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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경영 예비고사 낙제점?

'도마뱀 꼬리 자르기'.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가 e삼성 등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삼성 계열 인터넷 기업의 주식을 삼성계열사에 떠넘긴 것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달아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문제를 삼성 계열사와의 관계에서 보면 세계적인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적대로 기업간 비즈니스가 아니라 '애인간 거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무보와 삼성 계열사들은 도마뱀 꼬리 자르듯, 애인간 거래를 통해 이 상무보가 보유한 인터넷 기업의 주식을 처분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고 시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부터 알아보자.


투자액 웃도는 매각대금 챙겨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3월 27일 '삼성, e비즈니스 사업 재편' 자료를 내고 "이 상무보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시큐아이닷컴의 보유지분을 3월 말까지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SDS, 삼성SDI, 섬성전기, 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사에 전량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 계열사들이 수익성이 불투명한 일부 인터넷 기업의 주식을 액면가 이상으로 매입함에 따라 닷컴 주가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이 상무보와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 사장, 김인주 부사장 등은 투자액(505억원)을 웃도는 매각대금(511억원)을 받게 됐다.

구체적인 내역을 살펴보면, 이 상무보는 국내 인터넷 기업 지주회사인 e삼성 보유 주식 240만주를 장부가(120억원)의 1.7배인 208억원에 제일기획에 넘겼다.

삼성측은 "매각가격이 정부가보다 높은 것은 e삼성 출자사인 크레듀의 경우 이익을 내고 있고, 다른 출자사인 엔포에보도 매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무보의 e삼성인터내셔널(해외 인터넷 지주회사) 보유주식 480만주는 장부가(240억원)보다 낮은 195억원에 삼성SDS (300만주), 삼성SDI(90만주), 삼성전기(90만주)에 각각 처분됐다.

또 가치네트 보유지분 240만주는 삼성카드(7만주), 삼성캐피탈(7만주), 삼성증권(6만주)등 3개사에 6억원(장부가 10억원)에 팔렸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 금융기관에 매각된다. 이밖에 이 상무보의 시큐아이닷컴 보유주식 50만주는 장부가(25억원)보다 높은 33억원에 전량 에스워능로 넘어갔다.

이 상무보는 이들 4개 인터넷 회사를 통해 다른 인터넷 기업들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이번 지분 매각으로 그의 인터넷 기업지분은 모두 정리됐다고 할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 상무보의 인터넷 사업 정리는 삼성전자 상무보 직책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지, 그의 인터넷 기업부실을 계열사에 떠넘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노의 역류'는 거세게 밀려왔다. 특히 외국 투자가들과 해외언론은 이례적일 만큼 격한 반응을 보였고, 증시도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외국투자가 분노, 인수기업 주가약세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발표 다음날 신문(3월28일자)에서 "한국에서는 닷컴 기업을 살리는 방법은 재벌인 아버지에게 주식을 파는 것"이라며 "아직 상장되지도 않은 인터넷 주식을 어떻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는 등 의문 투성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요즘은 이재용씨가 공부했던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이런 방법을 가르치는 모양"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나아가 "아시아의 소액주주들은 경영권을 세습하는 부자(父子)간 거래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메릴린치 증권은 e삼성인터내셔널 주식(90만주)을 떠안은 삼성SDI에 대한 보고서에서 "시장 참여자 모두 e삼성인터내셔널은 삼성 SDI가 이재용씨에게 지불키로 한 36억원이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 증권사는 현재 벤처캐피탈 회사가 순자산가치에서 30~40% 할인돼 팔리고 있는 실정이고, e삼성인터내셔널의 현재 기업가치는 초기 투자금액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재와 같은 시장상황에서는 e삼성인터내셔널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는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앵도수에즈 더블유 아이 카 증권의 애널리스트 압둘 와히드 버트가 낸 보고서는 아예 "투자자들이 다시 한번 제일기획을 용서할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된다.

버트씨는 제일기획의 1999년 삼성차 부채처리 과정에서 삼성생명 지분을 인수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e삼성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이유를 투자자들에게 납득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발표 당일 삼성 계열사의 주가는 총 23개 종목(우선주 포함)중 4개(보합포함)를 뺀 대부분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프리미엄을 얹어 주식을 인수키로 한 제일기획은 전일보다 13.8%나 폭락했다. 외국인은 니잔해 9월 14일 이후 6개월만에 1일 최다 매도를 기록했을 정도. 그날 이후에도 제일기획 주가는 매칠동안 호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삼성SDI와 삼성전기, 삼성증권 등 이 상무보로부터 인터넷 기업 주식을 떠안은 계열사의 주가도 하락했음은 물론이다.

삼성은 올해들어 이 상무보의 경영참여를 앞두고 e삼성 등 인터넷 기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왔다. 섬성전자의 임원이 된 이 상무보가 삼성전자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e비즈니스 업체(e삼성 등)의 최대주주로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오해의 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능력에 의문"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이 상무보는 지난해초 전세계를 휩쓸었던 닷컴 열풍을 타고 e비즈니스 분야에 진출, 경영능력을 보인 뒤 당당하게 삼성그룹에 입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경영권 승계의 루트로 e비즈니스를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닷컴 경기가 꺼지면서 e삼성 등 이 상무보가 투자한 인터넷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고, 이 계획은 용도폐기 대상에 올랐다.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이 상무보의 첫 실책으로 기록될 판이었다.

비유컨데, '경영 예비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려고 했지만, 낙제점이 예고된 셈이다.

이 같은 진퇴양난에 처함 삼성 지도부는 아예 '예비고사'를 없던 것으로 하기로 하고, 주식을 팔아치우기로 결정했다. 데드라인은 이 상무보가 정식 출근(4월2일)하기 전으로 잡았다.

그럼 누구한테 팔 것인가. 여기사 삼성측은 너무나도 쉬운 방식에 현혹됐고, 계열사들은 이 상무보의 '경여실패 처리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삼성 관계자는 "이 상무보의 정식 출근전에 이 문제를 마무리짓고 싶었다"며 "시간은 촉박한데 현재와 같은 닷컴 상황에서 누가, 신속하게, 그리고 별 문제 없이 e삼성 등 인터넷 기업의 주식을 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시한이 정해진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적당한 값을 받고 평하게 주식을 처분할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 상무보의 인터넷 사업 정리는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인터넷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삼성 그룹이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부실기업'의 주식을 삼성 계열사에 떠넘긴 이 '사건'은 이 상무보의 대한 삼성 내외의 첫 인상을 완전히 구겨버렸다고 할 수 있다.

e삼성은 사실상 이 상무보의 첫 경영자질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한 재계 인사는 "주위에서 이 상무보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하고, 그가 탄탄한 경영수학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일로 그가 과거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약 이 상무보가 e삼성 드에 대한 투자 실패를 선선히 인정하고, 삼성 계열사가 아닌 매수자들에게 주식처분 의사를 밝히고 일을 추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고 e삼성 등의 주식가치는 하락한 뒤, 우여곡절끝에 제 값을 받지 못한 채 처분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지는 않았을까. 투자손실을 투자자가 떠안는 게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설령 몇백억원의 투자손실을 본다한들, 그것이 삼성이나 이 상무보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됐을까.

정석대로 문제를 처리했다는 인정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섬성 지도부의 '계열사 떠넘기기'결정은 소탐대실의 우(愚)를 범한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명예롭게 삼성에 입성하고자 했던 이 상무보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첫 불명예를 안게 됐고, 이는 편법 상속·증여 논란과 함께 그엑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당국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혹 떼려다 혹 붙이는'지경으로까시 사태가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이재용씨와 삼성이 인터넷 사업 경영실패의 책임과 기업 부실을 삼성 계열사와 소액주주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이재용씨의 경영능력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윤순환 경제부 기자 goodman@hk.co.kr

입력시간 2001/04/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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