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어디로?] MH맨, 누가 뜨고 누가 지나?

김윤규 사장 등 가신 퇴신, 상선·전자 인맥으로 재구성

든자리는 몰라도 나간 자리는 크다고 했던가. 추락하는 현대건설호에서 떠밀린 정몽헌 회장의 주변은 쓸쓸하기만 하다. 그동안 정몽헌 회장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위상이 크게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현대건설, 현대증권 등을 비롯해 그룹운영을 도맡아 왔던 주역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운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전 현대건설 부사장 등 '3인방'이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이들은 고 정 명예회장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익치 전 회장은 이미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상태고 김재수 전 부사장 역시 얼마전 물러나면서 김윤규 사장만이 남은 상태다.

그나마 현대건설에 대한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대주주 지분에 대한 완전감자가 이뤄지면 정몽헌 회장과 함께 김 사장의 퇴진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김 사장의 경우 그동안 대북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현대아산 사장직은 유지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정몽헌 회장이 건설경영에서 손을 떼더라도 대북사업만큼은 계속 유지할 뜻이 있는 만큼 그가 '얼굴마담'을 맡고 김 사장이 실무를 담당하는 형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가신 3인방이 현대 망쳤다" 비난

김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발탁되기 전만해도 해외플랜트 본부장으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89년 정 명예회장의 첫 방북당시 수행원으로 참석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그만큼 대북사업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재수 전 부사장 역시 현대건설 부사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현대그룹 PR사업본부장이라는 직함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그러나 김윤규, 김재수 두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현대그룹에 남더라도 그룹내 다른 임원들과의 융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가까운 예로 3월 25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영결식장에서 만난 현대그룹 임원들은 "오늘날 현대그룹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됐냐"며 "모두 이익치, 김윤규, 김재수 등 3인방이 현대를 망쳤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영업보다는 고 정 명예회장의 비서출신이라는 '후광'으로 그룹경영을 좌지우지 한데다, 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을 나락으로 추락시킨 데 따른 불만이 팽배한 것이다. 이들이 '자리'를 유지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몽헌 회장이 현대건설 경영에서 손을 뗀 후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대상선, 현대종합상사, 현대택배, 현대엘리베이터 출신의 전·현직 임원들이 그룹경영을 도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 중 가장 덩치가 크고 정몽헌 회장이 회장직까지 올라 직접 경영을 맡았던 현대상선의 전현직 경영진을 중심으로 한 경영인맥이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정몽헌 회장의 장인인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최근 정몽헌 회장의 장모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일정부분 인수한 것은 가장 확실한 지원사격이었다.

현대엘리베리터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현영원 전 회장이 직접 정몽헌 회장을 불러 경영에 대한 조언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향후 대북사업 진행하며 인맥 드러날 듯

먼저 현대상선 쪽 인맥을 살펴보면 김충식 현대상선 전 회장은 재무와 회계 등 '돈'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로 향후 정몽헌 회장의 재무담당 브레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또 장동국 전 부회장 역시 상선경영의 주역으로 평소 정몽헌 회장과 가까이 지내왔다는 점에서 현대그룹 경영 전면에 부상할 공산이 크다. 현대아산 김고중 부사장도 상사출신으로 북경지사장까지 지낸 인물로 향후 대북사업을 진행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몽헌 회장이 키우다시피 한 현대전자쪽 인물들도 눈여겨볼만하다. 현대전자 사장출신으로 고려산업개발 사장 등을 지낸 김주용 씨가 대표적인 인물.

현재 뚜렷한 보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언제든 정몽헌 회장이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또 강명구 부사장은 대표적인 그의 측근으로 현대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가까이 불러 쓸만한 인물이다.

박종섭 현대전자 사장은 한때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 현대전자 사장까지 올랐지만 현재는 현대전자 정상화에만 주력하고 있다.

특히 올 초 신년하례에 이례적으로 박 사장이 불참한 것이 알려지면서 정몽헌 회장과의 갈등설까지 나돌았다.

최근 들어 이명박 전 현대건설회장, 이내흔 전 현대건설 사장 등이 사실상 공기업이 될 현대건설의 사장 후보군에 거론되기는 하지만 이미 현대건설이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 이들이 현역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대북사업, 주도권 잃을 수도

현대의 대북사업 분위기는 3월 24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빈소에 조문단을 보내면서 '흐림'에서 '맑음'으로 변했다.

다만 현대그룹의 위기로 사업주도권을 행사할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고 대신 정부가 적극 개입하면서 현대로서는 전체적인 대북사업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전환점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대북사업은 3월초 현대아산이 북한에 지급하기로 한 1,200만 달러의 금강산관광사업의 월간 사용료를 절반만 지급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조문단 파견이 현대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신뢰가 여전함을 보여주면서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한 주도권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이 증명됐다.

최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은 "금강산 사업료 지불협상이 해결국면에 접어들었고, 금강산 육로관광 계획 역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대북사업에 장미빛 희망을 던졌다.

김 사장의 이러한 발표는 현대건설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신의 퇴진이 유력시되자 이를 대북사업이라는 카드로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일단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사업 전담기업인 현대아산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고 모기업인 현대그룹의 위기로 더 이상 현대아산 단독으로 대북사업을 진행시키기는 어렵게 됐다.

특히 최근 현대건설에 대한 정부·채권단의 출자전환 결정이 내려지면서 현대건설이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아산도 사실상 공기업화 될 전망이다.

즉 대북사업 주도권이 현대에서 정부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에게 던져진 숙제는 달라진 대북사업 구도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느냐가 될 전망이다.

즉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향발전 차원에서 대북사업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현대가 가진 최대의 카드인 대북사업을 어떻게 활용해서 이를 현대그룹의 회생전략으로 연결시키느냐에 정몽헌 회장과 현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홍길용 내외경제 산업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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