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55)] 인터파크 이기형 사장(下)

이기형 사장이 데이콤 동료들과 함께 월드와이드웹(www) 국제회의를 다녀온 뒤 인터넷 비즈니스의 방향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은 전문 엔지니어의 활동무대.

그래서 토론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앞으로 어떤 식으로 끌어갈 것인가에 맞춰졌다.

이 사장은 "완전히 두편으로 갈라졌다"고 기억했다. "미리 초고속망을 깐 뒤에 홈쇼핑과 홈뱅킹 같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주장과 인터넷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편이 맞섰어요.

모두 장단점이 있었는데, 저는 초고속망을 까는 것과 같은 인위적인 시장구축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반대했어요."

인터넷 비즈니스에 열의를 보인 그가 데이콤의 인터넷 사업관련 팀장을 맡았다. 뭔가 해야 한다는 욕심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대를 허송세월한 것을 만회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인터넷이란 새로운 분야에 끌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민끝에 내린 결론, '인터넷 쇼핑'

일단 마음을 먹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밀어붙이는 게 이 사장의 스타일이었다. 그 기질은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에서 배운 것인데, 벤처스타답지 않게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을 만큼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점심은 못먹어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자식의 가능성에 투자한 건데, 요즘말로 하면 그게 벤처형 투자지요. 우리 어머니는 오래 전에 벤처마인드를 갖고 있었나봐요."

인터넷 팀장으로서 그는 앞으로의 비즈니스에 숙고를 거듭했다. 특히 PC통신에서 이뤄져는 쇼핑, 포탈, 커뮤니티 등 여러 분야 가운데 어떤게 돈벌이가 될까 고민했다. 그의 결론은 쇼핑이었다

당시 데이콤은 천리안의 총매출 1,000억원중 통신판매로 연간 20억-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인터넷상으로 홈쇼핑을 운영하면 1년내에 그만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다음 단계는 계획의 현실화. 그는 1995년 초 데이콤의 사내 벤처 아이디어로 인터넷쇼핑 사업계획서를 냈다. 사업계획에 대한 갑론을박이 임원회의에까지 이어졌다. 드디어 그해 11월 사이버마켓 운영팀이 인터파크로 확대개편됐다.

데이콤의 소사장 제도에 따른 벤처기업의 출범이었다. 소사장은 당연히 그의 몫. 6개월후인 1996년 6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막상 출범은 했으나 인프라 문제로 인터넷 쇼핑사업에 진척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IMF 위기마저 닥쳤다. 데이콤내에서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인터넷 전자상거래 분야를 접으려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경영진측에 목숨 걸고 하겠으니 분사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시골집을 담보로 맡기고, 데이콤 지분은 50%로 줄였지요. 직원 월급을 줄 때야 비로소 독립했다는 게 실감나더군요. 자식이 부모님 재산을 말아먹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 그 때 심정은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 사장은 데이콤인터파크(주)로 분사한 뒤 자금조달을 위해 투신 창투사 등 무려 50군데나 찾아갔다.

그러나 투자를 할 듯 할 듯하면서도 끝내 꼬리를 사리는 게 금융권의 생리인지, 계속 사람속만 태웠다. 그 와중에도 필요한 직원은 하나둘 떠나갔다.

"그때 무슨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IMF가 2-3년 계속되고, 그러다 보면 공황이 올텐데, 무슨 사업을 하는 게 좋을까 궁리하기도 했어요."


자금난 뒤 한국식 소비문화에 부딪혀

암흑속의 1998년은 더디게 지나갔다. 그리고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99년 2월 대한투자신탁에서 액면가의 3배에 가까운 1만 3,000원에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살았다! 그의 얼굴은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다.

자금난을 넘기고 보니 이번엔 한국식 소비문화가 또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는 공짜를 찾아다녀요. 일본만 해도 공짜라면 무서워하는데, 우린 안그래요. 공짜로 제공되는 메일이나 커뮤니티 분야는 쑥쑥 크는데, 돈을 내는 e비즈니스는 사람이 몰리지 않아요. 100원짜리를 사도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안믿는 게 우리 아닙니까. 다행히 대기업들이 전자상거래에 진출하면서 소비자의 생각을 바꿔놓았어요."

대기업의 진출은 그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거대자본의 진출은 어렵게 닦아가던 그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다른 한편으론 소비자의 신뢰를 높여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그의 오기에 더욱 불을 당겼다.

인터파크는 우리의 유통문화에 뿌리를 내린지 2년여만에 월간 손익분기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이 바로 운명의 달. 지난해 246억원의 매출을 올린 인터파크는 자신에 차있다.

회원 중심의 구매 유도, 구매고객층을 세분화하는 타깃마케팅으로 매출을 900억원으로 올리고,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다. 또 패션브랜드 몰을 시작으로 분야별 톱브랜드 매장, DVD 전문몰, 영상가전 중심의 홈시어터몰 등을 강화해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제시하겠다"

이 사장의 경영이념은 '전자상거래 맑은 세상'이다. 전자상거래는 모든 거래를 투명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세상을 맑게 해준다는 뜻이다.

그의 강점은 어떤 문제든 재빨리 핵심에 접근하는 능력이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핵심에 파고들어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다. "핵심만 봅니다. 핵심을 제외한 다른 것은 전부 부수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악수를 두는 일은 적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다 핵심만 보다가 실수한 경우도 있다. 1999년 말의 주식매각이 대표적. 데이콤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데이콤과 자회사 관계를 끊었다)하고, 동아TV를 매수하려는데 자금이 모자랐다.

그래서 자신의 지분을 시장에 내다팔아서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는데, 대주주의 부도덕한 행위로 여론의 집중타를 맞았다. 시장경제의 룰이라는 핵심만 보다가 시장의 도덕적 측면과 투자자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게 실책이었다.

그는 앞으로 상거래와 컨텐츠, 커뮤니티가 결합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닷컴기업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게 7년전 그가 주장한 인터넷 비즈니스 이론이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4/0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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