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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셰비치 체포, 전범재판소 인도여부에 세계 이목 집중

3월 31일 새벽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시내 데딘예 지구의 한 호화저택 앞. 청바지 차림에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린 일단의 중무장 병력이 장갑차에서 내려 담장을 뛰어 넘었다. 이어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큰 망치로 철제 대문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살아서는 안나가겠다"

이 저택의 주인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코트 속에서 권총을 뽑아 들고 "가족과 함께 자결하겠다"고 정부 당국자에게 통보했다.

불 같은 성격의 소지자인 딸 마리야는 어느새 정원에 진입한 경찰에게 "한 발짝만 접근하면 자동소총으로 갈겨버리겠다"며 펄펄 뛰었다.

밤이 깊어지자 지지자 수십 명이 성난 황소처럼 저택으로 몰려왔다. 몇 발의 총성이 저택을 뒤흔들었다. 경찰의 첫번째 체포 작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밀로셰비치는 집 앞에 나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베오그라드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 "나는 지금 친구들과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는 체포영장을 제시하며 동행을 요구한 경찰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충복인 현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후통첩 시한인 31일 오후 8시가 지나자 유고 당국은 강제 체포를 결정했다. 4월1일 새벽 4시45분 저택 뒷문으로 특수 부대인 '붉은 베레모' 요원 10여명이 조명탄을 쏜 뒤 뚫린 창문을 통해 진입했다. 이 부대는 밀로셰비치 자신이 정적들을 체포하기 위해 운영해온 '분신'과 같은 존재였다.

이어 밀로셰비치를 태운 검정색 벤츠와 리무진 4대가 저택을 빠져 나왔다. 흥분한 마리야는 아버지가 탄 차량을 행해 총을 쏘아대며 "산 채로 데려가지 마라"고 울부짖었다.

유고 TV는 이날 아침 검은 차량이 베오그라드 도심을 쏜살같이 달려 중앙교도소로 들어간 뒤 교도소 정문이 닫히는 장면을 방영했다. 26시간 동안 일촉즉발의 긴장을 연출했던 밀로세비치 체포 작전이 종료됐다.


국제사회의 '당근과 채찍'에 굴복

'발칸의 맹주'를 자처해온 밀로셰비치를 체포한 것은 유고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며 모험이었다. 무엇보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인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이 그를 처벌하는 데 반대했다.

지난해 10월 무혈혁명으로 밀로셰비치의 철권통치 13년을 마감하고 권좌에 오른 그는 자신이 외세에 굴복한 '겁쟁이'로 비칠까 우려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버티기'는 점증하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국내 여론의 분열로 점점 한계점에 도달했다.

밀로셰비치의 기소 여부에 수천만 달러의 미국 원조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실용주의자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는 체포를 강력히 주장했고, 군부도 "눈감아 주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체포 데드라인인 3월31일이 점점 다가 오고 있었다. 미국은 이날까지 체포하지 않으면 자국의 직접 지원은 물론이고 국제차관 수 억 달러도 끊어버리겠다고 경고해 왔다. 코슈투니차는 "한 개인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게 놔둘 수는 없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피의 전쟁 다시 잠복기로

다행히도 밀로셰비치는 피조사자 신분이 감안돼 사식을 먹을 수 있고, 온수를 공급 받으며,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에 안에서 전등을 끄고 켤 수 있는 새로 꾸며진 '특실'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집권 11년 동안 4차례의 전쟁을 일으켰던 '철권 통지자'는 죽기 전에 다시는 자유롭게 산책할 수 없을 지 모를 암담한 신세이다. 밀로셰비치는 부인인 미라 마르코비치 유고좌익당(JUL)당수가 사식을 밀어넣자 "교도소 음식도 괜찮다"며 거절했다.

밀로셰비치는 이제 불우했던 유년기로 되돌아갔다. 부친은 2차 세계대전 후 집을 나갔다가 1962년 자살했으며,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교사였던 어머니 역시 72년 자살했다.

이번에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았던 사람은 부인과 딸, 며느리, 두살배기 손자, 술취한 무장 지지자 20여명 뿐이었다. 남동생 마르코는 도망자 신세로 외국을 떠돌고 있다.

밀로셰비치는 3월30일 내무부가 자신을 경호하던 경찰관 74명에게 철수령을 내리자 "보수를 4배로 올려주겠다"고 타일렀지만 단 1명만 남고 모두 떠났다.

독재자가 감옥에 갇히면서 '피튀기는'민족주의의 거대한 불길도 다시 '잠복기'에 들어갔다. 밀로셰비치의 권력기반은 티토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바로 세르비아 민족주의였다.

1986년 세르비아 공산당 당수가 된 그는 코소보의 민족 문제를 자극하면서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 됐다. 강력한 민족주의자가 집권하자 다민족 국가였던 유고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연방에서 탈퇴하려는 크로아티아와의 전쟁, 이슬람 교도들이 대거 희생된 보스니아 내전, 100만명 이상의 알바니아계 주민이 고향을 등진 코소보 사태 등 발칸은 피로 얼룩졌다.


사법처리, 장기전 될 가능성 높여

유고 사법당국은 밀로셰비치를 직접 신문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법처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현재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는 혐의는 유엔이 기소한 4가지 전쟁범죄 외에 귀금속 밀반출과 재산은닉, 권력남용, 정적 암살미수, 유괴, 선거부정 등 6가지 이상이다.

밀로세비치의 변호인인 토마 필라 변호사는 "그는 자신을 변호하고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로셰비치의 적극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사법처리는 시간문제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밀로셰비치에 대한 구금 기한은 사실상 제한이 없다. 블라디 바티치 세르비아 법무부 장관은 "신문의 진척 상황에 따라 1개월 간의 구금령이 6개월까지 연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쟁점은 밀로세비치에 대한 사법처리가 어느 정도 수위로 언제 완료될 것인지에 모아진다. 바티치 장관은 밀로셰비치가 최소한 5~15년 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공정한 재판"을 거듭 강조했다. 밀로셰비치의 정치적 비중이 큰 만큼 여론이 수긍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 재판도 여타 국가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처럼 국내 여론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유고 정부가 국내재판 후 밀로셰비치를 헤이그의 구 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인도할 것인지 여부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는 체포작전에 성공하자 마자 "전범 재판을 위해 신병을 달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유고가 데드라인 보다 4시간 늦은 4월1일 새벽4시에 체포하자 시한을 4월2일로 수정하며 5,000만 달러를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빵'으로 '주권'을 사겠다는 것이다. 유엔도 즉각 밀로셰비치에게 직접 체포영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유고 국내 여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은 분열돼 있다.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4월3일 "몇 푼의 달러를 받았다고 국가 위신을 팽개칠 수는 없다"면서 "밀로셰비치를 절대로 외국에 인도하진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유고의 전통 우호국인 러시아도 국경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포작전 당시 밀로셰비치측과 유고 정부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이뤄졌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코슈투니차 정권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진지치 총리 등 현실주의자들은 밀로셰비치 인도를 거의 기정사실로 보고 여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밀로셰비치를 그야말로 "폭군"으로 몰아붙여 당당하게 국외로 내쫓아버리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유고 의회는 이미 전범 인도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 검토에 들어갔다.

향후 유고 정치권이 조속한 신병인도를 요구하는 미국과 EU 등의 외부 압력과 엇갈린 국내 여론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 지 주목된다.

이동준 국제부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1/04/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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