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생존전략] 눈물의 외침 "회사 팝니다"

기업 매물, 마지막 탈출구 M&A

인터넷 벤처 기업의 사장인 박모(41)씨는 요즘처럼 자신이 부끄러울 수가 없다. 1년여 전만 해도 어엿한 벤처기업 CEO였던 박 사장은 지난달부터 회사를 팔기 위해 M&A(기업 인수합병) 부티크를 찾아다니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반짝이는 아이템 하나만 믿고 창업했는데, 투자자를 찾지 못해 한번 제대로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회사를 접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박 사장은 하루 2~3개 부티크를 찾아가 보지만 담당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워낙 나온 기업 매물이 많아 웬만한 회사는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지난달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직원들에게 월급 대신 용돈조로 일부를 나눠 주었다.

하루 빨리 회사를 넘겨 밀린 사원들 월급이라도 청산했으면 하는 게 박 사장의 바람이다. 최근 M&A를 중개하는 부티크에는 헐 값으로 나온 기업 매물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대부분 자본이 잠식된 닷컴 기업들로, 일부는 직원도 없는 서류상으로만 남아 있는 페이퍼 컴퍼니도 있다. 벤처 열풍에 편승해 마구잡이식으로 창업해 놓고 불황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문을 닫은 일명 '무늬만 벤처'들이 가는 마지막 폐차장인 셈이다.

이들 벤처 기업 중에는 합병을 통해 최소한 파산만은 막아 보자는 '절박형'에서, M&A나 A&D(기업 인수후 개발)를 통해 마지막 머니 게임을 벌여 보자는 '한탕주의형'까지 다양하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모 벤처기업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회사 운영 자금이 바닥난 데다 지난해 영업 손실까지 생겨 추가 펀딩과 코스닥 진출이 힘들게 되자 이른바 '뒷문 상장'이라는 백도어 리스팅(Backdoorlisting) 편법에 눈을 돌렸다.

이 회사는 이미 코스닥에 등록된 한 굴뚝 산업 기업과 주식 스와핑(맞교환)을 통한 M&A를 해 코스닥에 우회 등록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기왕 쓰러질 바에야 주식이라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자는 생각이다.

이 합병은 양사의 기업 가치에 대한 차이로 무산됐고, 결국 쇼핑몰은 문을 닫았다. 머니게임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벤처들이 그 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M&A 부티크의 한 관계자는 "요즘 벤처 기업은 물론이고 증시 침체로 투자자금 회수가 막힌 창투사나 투자자문회사들도 급매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지만 이런 매물은 10건중 한 두건도 성사되기가 힘들고 설사 구매자가 나선다 하더라도 제값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귀띔했다.

물론 부티크에 매물로 나와 있는 벤처기업 중에는 확실한 아이템이나 전문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황기에 뒤늦게 창업하는 바람에 투자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헐값에 경영권을 넘기려는 곳도 있다.

이런 유망 벤처들은 1~2년만 버티면 충분한 수익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데도 거품 벤처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여서 안타깝다.

한 때 동네 목욕탕에도 벤처 지원 자금을 지원됐던 적이 있었다. 불과 1년여전의 일이다. 이런 정부의 안일한 기업 지원 자금 운영ㆍ관리가 위기의 시대에 서 있는 진짜 벤처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4/04 20:05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