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발명가가 된 만화가 '최정현'

그 집 남자는 집에서 논다. 거의 매일 혼자서 논다. 집 전체가 장난감이다. 종일 뭔가를 부수거나 뚫거나 붙인다. 15평짜리 아파트가 자작품으로 빼곡 차 있다. 완전히 요술의 집이다.

청소기는 마룻바닥 밑에서 튀어나오고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는 천장에서 내려온다. 따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다. 만든 것이 하도 많아 전부 몇 개나 바뀌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구경하러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예약돼 있다.

올 때 오더라도 아무거나 누르지 말 것, 아무데나 몸을 기대지 말 것.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미리 조심해야 한다.

반쪽이 최정현(41).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만화가다. 영화평론가인 아내 변재란씨와 함께 평등부부로도 공인받은 남편이다. 언제부턴가 만화가가 아닌 발명솜씨로 조금씩 소문을 타는가 싶더니, 최근엔 정식 공방까지 창업했다. 이름도 '반쪽이 공방'이다.

지난해 11월에 개업, 그러나 여전히 그는 집에서 놀기를 좋아하고, 날이면 날마다 뭔가를 뚝딱거린다.

"만화를 그릴 때보다 뭘 만들어낼 때 더 큰 흥분을 느낍니다. 세계 최초의 종이 시계란 걸 직접 시도할 땐 그 재료들을 펴놓은 것만으로도 마구 가슴이 뛰어서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더라니까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과 부탁받아서 하는 일은 분명히 다른거죠."


집안 구석구석이 요술상자로 가득

도처에 신기한 물건들이 널렸다. 주로 직접 만들거나 외부에서 사 모은 깜짝 소품들이다. 현관에서부터 초인종이 아닌 나무 딱따구리가 손님을 맞는다.

베란다 마룻바닥은 16개 모두 개폐식으로 열린다. 일일이 뜯어내 손수 만든 장치다. 그 아래 공간에 공구와 청소기, 다리미 등 온갖 물건들이 숨어 있다. 그 중 청소기처럼 덩치가 큰 것은 아예 바닥을 열자마자 자동으로 솟아나온다.

베란다 문턱에서 걸릴까 봐 한쪽으론 3단짜리 구름다리까지 치밀하게 준비돼 있다.

작업실의 컴퓨터는 평소엔 책상 몸체 속에 감춰져 있다가 버튼을 누르면 위로 솟아오르는 공간절약형에다 입 퇴장도 화려하다. 거실엔 사흘이나 걸려 만들었다는 대형 종이시계도 있다.

전등을 켜는 스위치인줄 알고 누르면 난데없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있다. 부엌 싱크대 상단에 놓인 이색쌀통. 기존제품을 하루 꼬박 쇠톱으로 잘라 만든 작품이다.

청소기에서 힌트를 얻어 쌀을 옮겨 담는 진공관까지 장착했다. 걸핏하면 물이 튀어 젖는 욕실의 화장지는 아예 천장을 뚫어 그곳에서 내려오도록 만들었다. 웬만한 잡기는 어디든 벽면에 붙여져 있다.

현관문만 해도 도장, 메모지, 우산꽂이, 볼펜, 심지어 스케이트보드와 구두약까지 빽빽이 붙어 있다. 주로 자석이나 매직테이프를 이용한 아이디어 장치다. 지난 12년동안 거의 매일 그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 왔다.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도 직접 필통과 스위치 등을 만들어 썼던 최씨다.

만화가란 직업은 더더욱 도움되는 부분이 있다. 워낙 만화구상 훈련에 익숙하다 보니 기발한 상상력은 물론, 다른 사람들은 직접 만들어 보고서야 감이 잡힐 것도 그는 이미 머릿속에서 조립, 분해가 자유자재다.

실패작이 될지 성공작이 될지 미리 판정이 난다. 공간지각력은 타고난 것 같다. 언젠가 일본여행 때도 현지민들조차 최소한 한달은 돌아다녀야 파악이 된다는 신주꾸 일대 지리를 초행길부터 귀신처럼 찾아다니던 그다.

평소 아이디어 상품 박람회란 박람회는 빠지지 않고 눈여겨 봤다. 일반인들에겐 흥행실패작으로 전락해 폐기된 물건도 신기하다 싶으면 창고속에 처박힌 것까지 집요하게 쫓아가 사들고 왔다.

특히 발명의 핵심은 부품. 틈만 나면 부품들을 사 모으러 다녔다. 7만여가지 부품이 소개된 전문책자를 구했을 땐 석달만에 달달 외어버렸다. 만화보다 더 재미있었다.

외국에 나갈 때도 부품을 파는 상가나 뒷골목부터 뒤졌다. 그 유별난 취미 때문에 엉뚱한 소동도 몇 차례 겪었다. 최근 외국여행후 김포공항에 들어설 때는 밀수꾼 의심까지 받았다.

그의 가방을 검사하던 공항직원이 카메라 여러 대를 갖고 다니는 게 수상하다며 전격적으로 짐 수색을 실시했다. 정식으로 등록한 장비들이라는 그의 말도 무시한 채 남은 짐을 모두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 앞에 줄줄이 튀어나온 것은 온갖 모양의 부품들 일색. 그제서야 의심을 푼 직원들은 그에게 한마디 물었다. 대체 뭐하시는 분입니까?


기발함이 때론 엉뚱한 사고 불러

가끔은 집에서 사고를 칠 때도 있다. 한번은 벽에 뭔가를 달기 위해 벽을 뚫다 보니 느닷없이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수도관을 건드린 것이다. 너무 놀라 부랴부랴 수도를 잠근 뒤 사후대책을 고민한 최씨.

결국 하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벽면을 다 뜯어내고 공사를 한 뒤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아내가 퇴근했을 땐 이미 말끔히 벽을 덮은 상태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를 뗐다. 그 일 이후 최씨의 구입 희망장비 1호는 금속탐지기가 됐다.

그는 원래 시사만화가였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졸업후 재야에서 문화운동을 하면서 인생계획에도 없던 만화가가 됐다. 1981년 대학신문사의 만평을 그린 것을 인연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 12년간 시사풍자만화를 그렸다.

군부독재를 비판하는 내용들이었다. 감시의 눈을 피해 내내 도망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집엔 들어가지 못하는 생활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결국 모처에 끌려가 1주일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풀려난 뒤 움츠리기는 커녕 '열 받아서' 전보다 더 열심히 그렸다. 독자들의 호응은 높았다. 많을 땐 13군데에서 청탁을 받아 일한 인기작가였다. 밤엔 만화를 그리고, 낮엔 원고를 건네주고 돌아와 또다시 밤새 펜을 잡는 생활이 쳇바퀴처럼 이어졌다. 1995년까지의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왜 3김 시나리오에 내 인생을 걸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차 정치상황이 변하면서 군부독재라는 타킷도 애매모호해지기 시작했고, 자연히 시사만화를 그리는 입장에서나 독자들의 반응에서 또 다른 어려움과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상 정치적인 독재에 앞서 가정 안의 독재부터 뿌리를 바꾸는 것이 보다 궁극적인 민주화가 아닐까, 남녀평등문제라든가 가부장제도의 문제 등을 생각하면서 생활만화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여성신문의 연재를 계기로 서서히 여성문제에도 눈을 뜨게 됐다. 여성문제는 곧 가족과 가정의 문제였다. 그 자신부터 가사노동과 경제적 부담 등을 아내와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내 변씨는 요리와 경조사비 등을 담당하고, 그는 청소와 설거지, 공과금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를 갖기 전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딸 하예린이 태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어려움이 나타났다. '반쪽이네 육아일기'는 바로 그 과정의 체험을 과장없이 담은 만화다. 초창기 발표작이 최근까지도 계속 재판 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높은 스테디셀러다.

처음엔 육아만화를 그린다는 사실조차 부모님께 숨겼다. 내내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우울증도 생겼다. 교도소가 따로 없었다. 아이 때문에 외출 한번 맘대로 못 한 채 집에 갇힌 자신이 혼자 세상으로부터 격리당한 느낌이었다.

"한 두달로 끝난다면 또 모를까, 이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미칠 노릇이지요. 주부들 심정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요즘도 그런 얘기만 나왔다 하면 오히려 주부들보다 제가 더 왈왈댑니다."

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조금씩 아이 곁을 지키는 일에서 해방된 것. 대신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그전엔 만화가 현실을 못 따라갈 만큼 가족내 얘깃거리가 너무 많이 터져서 고민이었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나날이 성숙해 사생활(?) 추적이 어려워지자 만화소재가 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닌 만화가로선 답답한 노릇이었다.


"공방 100개로 전국에 터뜨려야죠"

그의 별명은 인간 카메라.

'소재개발'을 위해 언제부턴가 주변의 인물들까지 아낌없이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그의 집에 놀러 왔다가 그 다음주 만화에 실려 본의 아니게 '유명인사'가 된 사람도 많다. 그러다가 한번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어느 부부의 심각한 얘기를 담았다가 당사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던 일이다. 하긴 자신의 부모님조차 언젠가 TV드라마로 방송됐던 당신 아들네 가족 얘기를 보다가 "여자 조상도 조상, 명절 때 함께 챙겨주자는 최씨의 주장을 듣고 너자 잘 해" 라고 한마디 하셨다가 고스란히 그 다음주 만화 주인공이 됐다.

물론 그 만화는 최씨가 부모님께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 스트레스엔 강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손수 집안을 고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취미도 그의 생활 스트레스를 없애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 자체로 또 다른 생활이 됐다.

처음엔 간단한 비품에서 출발해 점점 고수의 수준으로 발전했다. 깜짝 개조 12년, 거의 매일 새 작품이 나오다 보니 이젠 가족들조차 웬만큼 충격적인 대작이 아니면 반응조차 없다.

공방을 연 것은 한 선배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먼저 홈페이지(www.banzzogi.net)를 만드는데 걸린 시간만 1년반, 뒤이어 공방을 마련하기까지 비용만 약 3억원이 들었다.

반쪽이 공방은 수요자가 손수 원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DIY(Do-It- Yourself)가구 전문 공방이다.

바로 최씨 자신처럼 직접 뭔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회원 가입비와 재료비외엔 따로 받는 돈도 없다. 나무로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나 다룬다. 직원이 8명, 목공 교육생을 포함해 벌써 100여명의 회원이 드나들고 있다.

욕심이 있다면 머지 않아 전국에 반쪽이 공방 100개쯤 퍼뜨리는 것이다. 언젠가 오지여행에서 그가 봤던 마사이족보다는 최소한 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그 뼈빠지게 힘든 고생이 알고 보면 단순히 하루 세끼 끼니를 구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날 구한 걸 먹고 나면 끝입니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 이건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사람 냄새가 나는, 뭔가 즐거운 일거리 하나쯤은 꼭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정영주 자유기고가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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