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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선장론'으로 대권 향해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이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 8월의 최고위원 경선에서 4위로 당선됐을 때만 해도 그가 차기대권에 도전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그의 정치적 이미지는 'DJ의 참모'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개월 가량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가 공개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그는 여권에서 대권주자군의 한명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그의 지지자들이 인터넷상에 '천사모'(박상천을 사랑하는 모임)라는 팬클럽을 발족시킨 데 이어 최근 대구ㆍ경북지역의 '한마음회', 부산ㆍ경남지역의 '동서산악회' 등 후원조직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발한발 착실히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조직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 큰 집단에 영합" 경쟁자들 공개비판

요즘 박 최고위원은 주위에서 "이제 본격적인 대선레이스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김중권 대표는 물론 이인제ㆍ한화갑ㆍ김근태 최고위원 등 내로라 하는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지방순례에 나서고 있고, 노무현 상임고문도 '튀는 발언'으로 대중적 지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박 최고위원은 아직 수면 아래서 준비만 하고 있다. 오히려 여타 주자들의 개인적 행보에 비판적이다.

지난 3월23일 오랜만에 지방에서 특강을 한 그는 경쟁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대권후보들이 무분별한 대중 인기영합의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조용한 다수의 국민보다 목소리 큰 집단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적 경향마저 있다"고 작심하고 쓴 소리를 했다. 경쟁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자신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전략이다.

박 최고위원은 직선적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아니다 싶으면 쏘아붙이는 스타일. 원내총무시절 여야 협상이 막히면 직접 대통령을 설득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치현안에 대해선 오히려 신중해졌다. 민주당 순수 혈통의 사명감과 DJ에 대한 책임의식 등이 얽히며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가 아직은 사고의 중심에 있기 때문. 당연히 그의 정치적 견해는 다른 주자들과는 차이가 난다. 이는 그의 장점이자 한계로도 작용한다.

당내 쟁점으로 떠오른 '전당대회 분리론'(내년 1월 전대에서 당지도부 선출, 지방선거후 다시 전대를 열어 대선후보 결정)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거론하는 것은 빠르다"는 것이다. "지금 시기나 형태가 결정되면 경선무드가 본격화하고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의 빈축을 살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의 대권주자들이 앞다투어 제기하는 개헌론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이다. 5년 단임제가 역사적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대통령제의 원형인 정ㆍ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데는 그도 동의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개헌을 반대하고 있어 일부 야당의원이 찬성하더라도 나머지 인원만으로도 얼마든지 실력저지가 가능하다"는 현실론을 들고 있다.

나아가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고 현재의 개헌논의가 여야의 대선전략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야당이 '집권연장 시도'로 몰아붙이면 야당보다 여당이 훨씬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에 대한 입장은 비교적 명확한, 나름의 논리도 개발했다. 이른바 '선장(船長)론'이다.

그는 "김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과 차기 대통령 임기 5년 등 7년사이에 한국의 선진국 진입여부가 결정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때문에 "차기 대통령을 뽑는 것은 태평양을 왕복하는 여객선 선주로서 선장을 뽑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선주가 언제 비바람이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장을 한번도 항해경험이 없는(즉, 행정경험이 없는) 초심자를 선임하거나 항해만 하면 번번이 배를 좌초시키는 돌팔이 선장을 뽑겠느냐"고 반문했다.


"때 되면 판도 변할 것" 자신감

이 같은 논리에는 다분히 그의 야망이 숨겨져 있다. 그는 여권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 엄밀히 말해 동교동계가 아니지만 그는 정치실세로 분류된다.

국민의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원내총무를 3번이나 거쳤다. 그가 내세우는 최대의 명분이 바로 국회와 행정부를 이끌며 얻은 능력이며 그의 선장론은 곧 타 후보들과의 비교우위론이다. 당내에 팽배한 '호남불가론'에 대해 반대하는 무기도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늘에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이에 대해 "민주당의 정통세력은 DJ를 대통령을 만드는 데 몰두했기 때문에 자신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 반면 다른 당에 있었거나 넘나든 사람은 그사이 나름의 세를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이인제 최고위원 등을 겨냥한 직격탄인 셈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 출범 후에도 장관과 원내총무로서의 격변기를 보내느라 "솔직히 세를 형성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그를 둘러싼 주변인사와의 관계도 흥미 있다. 같은 호남 출신으로 동교동계인 한화갑 최고위원과는 다소 소원한 편. 노골적으로 경쟁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는 "13대 때 국회에 진출할 때부터 가까이 지냈고 지금도 우의에 변함이 없다"고 밝힐 만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두 사람은 골프를 함께 했다.

권 전 최고위원이 최근 마포에 사무실을 내자 인사를 겸해 전화를 걸어 운동을 청한 것. 권 최고위원은 웃으며 "왜 이제서야 전화했느냐"며 반겼다고 한다. 이인제 최고위원과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그는 아직 공식적으로 경선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태. 그는 "적당한 시기가 오면 언론과 국민이 대선후보에 대한 자격검증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면서 "그때는 판도가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특유의 자신감을 피력했다.

또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자격검증중" 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정치적 모험에 뛰어든 듯하다. 조만간 그의 대선 캠프가 차려질 것이라는 소리도 흘러나온다.


대중성 부족 호남출신이 핸디캡으로

그의 야망은 과연 현실화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치로 나타나는 선두그룹과의 격차와 대중성 부족, 호남출신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정치적 핸디캡 등 험난한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는 정치적 좌절을 맛볼 수 있다.

그는 "현재로는 오랫동안 사실상의 경선운동을 해 온 정치인이 앞서 있다"면서 "그러나 국민이 '선장론'에 입각해 후보들이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태희 정치부 기자 taeheelee@hk.co.kr

입력시간 2001/04/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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