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임대회, 표류 가까스로 모면

양대리그, 참가비 문제로 마찰 빚다 뒤늦게 축소 개막

21세기에 걸맞는 '디지털 스포츠'로 불리며 지난해 화려하게 개막된 프로게임대회가 흔들리고 있다.

당초 3월5일 시작할 예정이었던 프로게임대회의 양대 산맥인 배틀탑과 PKO리그가 한달이 지나도록 대회를 열지 못한채 겉돌고 있다.

대회가 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프로게임단과 대회운영사 사이에 빚어지는 마찰이 원인이다.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대회운영사들이 지나치게 비싼 참가비와 독단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며 대회참가를 거부했다.


참가비 일방인상에 대회 보이콧으로 맞서

지난해 배틀탑과 PKO 양대 프로게임 리그를 운영한 배틀탑과 PKO는 리그전에 참가하는 프로게임단으로부터 참가와 홍보비 명목으로 2,000만~4,000만원의 참가비를 받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배틀탑측은 방송 송출료 등을 이유로 지난해 4,500만원에서 두배 이상 오른 1억2,000만원, PKO측은 선수관리비를 포함해 3,000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프로게임단들은 터무니없는 액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한게임의 송재화 팀장은 "대회운영사측에서 요구한 참가비는 사실상 대회에 참여하는 프로게임단을 언론매체에 노출시키기 위한 홍보비 성격이 강하다"며 "그러나 지난해에는 참가비에 비해 홍보효과가 기대에 못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회 운영사측에서 요구한 참가비 인상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이같은 의견일치를 본 프로게임단은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3월20일 프로게임단협의회를 구성했다.

급히 구성한 협의회에는 20개 팀 가운데 한통프리텔, 삼성전자, 더미디어, KTB네트워크, 한게임, 올더웹코리아, 아이비에스넷, 게임아이 등 8개사가 회원사로 참여했다.

회장에는 삼성전자 칸팀을 이끌고 있는 서병문 전무와 한통프리텔 매직엔스 단장인 김태호 이사가 공동으로 선출됐다. 협의회는 당면과제인 대회참가비 협상부터 시작해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게임단 홍보를 위한 업무협조 및 우수 선수 지원, 경기 관련 컨텐츠 등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협의회측은 대회운영사측과 지속적 협상을 통해 참가비를 기존 구단은 200만원, 신생팀은 2,000만원선까지로 낮춰놓은 상태다.

또 두개의 리그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팀을 위해 대회운영사와 합의를 통해 PKO리그에는 스타크래프트 남자부문, 배틀탑리그에는 스타크래프트 여자부문과 피파 남녀부문 등으로 종목을 나눠놓았다.


줄 잇는 게임팀 해체

그러나 이밖에도 예기치 않은 복병이 또 나타났다. 바로 부족한 팀수가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50개가 넘었던 프로게임팀은 연이은 해체로 30개를 밑도는 실정이다.

홍보차원에서 프로게임팀을 운영했던 하나로통신, 한글과컴퓨터, 드림라인 등이 올해초 팀을 속속 해체했다. 덩달아 팀에 소속됐던 선수마저도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프로게임 선수 가운데에는 소속팀의 해체로 갈 곳이 없어져 당장 생계에 지장을 받는 선수도 있다.

일부는 업체의 판촉행사나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한 1회성 소규모 대회에 참여하거나 게임방 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마저도 어려운 선수들은 아예 프로게이머의 꿈을 접고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이에 대해 PKO의 갈민경 과장은 "지난해에 비해 참가팀과 선수들이 절반 가까이 줄어 대회규모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더미디어, AMD 등 대형 업체들이 신규팀을 만들어 참여할 예정이어서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프로게임 대회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또다른 요소는 한정된 경기종목이다. 현재 대회의 주류는 모의전략게임인 스타크래프트.

그러나 출시된지 3년이 지난 이 게임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여전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나 게임애호가들은 이제는 한물 간 게임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게임대회들이 스타크래프트에만 매달려 너나 할 것 없이 천편일률적 내용을 중계하고 있으니 팬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일부 대회에서는 축구게임인 피파와 액션게임인 레인보우6 등을 곁들이고 있으나 그야말로 양념 구실밖에는 못하고 있다.


경기관련 컨텐츠 개발 시급

문제는 스타크래프트의 뒤를 이을 만한 게임이 없다는 점이다. 수많은 게임이 쏟아져 나왔으나 경기하기 좋고 인기도 높으며 재미있는 게임은 흔치 않다.

그래서 대회운영사측에서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사에서 내놓을 예정인 모의전략게임 '워크래프트3'를 기다리고 있으나 이 게임은 올 하반기에나 나올 전망이어서 당장 대회에 써먹기는 힘든 실정이다.

대회운영사측에서는 할 수 없이 올해도 스타크래프트를 주종목으로 삼고 다른 게임을 곁들여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물망에 오르는 게임은 국산 게임개발업체인 판타그램에서 만든 킹덤언더파이어, 아트록스, 레인보우6, 하프라이프 등이다.

그러나 일부 게임은 선수들이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어 종목으로 채택되더라도 인기를 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에서 대회를 추가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케이블방송인 온게임넷을 비롯해 게임아이 등에서도 프로게임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의 중소기업이 준비하는 대회까지 포함하면 프로게임 대회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미 대회운영사간의 경쟁은 물론이고 팀들에게는 대회 자체가 부담스러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참가비나 참여팀의 부족, 한정적인 종목 등은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문제일 뿐"이라며 "실제로는 대회운영사의 취약한 재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들은 "대회운영사의 재정이 튼튼하다면 이목을 끌고 팀의 참여도가 높은 재미있는 대회를 만들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구조로 대회가 진행된다면 내년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 얼마 못가 대회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프로게임 대회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업계에서도 좀 더 애착을 갖고 참여해야 프로게임 대회가 활성화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최연진 인터넷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10 20:14


최연진 인터넷부 wolfpa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