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반년 공백, 감각 잃은 승부욕

-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16)

"중반까지 승리는 확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중반이 지난 무렵부터 무언가 기분이 들떠서 집중력이 없어졌다. 정신이 이상해졌다고밖에 생각이 안난다." 하시모토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흑의 갑작스런 변조가 너무나 불가사이하므로 하시모토가 둘 차례가 되면 북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와서 사고(思考)를 방해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또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와서 하시모토의 눈 앞에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는 설(說)까지 파다하게 퍼져갔다. 오청원은 대국 당시 그런 일에 열중해본 적이 없으나 낭설 그 자체였다.

그러나 승부란 인간의 이성으로서 파악하지 못할 부분이 있어서 오청원은 지지 않으려는 집념과 세광존 사람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시모토의 착수를 그르치게 했다는 것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왔다갔다 하는 모양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국에 영향을 주니까.

하시모토는 유망한 청년이었으나 2국을 패한 다음 좀처럼 이겨보질 못한다. 그러니까 바둑계에 오청원이 복귀한 첫날 그를 보기좋게 꺾었으나 그 이후 내리 4연패를 하여 역시 오청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제3국. 오청원은 흑 차례였고 오청원은 겨우 본래 컨디션을 되찾아 쾌승하였다. 그런데 오청원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세광존이 갑자기 십번기에 관심을 잃어버리던 것이다.

오청원에게 기운을 불러일으킨다고 동침을 허락한 그 세광존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10번기에 관심을 잃어버렸다. 생각만큼 선전효과가 오르지 않았던 탓일까. 오청원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없어졌고 10번기의 대국일정도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청원에게는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새우관(세광존과 이념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인 서클)에서 출발하고 대국중에도 속인과 사귀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자기 방에 틀어박혀 누구와 잡담을 하는 일이 없었고 대국이 끝나면 곧장 새우관으로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계의 동향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편한 일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세광존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을 근심하여 빨리 세광존으로부터 손을 떼어놓아보려고 했다. 오청원이 피하고 있으나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보았음인지 오청원을 설득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청원이 세광존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방법은 지게 하는 방법밖에 없으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꾸 져서 인기가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세광존을 떠나게 되리라는 뜻일 것이다.

제4국은 오청원의 백 차례로 오랜만에 대각선상에 두 개나 '3, 三'을 두어 중앙에 힘겨루기가 잇다른 바둑이 되었으나 백이 리드를 잡아 오청원이 6집승을 거두었다. 5국은 하시모토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가운데 생기가 없이 대국에 임했으나 131수만에 돌을 거두고 말아 1패 후에 4연승을 하여 치수가 고쳐지기 일보직전이었다.

6국은 하시모토의 몸 상태가 회복되기를 기다려 당분간 연기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실제로 오청원이 세광존의 사정으로 대국일정을 확정할 수 없어 반년 가까이 후에 벌어진다.

오청원의 백 차례. 오랜만에 만져보는 바둑돌의 감촉이었다. 눈이 빙빙 도는 하루를 보내고 있으나 바둑판에 앉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도 불안도 없이 승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하시모토는 기력이 회복되었는지 대열전을 전개했고 오청원은 근소한 차이로 흑을 따라잡지 못하고 2집패를 거둔다. 6개월간의 공백은 이렇게 오청원을 감각을 잃게 만든다.

제7국은 계속해서 같은 장소에서 치러졌다. 백의 하시모토는 중앙에 두터움을 쌓았으나 흑도 이럭저럭 흑세를 짓밟는 바둑이 되었고 중앙삭감을 성실히 수행한 흑의 불계승이었다.

다시 승패는 5승2패. 치수가 고쳐지기 바로 직전이었다.


[뉴스화제]



●최철한, 류재형 꺾고 8강전 진출 '앙팡테리블' 최철한 3단이 '무명 반란의 주역' 류재형 4단을 꺾고 천원전 8강에 진출했다. 4월2일 벌어진 대국에서 최3단은 작년기 준우승자 류4단에게 189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두고 8강에 합류했다.

이로써 최철한은 윤성현, 루이나이웨이에 이어 세번째 본선진출자가 되었고 천원전은 전기 우승자, 준우승자가 나란히 탈락하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조한승 신인왕전 결승 점프

조한승 4단이 BC카드배 신인왕전 결승에 선착했다. 조4단은 이희성 3단과 치러진 4강전에서 166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두고 생애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 조한승 4단은 최명훈 7단을 꺾은 박승철 2단과 원성진 3단의 승자와 우승을 다툰다.

한편 신인왕전은 연승전 방식으로 2연승을 하면 결선에 진출하게 되는데 결선진출자는 6명이며 조한승 4단은 연승전에서 5연승을 기록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4/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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