술식' 타격이요, '선제타격'이요 하는 것들은 결코 미국만의 선택권이 아니다. 우리 인민군대이 타격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타격을 피할 자리는 이 행성위에는 없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미제가 '대화'와 '협상'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정세를 전쟁 접경으로 끌어가고 있는 오늘의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우리 혁명무력은 미제 침략군의 도전을 추호도 용서치 않고 섬멸적인 타격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것을 주체조선이 존엄을 걸고 엄숙히 선언한다."

북한은 그해 8월의 광명성 1호 발사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었음을 과시하며 광명 2호를 발사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또 미국 본토도 그들의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음을 공식 설명한 것이다.

그 때에 비하면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이 김위원장을 '의심가는 지도자'로 표현한 후, 나온 북한의 언론 비난의 논조는 변했다. 3월 24일자 노동신문 '힘에 의한 대조선 망상'이란 논평은 앞서의 성명과 비교하면 태풍과 봄바람의 차이가 난다.

이 논평은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을 "미·일이 한반도 정세를 긴장과 격화로 몰아가는 공모 결탁"으로 보고 있다.

"힘의 전략으로 세계 제패를 추구하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틀어쥐는 것을 당면과제로 제기하고… 아태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겠다고 주장하며 남한과 그 주변에 미군을 영구히 못박아 두려는 것은 반북암살 전략실현의 주요수단으로 삼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거덜이난 3자공조체제를 되살려 힘으로 북에 대한 목조르기를 실현해 보려는 위험한 모략책동이다"는 해설형 논평이었다.

더욱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족에게 보낸 김 위원장의 조전은 그의 변화를 실증시켜준다. 1994년 1월 문익환 목사가 사망했을 때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조의문을 보냈다.

문 목사를 "남조선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온 명망있는 통일애국 인사"라고 애도했다.

김 위원장은 남측인사에 대해 처음으로 보낸 조전에서 정 전 명예회장을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 대단결과 통일 애국 사업에 기여한 선생"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인사'와 '선생'이라는 호칭의 차이는 조전을 보내는 이가 얼마나 나이가 연상인가 연하인가에 따라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문 목사에 주어진 '자주화', '민주화', '평화 통일'이라는 활동업적에 대한 평가와 정 전 명예회장에 대한 '화해와 협력', '민족 대단결', '통일애국사업'이란 치하의 표현에는 그 차이가 뚜렷하다.

1994년의 민주화, 자주화란 투쟁성, 선동성 용어가 2001년 들어서는 화해와 협력, 민족 대단결이란 비냉전성, 실용성 언어로 변화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통일과 민족을 보는데 차이가 있고 그동안 변화가 있은 셈이다.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느껴서일까? 김 위원장을 '전제적 통치자' '독재자'로, 그의 나라를 '깡패국가' '적대국가'로 표현했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최근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3월24일 전미 신문 협회 회원인 발행인과 편집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과 김 위원장에 대해 여지껏 언급한 발언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세상에 북한 같은 정치체제가 어디 있는가. 모든 권력, 권위, 결정, 착상들이 한 사람의 마음과 인격에 좌우되는 곳이다. 그 사람은 바로 김정일이다. 그는 미사일을 팔아오고 있고 대량학살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내지 1년 반동안 그는 여지껏 어떤 북한 지도자도 보여주지 않았던 개방성을 보여줬다. 부시 정부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을 검증하고, 우리가 왜 의구심와 경계심을 갖고 있는지 이해시킬 것이다. 그도 북한이 제안한 것들중 우리가 채택하기에는 검증과 조사가 필요한 것이 있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 발언에서 김 위원장이 부시 정부에 대한 변화를 던져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명백하게 말하고, 정확하게 제안을 설명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3/30 14:5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