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 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공포(phobias)에 시달리는 수백, 수천만명에게 과학은 이제 새로운 치료법으로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작가인 돈나(45)씨는 전기공포증(electropobia)을 갖고 있다.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 만지지 못하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정전기도 그녀의 적.

고무로 된 절연제 슬리퍼를 신어야 안심하고 냉장고 문을 열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옷가게에도 들르지 않는다.

전구가 나가면 누군가 갈아 끼워줄 때까지 어두움과 답답함과 싸울지언정 직접 전기를 만지지 않는다. 그녀는 전기가 자신을 감전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싸여있다.

현대인들은 많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공포증세를 표현한 단어를 온라인으로 취합해 보니 500여가지가 넘고,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구름 공포증이나 익살 공포증과 같이 공포(phobia)란 단어로 합성 신조어를 만든 다음,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을 찾아낸 것도 없지 않지만 고소공포증(acrophobia), 밀폐공포증(claustrophobia), 불안공포증(agoraphobia) 등은 심각하게 다뤄야 할 증세다.


미국인 5,000만명 이상이 공포증세 느껴

미국에서는 한가지 이상의 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5,000만명으로 추정되고,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보스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베스는 피공포증(hemophobia)에 시달리고 있다. '잘라버려'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고 식은 땀을 흘릴 정도다.

그 단어가 가져오는 결과, 즉 피가 흐른다는 연상이 그의 잠재의식속에 숨어있는 공포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뉴저지에 사는 진의 증세는 풍선공포증. 그는 생일 파티장을 장식한 오색 풍선 밑으로도 절대 지나다니지 않는다. 비즈니스맨중에는 비행기를 겁내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곁에 두고도 계단을 고집하는 이도 있다.

다행히 과학자들은 인체내에서 왜 그런 반응이 나타나는지, 뇌속의 어떤 신경화학물질과 연관이 있는지를 연구해 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6시간 공개 치료법이라든가, 가상프로그램 등 치료법이 현실화했고, 미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지난해 사회공포증 (social phobias)를 치료하는 약품으로 팩실(Paxil)이란 마약 사용도 허가했다.

최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데이비드 발로우 보스턴대학 불안 및 장애치료 센터 소장은 "최근 몇 년동안 공포장애를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안들이 개발됐다"고 밝혔다.

사람에 따라서는 스스로 공포증세라고 자가진단하지만 꼭 그렇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컨데 컴퓨터 공포(computer phobics)는 컴퓨터를 볼 때마다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싶지만 그것만으로 장애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또 밀폐공포증(claustrophobia)중에서도 비행기를 탈 때 좌석 중간에 앉으면 불편해 하는 것을 굳이 장애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단순히 불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불쾌함과 공포 증세의 차이는 신체적 변화여부에 달렸다. 땀이 나고 가슴이 뛰고 숨쉬기가 거북한, 그런 변화가 나타나야 장애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공포증을 크게 사회공포증(social phobias)와 공황장애(panic disorders) , 특수공포증(specific phobia)으로 구분한다.

이 공포증은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벌레나 동물에 대한 공포, 높이나 어둠 등 자연환경에 대한 공포, 피나 상처에 대한 공포, 위험한 상황에 대한 공포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리학자 미셸 크레스케는 "우리는 인간이란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면서 "세월이 가면서 새로운 두려움이 나타났으나 대부분은 4가지 그룹에 속한다"고 말한다.


공포장애, 환경적 요인이 주원인

유전학자들은 선조로부터 내려온 공포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강하다. 어릴 때 집에 화재가 났거나, 개에 물린 아이는 그것이 유전적인 뇌신경물질보다 월등히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공포증세로 이어진다. 학생들이 느끼는 시험공포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더 공포를 느낀다. 주로 어릴 때 끔찍한 경험을 했다면 자라면서 공포심을 키워가게 되고, '주변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리처드 하임베르그 템플대학 성인공포 퇴치연구센터 연구원은 50대 한 환자를 만났다. 그는 평소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야겠다고 말을 자주 하지만 막상 만나는 여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데이트를 못한다.

일단 치료를 해 여자를 만나게 했다. 다음날 그에게 좋은 시간을 보냈느냐고 물었더니 '예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애프터를 신청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녀가 나에게 베푸는 호의는 어제 단 한번뿐"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수준이라면 단순한 자신감 결여가 아니라 사회공포 증세다.

사회적으로 부딪칠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생각만으로 이미 떨리고, 땀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 그런 환경을 피하려는 심리상태에 빠지고, 사회공포는 더욱 심해지고 자기 방안에만 틀어박히고, 급격히 고립상태에 빠지게 된다.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도 발전한다. 치료는 조금씩 그런 환경에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공황장애는 날씨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토네이도(tornado, 돌풍)와 같다. 주변에 뱀이 없는데도 갑자기 어디선가 뱀이 나타나 자신을 물려고 한다는 공포에 빠지거나 갑자기 죽음이 닥쳐온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특수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엔 공포를 자극하는 대상(뱀공포증라면 뱀이나 뱀을 연상시키는 환경, 사회공포증이라면 사람과의 만남이나 환경 등)이 있지만 공황장애에는 그런 감정을 자극하는 대상이 없다. 그냥 막연하다.

그러나 때때로 공포에 빠진다. 이런 환자는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사회가 복잡해질 수로고 늘어나는 추세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슈퍼마켓쪽으로 가지 않으려 하고, 슬금슬금 피하다가 어느날인가부터 자신에게 안전한 공간을 자꾸 줄이게 된다. 집안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공황장애는 집마저도 너무 넓은 것 같은, 그래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공간 공포로 발전하게 된다.

공포는 다른 감정장애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고, 유사한 상황으로부터 일단 피하고 보려는 심리적 상태를 만들고, 또 그렇게 반응한다.

그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힘의 문제다. 여자가 남자보다 공포증세에 더 많이 시달리는 것도 다가올 환경에 당당하게 준비를 하고, 정면으로 대처하려는 심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과학의 발전에 따라 더욱 많은 공포가 만들어질 것이다. 반대로 과학은 또 그런 문제를 푸는 해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4/0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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